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끓는점의 차이로 나눈다, 증류(Distillation)
동네에서 인기 있는 빵집 사장님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매출을 더 늘리고 싶은데, 단골에게 빵을 더 팔아야 할지, 옆 동네에 가게를 하나 더 내야 할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메뉴나 사업을 시작해야 할지 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막막한 성장의 갈림길에서 선택지를 네 칸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도구가 바로 ‘앤소프 매트릭스(Ansoff Matrix)’입니다.
앤소프 매트릭스란 쉽게 말해 ‘무엇을 팔 것인가(제품)’와 ‘누구에게 팔 것인가(시장)’를 각각 기존과 신규로 나누어, 기업이 택할 수 있는 성장 전략을 네 가지로 보여 주는 표를 의미합니다. 제품·시장 성장 매트릭스(Product-Market Growth Matrix)라고도 부르며, 각 칸마다 감수해야 할 위험의 크기가 다르다는 점을 함께 알려 줍니다.
본 자료에서는 앤소프 매트릭스가 탄생한 배경부터 네 가지 성장 전략의 내용, 그리고 실제 사례와 한계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제품과 시장으로 그리는 네 갈래 성장 지도
앤소프 매트릭스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앤소프 매트릭스를 만든 사람은 러시아 출신의 미국 경영학자 이고르 앤소프(Igor Ansoff)입니다. 191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난 그는 193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1948년 브라운대에서 응용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랜드 연구소에서 미국 공군의 무기 도입 문제를 분석하는 일을 했습니다. 1957년에는 항공기 회사 록히드(Lockheed)로 옮겨 회사가 새로운 사업으로 뻗어 나갈 방법을 찾는 다각화 업무를 맡았습니다. 같은 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논문 「다각화를 위한 전략(Strategies for Diversification)」에서 이 틀을 처음 소개했습니다.
당시 많은 기업은 매출을 늘리는 일에만 매달렸을 뿐, 어느 방향으로 자랄지는 체계적으로 따지지 않았습니다. 앤소프는 성장을 제품과 시장이라는 두 축으로 나누어 보면 선택지가 분명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1965년 『기업 전략(Corporate Strategy)』이라는 책을 펴내며 전략 경영이라는 분야를 여는 데 크게 이바지했고, 오늘날 ‘전략 경영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네 칸에 담긴 4가지 성장 전략

매트릭스의 가로축은 제품, 세로축은 시장이며, 각각 기존과 신규로 나뉘어 네 칸이 만들어집니다.
(1) 시장 침투(Market Penetration)
기존 제품을 기존 시장에 더 많이 파는 전략입니다. 할인 행사, 적립 쿠폰, 광고를 늘려 단골이 더 자주 사게 하거나 경쟁사 고객을 끌어옵니다. 이미 잘 아는 제품과 고객을 다루므로 네 전략 가운데 위험이 가장 낮습니다.
(2) 시장 개발(Market Development)
기존 제품을 새로운 시장에 파는 전략입니다. 다른 지역에 지점을 내거나 해외로 수출하고, 가정용으로 팔던 제품을 회사나 학교에 납품하는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3) 제품 개발(Product Development)
기존 고객에게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전략입니다. 고객이 이미 믿고 있는 브랜드의 힘을 빌려 새 메뉴나 새 기능을 선보이므로,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가 중요합니다.
(4) 다각화(Diversification)
새로운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에 들어가는 전략입니다. 제품도 고객도 낯설기 때문에 네 전략 가운데 위험이 가장 큽니다. 대체로 시장 침투에서 시작해 시장 개발이나 제품 개발, 다각화 쪽으로 갈수록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늘어나고 실패할 위험도 커진다고 봅니다.
빵집과 기업 사례로 이해하는 네 가지 선택

앞에서 본 빵집 사장님의 고민을 네 칸에 넣어 보면 선택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 시장 침투(Market Penetration): 단골에게 스탬프 카드를 나눠 주고 아침 세트 할인을 열어 같은 빵을 더 자주 사게 합니다.
- 시장 개발(Market Development): 같은 빵을 옆 동네 2호점과 온라인 택배로 팔아 새로운 손님을 만납니다.
- 제품 개발(Product Development): 기존 손님을 위해 샌드위치와 커피 메뉴를 새로 내놓습니다.
- 다각화(Diversification): 꽃집을 열거나 카페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드는 것처럼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합니다.
기존의 힘을 살린 다각화, 후지필름
다각화라고 해서 모두 무모한 도전은 아닙니다. 사진 필름 시장이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크게 줄어들자, 일본의 후지필름은 필름을 만들며 쌓은 콜라겐 연구와 사진의 색바램을 막는 산화 방지 기술을 살려 2006년 화장품 분야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노화 관리용 스킨케어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필름의 주성분인 콜라겐이 사람 피부의 주성분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미 가진 기술이나 역량과 이어진 다각화는 ‘관련 다각화’라 하며,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 가는 비관련 다각화보다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앤소프 매트릭스를 쓸 때 기억할 한계

앤소프 매트릭스는 단순해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지만, 그만큼 놓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1) 경쟁자의 반응을 담지 못한다
표는 우리 회사의 선택지만 보여 줄 뿐,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거나 같은 시장에 뛰어드는 상황은 따로 따져야 합니다.
(2) ‘새롭다’의 기준이 모호하다
정말 새로운 제품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낯선 고객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품 개발과 다각화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3) 실행 역량은 따로 점검해야 한다
어느 칸을 고르든 그 일을 해낼 인력과 자금, 조직의 유연함이 있는지는 표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SWOT 분석이나 산업 구조 분석 같은 다른 도구와 함께 쓰는 것이 좋습니다.
앤소프 매트릭스는 반세기가 넘도록 경영 현장에서 쓰이며, 성장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네 갈래의 구체적인 길로 바꿔 주었습니다. 익숙한 곳에서 한 걸음씩 넓혀 갈지, 낯선 곳으로 크게 뛰어들지는 결국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가진 제품과 고객을 냉정하게 살피고 어느 칸으로 나아갈지 위험과 함께 저울질하는 것, 그것이 흔들림 없는 성장 전략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