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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에 제습제 통을 열어 보면 처음에는 하얀 알갱이만 가득하던 통 바닥에 어느새 물이 고여 있습니다. 누가 물을 부은 것도 아닌데 알갱이는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를 맑은 액체가 채웁니다. 공기 속에 떠 있던 수증기를 고체가 스스로 빨아들이고, 그 물에 자기 몸까지 녹여 버린 것입니다. 이 현상이 바로 ‘조해(Deliquescence)’입니다.
조해란 쉽게 말해 ‘고체가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다가, 흡수한 물에 스스로 녹아 용액이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물기를 머금는 성질은 많은 물질에 있지만, 아예 녹아서 액체가 될 만큼 강하게 물을 끌어당기는 물질은 따로 구별해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조해가 무엇이고 흡습성과 어떻게 다른지부터, 고체가 녹기 시작하는 원리와 기준이 되는 습도, 생활 속에서 만나는 조해성 물질, 그리고 이를 활용하고 다룰 때의 주의점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공기 속 물에 스스로 녹는 고체, 조해의 원리와 쓰임
조해란 무엇인가

조해를 이해하려면 비슷해 보이는 두 가지 성질을 나누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1) 흡습성은 물기를 머금는 성질이다
흡습성(Hygroscopy)은 물질이 주변 공기에서 물 분자를 끌어당겨 붙잡아 두는 성질입니다. 설탕, 꿀, 종이, 나무, 나일론 같은 물질이 여기에 속합니다. 습한 날 소금통 속 소금이 눅눅해지고 덩어리지는 것도 흡습성 때문입니다.
(2) 조해는 흡습성의 극단이다
흡습성이 아주 강한 물질은 물을 머금는 데서 멈추지 않고, 모은 물에 스스로 녹아 수용액이 됩니다. 이것이 조해이며, 겉모습이 고체에서 액체로 바뀐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3) 반대 방향의 현상도 있다
결정 속에 물 분자를 품은 물질 가운데 일부는 건조한 공기 중에서 그 물을 내놓고 하얀 가루처럼 부서집니다. 이를 풍해(Efflorescence)라고 부르며, 조해와는 물이 오가는 방향이 반대입니다.
고체는 언제 녹기 시작할까

조해가 일어나느냐는 물질과 공기 사이에서 수증기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1) 증기압의 차이가 물을 움직인다
조해성 물질의 표면에 아주 얇은 물막이 생기면 그 안에 물질이 녹아 진한 용액이 됩니다. 이 용액이 내보내는 수증기의 압력이 공기 중 수증기의 압력보다 낮으면, 공기 쪽의 수증기가 계속 용액으로 들어옵니다. 들어온 물은 다시 고체를 녹이고, 이 과정이 이어지면서 고체 전체가 액체로 바뀝니다.
(2) 물질마다 기준 습도가 있다
고체가 녹기 시작하는 상대습도를 조해 상대습도(Deliquescence Relative Humidity, DRH)라고 합니다. 공기의 습도가 이 값보다 높으면 녹고, 낮으면 고체 상태를 유지합니다.
(3) 기준 습도는 고정된 값이 아니다
조해 상대습도는 온도에 따라 달라지고, 같은 물질이라도 결정 속에 물을 얼마나 품은 형태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25도에서 측정한 값을 보면 차이가 뚜렷합니다. 염화마그네슘은 약 33퍼센트, 탄산칼륨은 약 43퍼센트, 염화나트륨은 약 75퍼센트, 염화칼륨은 약 84퍼센트, 황산칼륨은 약 97퍼센트입니다. 숫자가 낮을수록 웬만큼 건조한 공기에서도 녹아내리는 셈입니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조해성 물질

조해는 실험실보다 생활 가까이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 염화칼슘(Calcium Chloride): 제습제와 겨울철 제설제로 쓰입니다. 제습제 통 바닥에 고이는 액체는 염화칼슘이 흡수한 물에 녹아 생긴 염화칼슘 수용액입니다.
- 염화마그네슘(Magnesium Chloride): 천일염에서 빠져나오는 간수의 주성분입니다. 조해 상대습도가 낮아 소금을 쌓아 두면 공기 중 수분을 먹고 녹아 흘러내립니다.
- 수산화나트륨(Sodium Hydroxide): 비누를 만드는 재료로 알려진 강한 염기입니다. 고체를 공기 중에 두면 표면이 금세 젖어 끈적해지며, 공기 속 이산화탄소까지 흡수해 성질이 변합니다.
- 질산암모늄(Ammonium Nitrate): 비료로 쓰이는 물질로, 습한 창고에서는 굳거나 녹아 품질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순수한 소금은 습도가 75퍼센트 근처를 넘지 않으면 잘 녹지 않지만, 간수가 덜 빠진 소금은 훨씬 낮은 습도에서도 축축해집니다. 같은 소금이라도 섞인 성분에 따라 보관 방법이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조해를 활용하는 법과 주의할 점

물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성질은 잘 쓰면 도구가 되고, 잘못 다루면 골칫거리가 됩니다.
(1) 습기를 없애는 건조제
조해성 물질은 공기 중의 수분을 적극적으로 모으기 때문에 옷장과 신발장의 제습제로 쓰입니다. 실험실에서도 반응 중에 생긴 물이나 기체 속 수분을 없애는 건조제로 활용합니다.
(2) 구름을 만드는 씨앗
바다에서 날아오른 아주 작은 소금 입자처럼 물을 잘 끌어당기는 입자는 대기 중에서 수증기가 모여 물방울이 되는 중심 역할을 합니다. 조해와 흡습성이 날씨에도 관여하는 셈입니다.
(3) 밀폐 보관이 기본이다
조해성 시약이나 비료는 공기와 닿으면 무게와 농도가 달라지므로 뚜껑을 꼭 닫아 습기가 적은 곳에 보관해야 합니다. 정확한 양을 재야 하는 실험에서는 빠르게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4) 고인 액체를 조심한다
제습제에 고인 액체는 진한 염 용액이라 피부에 닿으면 자극이 될 수 있고, 쏟으면 금속을 부식시키거나 바닥에 얼룩을 남길 수 있습니다. 다 쓴 제습제는 흘리지 않게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해는 고체와 공기 사이에서 물이 어느 쪽으로 흐르느냐는 단순한 원리가 만든 현상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증기를 붙잡아 액체로 바꾸는 이 성질 덕분에 우리는 장마철 습기를 덜어 내고, 소금이 눅눅해지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질마다 녹기 시작하는 습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보관과 사용 방법을 고르는 것, 그것이 조해성 물질을 다루는 지혜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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