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을 쫓아 기어 다닌 기계, 그레이 월터의 거북 로봇(Grey Walter’s Tortoises)

사람 대신 기계가 짐을 찾는 창고, 자동 창고 시스템(Automated Storage and Retrieval System)
궁금한 것이 생기면 우리는 검색창에 몇 글자를 넣고 순식간에 답을 찾습니다. 그런데 컴퓨터도 전자 통신망도 없던 100여 년 전,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곳에 모아 누구나 찾아볼 수 있게 하겠다는 꿈을 실제로 밀어붙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벨기에의 두 법률가는 책과 신문, 보고서에 흩어진 정보를 손바닥만 한 카드에 한 장씩 옮겨 적고, 정해진 번호에 따라 거대한 서랍장에 꽂았습니다. 카드는 수십 년 만에 1,500만 장이 넘게 쌓였고, 사람들은 편지로 질문을 보내 답을 받아 갔습니다. 이 꿈의 보금자리가 바로 ‘문다네움(Mundaneum)’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문다네움을 세운 사람들과 그들이 품은 생각부터, 카드와 분류 번호로 짜인 지식 창고의 구조, 우편으로 운영된 질문 답변 서비스, 그리고 쇠퇴와 재발견에 이르는 이야기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종이 카드로 세상의 지식을 엮으려 한 꿈
두 법률가가 꿈꾼 지식의 도시

문다네움을 만든 폴 오틀레(Paul Otlet)와 앙리 라퐁텐(Henri La Fontaine)은 벨기에 브뤼셀의 법률가였습니다. 두 사람은 1891년에 만나 서지학과 국제 협력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가까워졌습니다.
(1) 책 대신 카드에 담자는 생각
오틀레는 1892년 글에서 책은 정보를 저장하기에 불편한 그릇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이 놓이는 순서를 저자가 마음대로 정하기 때문에 원하는 사실 하나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정보를 작은 조각으로 나눠 카드에 한 장씩 적으면 자유롭게 분류하고 끼워 넣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2) 국제 서지학 연구소의 출발
두 사람은 1895년 첫 국제 서지학 회의를 열고 국제 서지학 연구소(Institut International de Bibliographie)를 세웠습니다. 이 연구소는 훗날 국제 정보문헌연맹(FID)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3) 세계 궁전에서 문다네움으로
1919년 벨기에 정부는 브뤼셀 생캉트네르 궁의 왼쪽 건물을 내주었고, 이곳은 처음에 ‘세계 궁전(Palais Mondial)’이라 불리다가 1924년 문다네움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1913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라퐁텐은 상금을 이 사업에 보탰습니다.
카드와 번호로 쌓은 지식 창고

문다네움의 중심은 ‘세계 서지 목록’이라는 뜻의 거대한 카드 묶음이었습니다. 1895년에 시작해 그해 말 40만 장이 되었고, 1934년에는 1,500만 장을 넘었습니다.
- 색인 카드(Index Card): 책과 기사 속 정보를 한 장에 하나씩 적어 언제든 다시 배열할 수 있게 했습니다.
- 맞춤 서랍장(Filing Cabinet): 카드를 넣으려고 특별히 설계한 수많은 서랍장이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 국제 십진 분류법(Universal Decimal Classification): 듀이 십진 분류법을 바탕으로 두 사람이 넓혀 만든 번호 체계로, 카드가 놓일 자리를 정했습니다.
- 문서와 이미지 보관실(Archive Room): 편지, 보고서, 신문 기사를 담은 10만 개의 파일과 수백만 장의 그림이 따로 보관되었습니다.
국제 십진 분류법은 여러 주제를 기호로 이어 붙여 겹치는 주제까지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이 분류법은 지금도 영어권 밖의 많은 도서관에서 쓰입니다.
편지로 묻고 카드로 답한 검색 서비스

오틀레는 모은 정보를 창고에 묵혀 두지 않았습니다. 1896년부터 요금을 받고 우편으로 질문에 답하는 서비스를 열었습니다.
(1) 우편으로 오가는 질문과 답
누군가 편지로 궁금한 것을 보내면 직원들이 서랍장에서 알맞은 카드를 찾아 그 사본을 답장으로 보냈습니다. 한 연구자는 이 서비스를 ‘아날로그 검색 엔진’이라고 불렀습니다.

(2) 해마다 늘어난 문의
1912년에는 한 해에 1,500건이 넘는 질문에 답했습니다. 결과가 50건을 넘을 것 같은 질문에는 미리 경고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3) 집에서 열어 보는 지식
오틀레는 1934년에 낸 책 『도큐멘테이션 개론(Traité de documentation)』 등에서, 사람들이 집에 앉아 화면으로 멀리 떨어진 문서를 찾아보고 서로 연결된 자료를 넘나드는 미래를 그렸습니다. 오늘날의 인터넷과 닮은 이 상상 때문에 그는 정보학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문을 닫은 창고와 다시 찾은 가치

문다네움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34년 벨기에 정부가 지원을 끊으면서 사무실이 문을 닫았고, 오틀레는 잠긴 문 앞을 지키며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1) 전쟁이 남긴 상처
1940년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하자 문다네움 자리에는 나치 독일의 미술 전시가 들어섰고, 그 과정에서 많은 자료가 사라졌습니다. 오틀레는 1944년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2) 미완성으로 남은 세계 도시
오틀레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게 맡겨 스위스 제네바에 문다네움을 중심으로 한 지식의 도시를 설계하기도 했지만, 이 계획은 끝내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3) 박물관으로 돌아온 문다네움
월드 와이드 웹이 등장한 뒤 오틀레의 생각은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1998년 벨기에 몽스의 옛 백화점 건물에 문다네움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2015년에는 구글이 문다네움의 서랍장을 그린 기념 로고로 그를 기렸습니다.
문다네움은 정보를 잘게 나누고, 일정한 규칙으로 분류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찾아 건네는 일이 지식을 살아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비록 종이 카드와 우편에 기대야 했지만, 그 바탕에 놓인 생각은 오늘날의 검색과 데이터베이스로 이어졌습니다.
흩어진 지식을 찾을 수 있게 엮어 두는 것, 그것이 모두에게 열린 정보 세상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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