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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면 이길까, 선발자 이점(First-Mover Advantage)
눈이 내린 겨울 아침, 제설차가 도로에 하얀 알갱이를 뿌리고 지나가면 얼어붙었던 길이 금세 질척하게 녹기 시작합니다. 같은 영하의 날씨인데도 바닷물은 쉽게 얼지 않고, 냉동실에 오래 둔 아이스크림은 돌처럼 단단해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장면 뒤에 숨은 공통의 원리가 바로 어는점 내림입니다.
어는점 내림이란 쉽게 말해 ‘순수한 액체에 다른 물질이 녹아 있으면 그 액체가 어는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순수한 물은 0도에서 얼지만 소금이나 설탕이 녹아 있는 물은 그보다 더 차가워져야 비로소 얼음이 됩니다. 화학에서는 녹아 있는 물질의 종류보다 알갱이의 개수에 따라 크기가 정해지는 대표적인 성질로 다룹니다.
본 자료에서는 어는점이 낮아지는 원리부터 그 크기를 어림하는 방법, 도로와 자동차와 부엌에서 쓰이는 모습, 그리고 추위를 견디는 생물과 품질 검사에 이르는 활용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녹아 있는 알갱이가 얼음을 늦추는 원리
왜 녹아 있는 물질이 어는 것을 방해할까

물이 얼 때는 물 분자들이 서로 손을 잡듯 규칙적으로 늘어서며 얼음 결정을 만듭니다. 얼음과 물이 맞닿은 곳에서는 분자가 얼음에 달라붙는 일과 얼음에서 떨어져 나오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두 속도가 같아지는 온도가 어는점입니다.
(1) 얼음에 붙을 분자가 줄어든다
물에 소금이 녹으면 물 분자 사이사이에 소금 알갱이가 섞여 들어갑니다. 얼음 표면에 다가오는 물 분자의 수가 그만큼 줄어드니 얼음이 자라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2) 녹는 쪽은 그대로다
반면 얼음은 순수한 물 분자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얼음에서 분자가 떨어져 나오는 속도는 거의 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얼어붙는 속도와 녹는 속도가 다시 맞으려면 온도가 더 내려가야 합니다.
(3) 섞인 상태가 더 안정하다
여러 물질이 고르게 섞인 용액은 순수한 물보다 무질서한 상태라서 스스로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질서 정연한 얼음으로 바뀌려면 더 낮은 온도가 필요합니다.
알갱이의 개수가 크기를 정한다

어는점이 얼마나 내려가는지는 녹아 있는 물질이 무엇인지보다 물속에 알갱이가 몇 개나 흩어져 있는지에 따라 정해집니다. 이런 성질을 총괄성이라고 부르며, 끓는점이 올라가는 현상과 삼투압도 같은 무리에 속합니다.
- 묽은 용액의 규칙(Blagden’s Law): 18세기 영국 과학자 찰스 블래그든은 어는점이 내려가는 정도가 녹은 물질의 양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묽은 용액에서는 녹인 양을 두 배로 늘리면 어는점도 거의 두 배만큼 내려갑니다.
- 물의 기준값(Cryoscopic Constant): 물 1킬로그램에 알갱이 1몰이 녹아 있으면 어는점이 약 1.86도 내려갑니다. 이 값은 용매마다 달라서 벤젠은 약 5.12도, 장뇌는 약 39.7도나 됩니다.
- 쪼개지는 물질의 효과(Van ‘t Hoff Factor): 설탕은 물에 녹아도 한 분자가 그대로 알갱이 하나지만, 소금은 나트륨 이온과 염화 이온 두 개로 나뉩니다. 그래서 같은 몰수라면 소금이 설탕보다 어는점을 약 두 배 더 낮춥니다.
도로와 자동차, 그리고 부엌에서

어는점 내림은 우리가 겨울을 나는 방식 곳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소금이 얼음을 직접 녹인다기보다, 얼음 표면의 얇은 물기에 녹아 그 물이 다시 얼지 못하게 만든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제설제의 한계 온도
도로에 흔히 뿌리는 염화나트륨은 물의 어는점을 최대 영하 21도 안팎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그보다 추운 곳에서는 효과가 떨어져 염화칼슘이나 염화마그네슘 같은 다른 염을 씁니다. 다만 이런 염은 쇠를 부식시키기 쉬워, 공항처럼 금속 설비가 많은 곳에서는 포름산칼륨이나 아세트산칼륨 같은 제설제를 대신 사용합니다.
부동액과 아이스크림
자동차 냉각수에는 물과 에틸렌글리콜을 섞은 부동액을 넣어 한겨울에도 라디에이터가 얼어 터지지 않게 합니다. 아이스크림이 영하에서도 숟가락으로 떠질 만큼 부드러운 것도 녹아 있는 설탕이 어는점을 낮춰 일부가 얼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추위를 견디는 생물과 품질 검사

어는점 내림은 생물이 혹독한 추위를 이겨 내는 비결이기도 하고, 실험실과 공장에서는 정밀한 측정 도구로도 쓰입니다.
(1) 몸속에 부동액을 만드는 생물
북아메리카의 무지개빙어는 겨울이 되면 몸속에 글리세롤을 쌓아 얼어붙은 하구에서도 살아남습니다. 일부 개구리는 추위가 닥치면 간에 저장한 글리코겐을 분해해 피 속에 포도당을 잔뜩 내보냅니다. 나무의 수액 역시 녹아 있는 물질 덕분에 겨울에 쉽게 얼지 않습니다.
(2) 우유에 물을 탔는지 가려낸다
우유의 어는점은 녹아 있는 젖당과 무기질 때문에 물보다 일정하게 낮습니다. 여기에 물을 타면 어는점이 0도 쪽으로 올라가므로, 낙농업에서는 어는점을 재어 물을 섞었는지 확인합니다.
(3) 순도와 분자량을 잰다
순수한 고체에 불순물이 섞이면 녹는점이 낮아지고 녹는 온도 범위도 넓어집니다. 그래서 유기화학 실험에서는 녹는점을 재어 물질의 순도를 가늠하고, 어는점이 내려간 정도로 모르는 물질의 분자량을 계산하기도 합니다.
어는점 내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알갱이 몇 개가 물이 얼음으로 바뀌는 순간을 늦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겨울 도로의 제설제부터 자동차 부동액, 얼지 않는 물고기와 우유 검사까지 모두 같은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익숙한 겨울 풍경 속에서 녹아 있는 알갱이의 힘을 읽어 내는 것, 그것이 용액의 성질을 이해하는 화학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