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기다리다 멈춰 버린다, 교착 상태(Deadlock)

친구가 나보다 많은 이유, 친구 관계의 역설(Friendship Paradox)
발밑의 땅을 계속 파 내려가면 무엇이 나올까요? 흙과 바위 아래에 또 바위가 이어질 것 같지만, 어느 깊이에 이르면 지구는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뀝니다. 우리가 딛고 사는 얇은 껍질이 끝나고, 지구 부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꺼운 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경계를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Mohorovičić Discontinuity)’이라고 하며, 줄여서 모호면이라고도 부릅니다. 모호면이란 쉽게 말해 지구의 겉껍질인 지각과 그 아래 맨틀을 나누는 경계면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직접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지진파 덕분에 그 깊이와 모양을 꽤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모호면이 무엇인지, 한 지진학자가 지진 기록 속에서 이 경계를 찾아낸 과정과 지진파로 땅속을 읽는 원리, 그리고 모호면까지 구멍을 뚫으려 했던 도전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지구의 껍질과 속살을 가르는 경계
모호면은 어디에 있을까

지구를 달걀에 빗대면 지각은 껍데기, 맨틀은 흰자, 핵은 노른자에 해당합니다. 모호면은 이 가운데 껍데기와 흰자가 만나는 곳입니다.
(1) 대륙과 바다에서 다른 깊이
모호면의 깊이는 장소마다 크게 다릅니다. 바다 밑에서는 해저면 아래 5~10km 정도로 얕고, 대륙 아래에서는 20~90km에 이르며 평균은 약 35km입니다. 대륙 지각이 해양 지각보다 훨씬 두껍기 때문입니다.
(2) 산이 높을수록 깊어지는 경계
높은 산맥 아래에서는 지각이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모호면도 그만큼 깊어집니다. 반대로 바다 한가운데의 해령 아래에서는 지각이 얇아 모호면이 해저 가까이 올라와 있습니다.
(3) 위와 아래의 다른 암석
모호면 위쪽 지각의 아랫부분은 현무암과 비슷한 성질의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래쪽 맨틀은 감람암처럼 더 무겁고 단단한 암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물질의 차이가 곧 경계를 만듭니다.
지진 기록에서 찾아낸 경계

모호면이라는 이름은 크로아티아의 지진학자 안드리야 모호로비치치(Andrija Mohorovičić)에게서 왔습니다.
(1) 두 번 도착한 지진파
1909년 자그레브 근처에서 지진이 일어나자, 모호로비치치는 여러 관측소의 지진 기록을 꼼꼼히 비교했습니다. 그러다 진원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관측소에서는 같은 종류의 지진파가 두 무리로 나뉘어 도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2) 빠른 길로 돌아온 파동
그는 한 무리는 지표 가까이를 곧장 지나왔고, 다른 무리는 땅속 깊은 곳의 더 빠른 층을 타고 돌아왔다고 해석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관측소일수록 돌아온 파동이 먼저 도착하는 것은, 먼 길이라도 빠른 고속도로를 타면 더 일찍 닿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 계산으로 구한 깊이
그는 지진파의 속도 차이를 바탕으로 이 경계의 깊이를 약 54km로 계산했습니다. 이후의 많은 연구가 그 결과를 뒷받침하면서, 경계면에는 그의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지진파로 땅속을 읽는 원리

땅속을 직접 볼 수 없는 지구과학자에게 지진파는 땅속을 비추는 손전등과 같습니다.
- P파(Primary Wave): 가장 먼저 도착하는 지진파로, 물질을 앞뒤로 밀고 당기며 나아갑니다.
- S파(Secondary Wave): P파보다 늦게 도착하며, 물질을 위아래나 좌우로 흔들며 나아갑니다.
- 굴절(Refraction): 파동이 성질이 다른 층을 지나며 속도가 바뀔 때 진행 방향이 꺾이는 현상입니다.
(1) 경계에서 바뀌는 속도
P파는 모호면 바로 위에서 초속 약 6.7~7.2km로 달리다가, 모호면을 지나면 초속 약 7.6~8.6km로 빨라집니다. 초속 1km 가까이 갑자기 달라지는 이 변화가 지각이 끝나는 곳을 알려 주는 표시입니다.

(2) 칼로 자른 듯한 선은 아니다
모호면은 이름처럼 면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두께가 수백 m에 이르는 전이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지진파가 보여 주는 경계와 암석 성분이 바뀌는 경계가 서로 어긋나기도 해서, 지진파 자료만으로 해석할 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모호면까지 뚫으려는 도전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모호면을 뚫고 맨틀 암석을 직접 꺼내 보고 싶어 했습니다.
(1) 바다에서 시도한 모홀 계획
1950년대 말 미국 과학자들은 지각이 얇은 바다 밑을 뚫어 맨틀에 닿겠다는 모홀 계획(Project Mohole)을 세웠습니다. 1961년 멕시코 과달루페섬 앞바다의 수심 약 3,600m 지점에서 해저 아래 183m까지 뚫어 현무암을 꺼내는 데 성공했지만, 비용 문제와 반대가 이어지면서 1966년 미국 의회가 예산을 끊어 계획은 멈췄습니다.
(2) 땅에서 가장 깊이 뚫은 구멍
옛 소련은 1970년부터 콜라반도에서 시추를 시작해 1989년 깊이 12,262m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사람이 뚫은 가장 깊은 구멍이지만, 이곳 대륙 지각은 훨씬 두꺼워 모호면에는 한참 못 미쳤습니다.
(3) 땅 위로 올라온 옛 모호면
뚫지 못한 대신 자연이 보여 주는 단서도 있습니다. 판이 움직이며 바다 밑의 지각과 맨틀 일부가 육지 위로 밀려 올라온 오피올라이트(Ophiolite)에서는 옛 모호면이 땅 위로 드러나 있어, 과학자들이 직접 걸으며 경계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모호면은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곳이지만, 지진파가 남긴 작은 시간 차이를 읽어 낸 덕분에 그 존재가 밝혀졌습니다. 100여 년 전 한 지진학자의 꼼꼼한 기록 비교가 지구 속 구조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 셈입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도 흔들림의 기록으로 읽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지구의 속을 들여다보는 과학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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