김장철이 되면 배추에 굵은 소금을 뿌려 하룻밤 절여 둡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빳빳하던 배추가 부드럽게 휘고, 통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습니다. 소금물에 담갔을 뿐인데 배추 속의 물은 어디로, 왜 빠져나온 것일까요? 그 답이 바로 ‘삼투 현상(Osmosis)’입니다.
삼투 현상이란 쉽게 말해 ‘물은 통과시키고 녹아 있는 물질은 막는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물이 묽은 쪽에서 진한 쪽으로 옮겨 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막 양쪽의 농도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물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원리가 우리 몸의 세포부터 식물의 줄기, 바닷물을 마시는 물로 바꾸는 공장까지 움직이고 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삼투 현상이 무엇인지부터 이를 움직이는 세 가지 요소, 생활 속 사례, 그리고 삼투를 거꾸로 돌리는 역삼투 기술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삼투 현상의 원리와 활용
삼투 현상이란 무엇인가?

삼투 현상이 처음 기록된 것은 1748년입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장앙투안 놀레(Jean-Antoine Nollet)는 알코올을 가득 채운 유리병 입구를 젖은 동물 방광으로 덮어 묶고, 물이 담긴 큰 그릇에 넣어 두었습니다. 몇 시간 뒤 방광 막은 바깥쪽으로 팽팽하게 부풀었고, 바늘로 찌르자 안의 액체가 30cm 넘게 솟구쳤습니다. 바깥의 물이 막을 지나 병 안으로 계속 들어온 것입니다.
이때 물은 통과시키고 녹아 있는 물질은 잘 통과시키지 않는 막을 반투막(Semipermeable Membrane)이라고 부릅니다. 반투막 양쪽에 농도가 다른 용액이 있으면 물은 진한 쪽으로 넘어가고, 진한 쪽의 수면은 점점 높아집니다. 물이 넘어가지 못하게 막으려면 진한 쪽을 눌러 주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압력을 삼투압(Osmotic Pressure)이라고 합니다.
삼투 현상을 움직이는 세 가지 요소


삼투 현상이 일어나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1) 반투막
막이 없다면 물과 녹은 물질이 함께 섞이며 퍼져 나갈 뿐입니다. 녹은 물질은 막고 물만 통과시키는 막이 있어야 물의 한쪽 방향 이동이 나타납니다. 1877년 독일의 식물학자 빌헬름 페퍼(Wilhelm Pfeffer)는 튼튼한 인공 막을 만들어 삼투압을 처음으로 정밀하게 측정했습니다.
(2) 농도 차이
막 양쪽의 농도가 같으면 물 분자는 양쪽으로 똑같이 오가므로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농도 차이가 클수록 물은 더 세차게 진한 쪽으로 이동합니다.
(3) 녹아 있는 입자의 수
삼투압은 녹은 물질이 소금인지 설탕인지가 아니라 입자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정해집니다. 네덜란드의 화학자 야코뷔스 반트호프(Jacobus van 't Hoff)는 묽은 용액의 삼투압이 ‘몰농도 × 기체 상수 × 절대 온도’로 계산된다는 사실을 밝혔고, 이 공로 등으로 1901년 첫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삼투 현상

삼투 현상은 부엌과 병원, 정원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 절임 음식(Pickling): 배추를 소금에 절이면 세포 밖이 더 진해져 세포 속 물이 빠져나오고, 배추가 숨이 죽습니다.
- 건포도 불리기(Rehydration): 쪼글쪼글한 건포도를 맹물에 담가 두면 물이 안으로 들어와 통통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 생리식염수(Normal Saline): 병원 수액에 쓰는 0.9% 소금물은 혈액과 삼투압이 비슷합니다. 맹물을 혈관에 넣으면 적혈구가 물을 빨아들여 터지고, 너무 진한 소금물을 넣으면 반대로 쪼그라듭니다.
- 식물의 팽압(Turgor Pressure): 뿌리와 세포로 들어온 물이 세포벽을 안에서 밀어 주어 잎과 줄기가 빳빳하게 섭니다. 물이 모자라면 이 압력이 줄어 식물이 시들어 보입니다.
민달팽이에 소금을 뿌리면 몸이 줄어드는 것도,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민물에 넣으면 버티지 못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삼투를 거꾸로 돌리는 기술, 역삼투

삼투압보다 더 센 압력으로 진한 쪽을 누르면 물은 거꾸로 진한 쪽에서 묽은 쪽으로 밀려 나갑니다. 이를 역삼투(Reverse Osmosis)라고 합니다.
- 바닷물 담수화(Desalination): 바닷물의 삼투압은 대기압의 약 27배에 이릅니다. 그래서 담수화 공장은 보통 대기압의 55~80배에 이르는 압력으로 바닷물을 막에 밀어붙여 소금을 걸러 냅니다.
- 막 기술의 발전(Membrane Technology): 1960년 무렵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의 시드니 롭(Sidney Loeb)과 스리니바사 수리라잔(Srinivasa Sourirajan)이 물이 빠르게 지나가는 얇은 막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역삼투가 실험실을 벗어났습니다.
- 가정용 정수기(Water Purifier): 역삼투 정수기는 녹아 있는 물질을 대부분 걸러 내지만, 깨끗한 물 1L를 얻는 동안 그보다 많은 물을 버리고 칼슘·마그네슘 같은 무기질까지 함께 걸러 낸다는 점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2019년 무렵 세계에서는 약 1만 6천 곳의 담수화 시설이 하루 약 9,500만 톤의 물을 만들었으며, 지금 새로 짓는 시설은 대부분 역삼투 방식을 씁니다.
반대로 삼투의 힘을 그대로 쓰려는 연구도 있습니다. 강물과 바닷물의 농도 차이로 들어오는 물의 압력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삼투 발전(Osmotic Power)으로, 노르웨이에서는 2009년에 세계 첫 시험 발전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 시설은 경제성이 부족해 2014년에 시험을 멈췄지만, 바다가 품은 농도 차이 자체가 새로운 에너지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삼투 현상은 농도 차이라는 작은 불균형이 물을 움직이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배추 한 포기를 절이는 일과 사막 도시에 마실 물을 대는 일이 같은 원리 위에 서 있는 셈입니다.
익숙한 부엌 풍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막과 물의 흐름을 떠올려 보는 것, 그것이 생활 속 화학을 이해하는 일의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