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을 마을이 책임지다, 엘리자베스 구빈법(Elizabethan Poor Law)
멕시코 음식점에서 먹는 토르티야는 밀가루 빵과는 다른 고소한 향과 쫀득한 식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토르티야를 만드는 옥수수 반죽은 옥수숫가루에 물만 부어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반죽을 빚기 전에 옥수수를 특별한 물에 삶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바로 ‘닉스타말화(Nixtamalization)’입니다. 닉스타말화란 말린 옥수수 알갱이를 석회수 같은 알칼리성 물에 삶고 불린 뒤 씻어 껍질을 벗겨 내는 전통 가공법으로, 옥수수를 더 부드럽고 영양가 있는 식재료로 바꾸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본 자료에서는 닉스타말화가 시작된 역사와 실제 만드는 과정, 알칼리가 옥수수 속에서 일으키는 변화, 그리고 이 기술을 함께 가져가지 않은 지역에서 벌어진 일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옥수수를 바꾸는 알칼리의 힘
메소아메리카에서 시작된 오래된 지혜

닉스타말화는 옥수수가 처음 재배된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곧 오늘날의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 3천 년이 넘는 역사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흔적은 과테말라 남부 해안에서 나온 도구로, 기원전 1500년에서 1200년 무렵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옥수수 농사와 함께 이 기술도 아메리카 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2) 우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
누가 처음 이 방법을 찾아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불에 달군 돌을 물에 넣어 음식을 끓이던 시절, 석회암이 많은 지역에서 뜨거운 석회암 조각을 쓰다 보니 물이 알칼리성으로 바뀌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실제로 실험에서도 달군 석회암만으로 닉스타말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3) 이름에 담긴 재
닉스타말이라는 말은 아즈텍 사람들이 쓰던 나와틀어(Nahuatl)에서 왔습니다. ‘재’를 뜻하는 넥스틀리(nextli)와 ‘옥수수 반죽’을 뜻하는 타말리(tamalli)가 합쳐진 말로, 처음부터 재를 섞은 물과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삶고, 불리고, 씻어 내는 과정

닉스타말화는 단순해 보이지만 단계마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과정입니다.
- 삶기(Cooking): 말린 옥수수 알갱이를 석회수에 넣고 끓는점 가까이에서 익힙니다. 지역과 음식에 따라 몇 분에서 한 시간 정도 삶습니다.
- 불리기(Steeping): 불을 끈 뒤 삶은 물에 그대로 담가 두며,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하루 가까이 둡니다.
- 씻기와 껍질 벗기기(Washing and Hulling): 알칼리 물을 따라 버리고 깨끗한 물로 여러 번 헹군 뒤, 느슨해진 겉껍질을 벗겨 냅니다.
이때 따라 버리는 누런 물을 네하요테(nejayote)라고 부르는데, 녹아 나온 껍질과 전분이 섞여 있고 맛이 좋지 않아 꼼꼼히 씻어 내야 합니다.
이렇게 처리한 알갱이를 맷돌에 갈면 마사(masa)라는 반죽이 됩니다. 마사는 토르티야와 타말레(Tamale), 토르티야 칩의 재료가 되며, 알갱이를 통째로 삶아 먹는 호미니(Hominy)도 같은 과정을 거친 옥수수입니다.

알칼리가 옥수수 속에서 일으키는 변화

알칼리성 물은 옥수수 알갱이의 구조와 성분을 여러 방향으로 바꿔 놓습니다.
(1) 껍질이 풀리고 알갱이가 부드러워짐
옥수수 세포벽을 붙잡고 있는 헤미셀룰로스(Hemicellulose)와 펙틴(Pectin)은 알칼리에 잘 녹습니다. 그래서 단단한 겉껍질이 쉽게 벗겨지고, 알갱이가 물을 머금어 갈기 쉬워집니다.
(2) 반죽이 뭉치는 힘이 생김
익는 동안 전분이 부풀어 오르고, 석회수 속 칼슘이 단백질과 다당류 사이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 덕분에 그냥 간 옥수숫가루로는 만들 수 없던 찰기 있는 반죽이 생깁니다. 함께 늘어난 칼슘은 영양 면에서도 보탬이 됩니다.
(3) 영양소를 몸이 쓸 수 있게 됨
옥수수에는 나이아신(Niacin), 곧 비타민 B3가 다른 성분에 단단히 묶인 형태로 들어 있어 그대로는 몸이 거의 흡수하지 못합니다. 알칼리 처리는 이 결합을 풀어 나이아신을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줍니다.
곰팡이 독소를 줄이는 효과
닉스타말화는 옥수수에 생기기 쉬운 곰팡이 독소인 아플라톡신(Aflatoxin)을 크게 줄여 주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향과 맛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식품 안전 면에서도 이점이 있는 셈입니다.
기술 없이 퍼진 옥수수와 펠라그라

옥수수는 신대륙 발견 이후 세계 곳곳으로 퍼졌지만, 닉스타말화는 함께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1) 유럽을 덮친 낯선 병
옥수수는 좁은 땅에서도 많은 열량을 얻을 수 있어 유럽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주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닉스타말화를 거치지 않은 옥수수에 크게 의존한 지역에서는 피부염과 설사, 정신 이상이 나타나는 펠라그라(Pellagra)가 널리 퍼졌습니다.
(2) 미국 남부의 풍토병
미국에 정착한 유럽 이주민들도 이 과정을 번거롭고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20세기 초 옥수수를 주로 먹던 미국 남부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펠라그라가 풍토병처럼 번졌습니다.
(3) 식단이 해답이었음
펠라그라는 나이아신이 부족해 생기는 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식단이 다양해지고 밀가루에 영양소를 더하는 강화가 이루어지면서 크게 줄었습니다. 같은 옥수수를 먹고도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이 병이 드물었던 이유가 바로 닉스타말화였던 것입니다.
닉스타말화는 현대 과학이 영양소의 존재를 알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경험으로 다듬어 온 조리법입니다. 재를 섞은 물 한 솥이 옥수수를 더 맛있고 안전하며 영양가 있는 주식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은, 음식 문화 속에 과학이 숨어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토르티야 한 장 뒤에 3천 년 넘게 이어져 온 석회수 한 솥의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닉스타말화를 이해하는 과정의 첫걸음입니다.
이 글 PDF 구매
1,000원한국어 PDF · 같은 계정으로 다시 다운로드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