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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기가 끝난 뒤 “후반에 수비수를 바꾸지 않을 때부터 질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흔히 봅니다. 주식이 크게 떨어진 다음에는 “그때 이미 위험 신호가 보였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연애가 끝난 친구에게는 “처음부터 안 맞아 보였어”라는 말이 건네집니다. 그런데 정작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렇게 말한 사람은 드뭅니다.
이처럼 일이 벌어진 뒤에 그 결과를 처음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고 믿는 마음의 습관을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결과를 알고 나면 과거가 실제보다 훨씬 뻔해 보이는 착각’을 의미하며, ‘다 알고 있었어 효과(Knew-It-All-Along Effect)’라고도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사후 확신 편향이 처음 실험으로 확인된 과정부터 이 편향을 이루는 세 가지 모습, 그것이 병원과 법정, 투자 현장에서 일으키는 문제, 그리고 편향을 줄이는 방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결과가 과거를 다시 쓰는 사후 확신 편향
닉슨의 방문으로 시작된 실험

사후 확신 편향은 1970년대 미국 심리학자 바루크 피시호프(Baruch Fischhoff)의 연구로 본격적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임상 의사들이 환자의 결과를 놓고 “처음부터 알았다”고 말하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실험으로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소련 방문을 앞두고, 피시호프와 루스 베이스(Ruth Beyth)는 참가자들에게 여러 결과가 일어날 확률을 미리 적게 했습니다. 방문이 끝난 뒤 다시 불러 예전에 적은 확률을 기억해 보라고 하자, 참가자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처음보다 더 높은 확률을 적었다고 떠올렸습니다.
1975년 발표된 이 논문의 제목은 ‘그렇게 될 줄 알았다(I knew it would happen)’였습니다. 결과를 알게 된 순간 우리의 기억이 그 결과 쪽으로 슬그머니 옮겨 간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같은 해 피시호프는 또 다른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역사 속 사건을 담은 짧은 이야기와 네 가지 가능한 결말을 보여 주고, 그중 하나가 실제 결말이라고 알려 준 뒤 각 결말의 가능성을 매기게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어느 결말을 들었든 바로 그 결말에 가장 높은 가능성을 주었고, 자신은 결말을 몰랐어도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사후 확신 편향의 세 가지 모습

심리학자 닐 로즈(Neal Roese)와 캐슬린 보스(Kathleen Vohs)는 2012년 논문에서 이 편향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1) 기억의 왜곡
“나는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어”처럼 예전에 내렸던 판단을 실제보다 결과에 가깝게 기억하는 모습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2) 필연성의 착각
“상황을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처럼, 일어난 결과가 애초에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여기는 모습입니다.
(3) 예측 가능성의 착각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처럼, 자신이 미리 내다볼 수 있었다고 믿는 모습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기 판단력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치게 커집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까닭은 결과를 알게 되면 그 결과를 설명해 주는 정보만 또렷하게 떠오르고, 반대되는 정보는 흐릿해지기 때문입니다. 뇌는 새 정보로 기억을 고쳐 쓰고는 그것이 원래 기억이라고 믿습니다.
병원과 법정, 투자를 흔드는 편향

사후 확신 편향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평가할 때 특히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결과를 아는 사람에게는 당시의 판단이 어리석어 보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 의료(Medicine): 판독에서 놓친 이상 부위는 나중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보는 전문가 눈에 훨씬 쉽게 띕니다. 그래서 의료 소송에서는 당시 의사의 판단이 실제보다 가혹하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 법정(Court): 결과가 나쁠수록 배심원과 판사는 그 사고를 더 쉽게 내다볼 수 있었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같은 행동도 결과에 따라 과실로 판정될 위험이 커집니다.
- 투자(Investment): 지난 폭락을 예상했다고 믿는 투자자는 앞으로의 시장도 맞힐 수 있다고 과신하게 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편향이 강한 투자자는 위험을 낮게 보고 수익률도 더 나빴습니다.
무엇보다 이 편향은 실패에서 배우는 길을 막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었다”고 여기면 당시 무엇을 몰랐고 무엇을 놓쳤는지 돌아볼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후 확신 편향을 줄이는 방법

연구에 따르면 이 편향은 그 존재를 알고 피하려 애써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습관으로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 반대 결과 떠올리기(Consider the Opposite): 실제와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어떤 이유로 설명했을지 일부러 생각해 봅니다. 연구에서 가장 효과가 확인된 방법입니다.
- 결정 일지 쓰기(Decision Journal):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당시 알던 정보와 예상, 그 근거를 미리 적어 둡니다. 나중에 기억 대신 기록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 결과 가리고 평가하기(Blind Review): 사고나 실패를 검토할 때 가능하다면 결과를 모르는 사람에게 당시 자료만 보여 주고 판단을 물어봅니다. 결과에 끌려가지 않은 평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 당시 시점으로 돌아가기(Foresight Perspective): 다른 사람의 판단을 평가할 때는 결과를 잠시 지우고 그 사람이 그때 가진 정보만으로 다시 따져 봅니다.
사후 확신 편향은 결과라는 정답지를 손에 쥔 채 과거의 시험지를 채점하는 일과 같습니다. 정답을 알고 나면 모든 문제가 쉬워 보이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 정답을 몰랐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이 떠오를 때 정말 미리 알았는지 한 번만 되물어 보면, 남의 실수에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내 실수에서는 더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과거의 불확실함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 그것이 더 나은 판단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