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꾸기 아까운 숨은 값, 전환 비용(Switching Costs)

관광객이 쓴 돈은 어디로 갈까, 관광 누출(Tourism Leakage)
태풍이 지나간 뒤 뉴스에서 “복구 공사로 건설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부서진 것을 고치려면 돈이 돌고, 돈이 돌면 누군가는 일감을 얻으니 손해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말 무언가가 부서지는 일이 사회 전체를 더 부유하게 만들까요? 이 그럴듯한 착각을 짚어 낸 이야기가 바로 ‘깨진 유리창의 오류(Broken Window Fallacy)’입니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란 쉽게 말해 ‘파괴가 일으키는 눈앞의 소비만 보고, 그 돈이 원래 쓰였을 다른 곳은 보지 못하는 착각’을 의미합니다. 1850년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바스티아(Frédéric Bastiat)가 처음 들려준 짧은 우화에서 이름이 나왔고, 이야기 속 유리 장수에 빗대 ‘유리 장수의 오류(Glazier’s Fallacy)’라고도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바스티아의 우화와 그 속에 담긴 기회비용의 원리부터 재난과 전쟁, 정책에서 이 오류가 나타나는 모습, 그리고 이 생각을 다룰 때 주의할 점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학
바스티아가 들려준 깨진 유리창 이야기

바스티아는 1850년 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Ce qu’on voit et ce qu’on ne voit pas)」에서 한 가게 주인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장난꾸러기 아들이 가게 유리창을 깨뜨리자, 구경하던 이웃들은 주인을 이렇게 위로합니다. “유리창이 깨지지 않으면 유리 장수는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유리창을 고치는 데 6프랑이 든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유리 장수는 6프랑을 벌고 기뻐하며, 그 돈은 다시 시장으로 흘러갑니다. 여기까지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웃들의 위로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스티아는 가게 주인이 그 6프랑으로 원래 무엇을 했을지 묻습니다. 낡은 구두를 새로 맞추거나 서재에 책 한 권을 더 들였을 수도 있습니다.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면 주인은 멀쩡한 창문과 새 구두를 함께 가졌을 것입니다. 사고가 난 뒤에는 창문 하나만 남습니다.

숨은 손실을 드러내는 기회비용

이 우화의 핵심은 기회비용입니다. 한 곳에 쓴 돈과 시간은 다른 곳에 쓸 수 없으므로, 어떤 선택이든 포기한 다른 선택의 가치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깨진 유리창은 새로운 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부를 없앤 뒤 그 자리를 메우는 데 돈을 돌린 것에 가깝습니다.
(1) 보이는 쪽
유리 장수의 매출, 복구에 고용된 사람들, 오가는 돈의 흐름처럼 눈에 잘 띄고 숫자로 금방 잡히는 효과입니다.
(2) 보이지 않는 쪽
구두 가게가 놓친 주문, 사지 못한 책, 그리고 사라진 유리창 자체의 가치처럼 일어나지 않아서 아무도 세지 않는 효과입니다.
(3) 사회 전체의 결과
보이는 쪽과 보이지 않는 쪽을 함께 놓으면, 사회는 유리창 한 장만큼 가난해졌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바스티아는 이를 “파괴는 이익이 아니다”라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하나를 고르느라 포기한 다른 선택지 가운데 가장 큰 가치입니다.
-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 어떤 행동이나 정책이 처음 노린 목표 밖에서 낳는 뜻밖의 효과입니다.
- 부의 저량(Stock of Wealth): 일정 시점에 사회가 쌓아 둔 건물·기계·물건 같은 자산의 총량입니다.
재난과 전쟁, 정책 속에서 되풀이되는 오류

깨진 유리창의 오류는 동네 가게보다 훨씬 큰 무대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냅니다. 판단의 틀은 같습니다. 새로 생긴 일감만 세고, 그 돈과 사람이 원래 했을 일은 빼먹는 것입니다.
(1) 자연재해와 복구 특수
대지진이나 홍수 뒤 복구 공사로 일부 산업의 매출이 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너진 집과 다리는 사회가 이미 가지고 있던 재산이었고, 복구에 드는 돈은 다른 투자와 소비를 미룬 대가입니다.
(2) 전쟁 특수
“전쟁이 경기를 살린다”는 주장도 같은 구조입니다. 무기와 군수품에 쓰인 돈과 인력은 식량, 의료, 교육처럼 다른 곳에 쓰일 수 있었습니다. 미국 경제 평론가 헨리 해즐릿(Henry Hazlitt)은 1946년에 펴낸 경제 입문서 『Economics in One Lesson』에서 가치 있는 것을 마구 없애는 일은 언제나 순손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3) 일자리를 위한 낭비
일부러 일감을 만들기 위해 멀쩡한 물건을 버리게 하거나 필요 없는 공사를 벌이자는 생각도 이 오류에 가깝습니다.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보이지만, 같은 돈으로 만들 수 있었던 더 쓸모 있는 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우화를 쓸 때 기억할 점

깨진 유리창의 오류는 ‘돈이 돈다’와 ‘부가 늘어난다’를 구분하라고 일러 줍니다. 국내총생산(GDP)은 한 해 동안 새로 만든 것의 흐름을 재는 지표라, 복구 공사가 늘면 수치가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무너진 건물과 사라진 재산은 이 지표에 따로 빠지지 않으므로, 수치가 오른다고 사회가 더 부유해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우화를 모든 지출을 반대하는 근거로 넓혀 쓰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경기 침체로 일손과 공장이 놀고 있을 때 정부 지출이 생산을 늘릴 수 있는지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래 논쟁이 이어진 주제입니다. 또 재난 뒤 낡은 시설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꾸면서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오르는 사례도 연구됩니다. 그래도 그 이익은 파괴 덕분이 아니라 다시 짓는 선택과 투자 덕분입니다.
결국 이 우화가 남기는 교훈은 경제 이야기를 들을 때 한 번 더 묻는 습관입니다. 누가 이득을 보는지와 함께, 그 돈과 시간이 원래 어디로 갔을지, 그리고 그동안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함께 따져 보는 것입니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는 파괴가 일으키는 눈앞의 소비와 일자리만 보고, 그 돈이 원래 쓰였을 곳과 사라진 재산은 보지 못하는 착각입니다. 바스티아의 우화는 기회비용을 함께 따지면 파괴가 이익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보이는 숫자 뒤에서 놓친 선택과 사라진 가치까지 함께 헤아려 보는 것, 그것이 깨진 유리창의 오류를 넘어서는 경제적 사고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