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로 자랄까, 앤소프 매트릭스(Ansoff Matrix)
쌀값이 크게 오르면 사람들은 쌀을 덜 살까요? 대부분의 물건은 값이 오르면 덜 팔리지만,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는 오히려 쌀을 더 사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값이 오를수록 더 많이 팔리는 이 이상한 물건이 바로 ‘기펜재(Giffen Good)’입니다.
기펜재란 쉽게 말해 ‘가격이 오르면 수요량이 늘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량이 줄어드는 재화’를 의미합니다. 값이 오르면 덜 사고 값이 내리면 더 산다는 수요의 법칙(Law of Demand)을 거스르기 때문에 경제학에서는 ‘기펜의 역설(Giffen Paradox)’이라고도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기펜재라는 이름이 생겨난 배경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는 원리, 그리고 실제 사례와 논쟁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수요의 법칙을 거스르는 재화의 비밀
기펜재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는가?

기펜재라는 이름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 로버트 기펜(Robert Giffen)에게서 왔습니다. 그는 19세기 영국 노동자 가정의 살림살이를 살피다가, 빵값이 오를 때 가난한 집이 빵을 오히려 더 많이 산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생각을 널리 알린 사람은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입니다. 마셜은 1895년판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에서 “기펜 씨가 지적했듯이” 빵값이 오르면 가난한 노동자 가족은 고기 같은 비싼 음식을 줄일 수밖에 없고, 그래도 빵이 가장 싼 음식이라 빵을 더 먹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1947년 미국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는 기펜의 글에서 이런 주장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고, 그보다 앞선 1815년 사이먼 그레이(Simon Gray)가 비슷한 현상을 먼저 적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가격이 올라도 더 사게 되는 원리

값이 오를 때 소비자의 선택은 두 가지 힘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펜재는 이 두 힘이 서로 반대로 움직이면서 생깁니다.
(1) 대체 효과(Substitution Effect)
어떤 물건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면 사람들은 다른 물건으로 바꾸려 합니다. 이 힘은 언제나 비싸진 물건을 덜 사게 만듭니다.
(2) 소득 효과(Income Effect)
값이 오르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양이 줄어들어 실제로는 가난해진 것과 같습니다. 소득이 줄면 더 사게 되는 값싼 물건을 열등재(Inferior Good)라 하는데, 열등재는 소득 효과가 오히려 그 물건을 더 사게 만듭니다.
(3) 소득 효과가 이길 때
열등재의 소득 효과가 대체 효과보다 클 만큼 강하면, 값이 올랐는데도 사는 양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모든 기펜재는 열등재이지만, 모든 열등재가 기펜재인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보통 세 가지 조건이 함께 맞아야 합니다.
- 열등재(Inferior Good): 소득이 줄수록 더 찾게 되는 값싼 물건이어야 합니다.
- 대체재 부족(Lack of Substitutes): 대신 고를 만한 비슷한 물건이 마땅치 않아야 합니다.
- 큰 지출 비중(Large Budget Share): 그 물건이 살림에서 차지하는 몫이 커야 하지만, 다른 음식을 조금은 살 여유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빵과 쌀로 이해하는 기펜재

하루 식비가 6,000원인 사람이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빵 한 끼는 1,000원, 더 좋아하는 고기 한 끼는 4,000원입니다. 이 사람은 빵 두 끼와 고기 한 끼로 6,000원을 꼭 맞게 씁니다. 그런데 빵값이 2,000원으로 오르면 고기를 먹을 돈이 사라지고, 세 끼를 채우려면 빵만 세 번 사야 합니다. 빵값이 올랐는데 빵을 사는 양은 두 끼에서 세 끼로 늘어난 것입니다.

중국 후난성의 쌀 실험
실제 증거로 자주 꼽히는 것은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젠슨(Robert Jensen)과 놀런 밀러(Nolan Miller)가 2008년에 발표한 연구입니다. 이들은 중국 후난성과 간쑤성의 아주 가난한 가정을 골라 주식인 쌀과 밀가루를 싸게 살 수 있는 쿠폰을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자 후난성 가정은 쌀값이 싸졌는데도 쌀을 덜 사고 고기처럼 더 비싼 음식을 더 사 먹었습니다. 거꾸로 보면 쌀값이 오를 때 쌀을 더 사는 기펜재의 모습이 드러난 셈입니다. 간쑤성의 밀가루에서는 그 증거가 약하게 나타났습니다.
기펜재를 둘러싼 논쟁과 한계

기펜재는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나오지만, 실제로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1) 아일랜드 감자는 정말 기펜재였을까?
오랫동안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 때의 감자가 대표 사례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1984년 미국 경제학자 제럴드 드와이어(Gerald Dwyer)와 코튼 린지(Cotton Lindsay)가 역사 자료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고, 1999년 셔윈 로즌(Sherwin Rosen)도 보통의 수요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2) 베블런재와는 다르다
비싸서 더 갖고 싶어지는 명품은 값 자체가 신분을 보여 주기 때문에 더 팔리는 베블런재(Veblen Good)입니다. 기펜재는 물건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인데 살림이 빠듯해서 어쩔 수 없이 더 사게 되는 경우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3) 전체 시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기펜재는 가장 가난한 가정에서만 나타나기 쉬워, 여러 소득층을 합친 시장 전체의 자료에서는 묻혀 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물건보다 사람의 처지를 강조해 ‘기펜 행동(Giffen Behavior)’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펜재는 값이 오르면 덜 산다는 상식이 언제나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예외가 대부분 가장 빠듯한 살림에서 생긴다는 점에서, 주식 물가가 가난한 가정에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도 알려 줍니다.
숫자로 보이는 수요 곡선 뒤에 숨은 사람들의 형편까지 함께 헤아리는 것, 그것이 경제를 깊이 이해하는 공부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