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꾸면 이긴다는 역설, 몬티 홀 문제(Monty Hall Problem)
연필은 열두 자루를 묶어 한 다스로 세고, 달걀은 서른 알을 모아 한 판으로 셉니다. 낱개로 세기 번거로운 물건은 정해진 묶음 단위로 세면 훨씬 편합니다. 그런데 화학자가 다루는 원자와 분자는 너무 작고 많아서 열두 개나 서른 개짜리 묶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화학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묶음 단위가 따로 있는데, 그 묶음에 들어가는 알갱이의 수가 바로 ‘아보가드로 수(Avogadro’s Number)’입니다.
아보가드로 수란 쉽게 말해 ‘물질 1몰(mol)에 들어 있는 알갱이의 개수’를 의미합니다. 그 값은 약 6.02 곱하기 10의 23제곱, 숫자로 풀어 쓰면 602,214,076,000,000,000,000,000개입니다. 이 수 덕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와 저울로 잴 수 있는 물질의 세계가 하나로 이어집니다.
본 자료에서는 아보가드로 수의 뜻부터 그 크기를 실감하는 방법, 이 수를 찾아낸 과학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2019년에 바뀐 몰의 정의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원자를 세는 묶음, 몰과 아보가드로 수
아보가드로 수란 무엇인가?

화학 반응은 원자와 분자가 일정한 개수의 비율로 만나서 일어납니다. 수소 분자 두 개와 산소 분자 한 개가 만나 물 분자 두 개가 되는 식입니다. 그래서 화학자에게는 무게보다 개수가 중요한데, 원자를 하나하나 셀 수는 없으니 아보가드로 수만큼을 한 묶음으로 삼아 세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쓰이는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몰(Mole): 아보가드로 수만큼의 알갱이를 한 묶음으로 세는 단위로, 국제단위계(SI)의 일곱 가지 기본 단위 가운데 하나입니다.
- 몰 질량(Molar Mass): 물질 1몰의 질량입니다. 탄소는 약 12그램, 물은 약 18그램입니다.
- 아보가드로 상수(Avogadro Constant): 아보가드로 수에 ‘몰당’이라는 단위를 붙인 물리 상수로, 기호 NA로 씁니다.
(1) 질량과 개수를 잇는 다리
원자 하나의 질량에 아보가드로 수를 곱하면 1몰의 질량이 됩니다. 덕분에 화학자는 실험실 저울로 물질의 무게를 재는 것만으로 그 안에 원자가 몇 개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숟가락 물에 담긴 거대한 수

물 1몰은 약 18그램으로, 큰 숟가락 하나를 조금 넘는 양입니다. 이 적은 물에도 물 분자가 약 6.02 곱하기 10의 23제곱 개나 들어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물 분자 하나가 차지하는 부피는 약 0.03세제곱나노미터에 불과합니다.
(1) 1초에 하나씩 센다면
이 수를 1초에 하나씩 쉬지 않고 센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다 세는 데에는 약 1경 9천조 년이 걸리는데, 이는 우주의 나이로 알려진 약 138억 년보다 100만 배 이상 긴 시간입니다.
(2) 기체는 종류와 상관없이
기체는 종류가 달라도 같은 온도와 압력에서 1몰이 차지하는 부피가 거의 같습니다. 섭씨 0도, 1기압에서는 산소든 질소든 1몰이 약 22.4리터를 차지합니다.
아보가드로 수를 찾아낸 사람들

이 수에 이름을 남긴 이탈리아의 과학자 아메데오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는 정작 이 수를 직접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811년 ‘온도와 압력이 같으면 같은 부피의 기체에는 종류와 관계없이 같은 수의 분자가 들어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을 뿐입니다.
[사례 1] 오랫동안 잊혔던 가설
아보가드로의 가설은 반세기 가까이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4년 뒤인 1860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열린 국제 화학자 회의에서 이탈리아의 화학자 스타니슬라오 칸니차로(Stanislao Cannizzaro)가 이 가설의 가치를 널리 알리면서 비로소 재평가되었습니다.
[사례 2] 수를 재고 이름을 붙인 과학자들
1865년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로슈미트(Josef Loschmidt)는 일정한 부피의 기체에 든 분자 수를 처음으로 어림했습니다. 1909년 프랑스의 장 페랭(Jean Perrin)은 물속 작은 알갱이가 불규칙하게 떠도는 브라운 운동을 관찰하는 등 여러 실험으로 이 수를 측정하고 ‘아보가드로 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페랭은 이 연구로 원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굳혔고, 192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2019년, 숫자로 다시 정한 몰

1971년부터 몰은 ‘탄소-12 원자 12그램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만큼의 양’으로 정의되었습니다. 이 방식에서는 아보가드로 수를 실험으로 측정해야 했기 때문에, 값이 늘 조금씩의 오차를 안고 있었습니다.
(1) 오차 없는 정확한 값
2019년 5월 20일부터 국제단위계는 아보가드로 상수를 정확히 6.02214076 곱하기 10의 23제곱(몰당)으로 못 박았습니다. 이제 1몰은 무게가 아니라 정확한 개수로 정의되며, 같은 날 킬로그램 같은 다른 기본 단위도 변하지 않는 상수를 바탕으로 새로 정의되었습니다.
(2) 세상에서 가장 둥근 공
이 값을 정하는 과정에서는 순도를 극도로 높인 실리콘-28 결정을 거의 완벽한 공 모양으로 깎아, 그 안에 든 원자의 수를 세는 국제 공동 연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3) 화학자의 기념일
미국 등지의 학교에서는 아보가드로 수의 6.02와 10의 23제곱을 본떠 10월 23일 오전 6시 2분부터 오후 6시 2분까지를 ‘몰의 날(Mole Day)’로 기념하기도 합니다.
아보가드로 수는 너무 작아서 셀 수 없는 원자를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양으로 바꾸어 주는 화학의 통역사입니다. 약을 만들 때 성분의 양을 정하는 일부터 반응에 필요한 재료를 계산하는 일까지, 이 수는 실험실과 공장 어디에서나 쓰입니다.
보이지 않는 알갱이를 셀 수 있는 수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 그것이 화학적 사고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