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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 도착하면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안내서나 누리소통망(SNS)에서 미리 본 바로 그 장면을 찾아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구경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볼지와 어떻게 볼지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광학에서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보는 방식을 ‘관광객의 시선(Tourist Gaze)’이라고 부릅니다.
관광객의 시선이란 쉽게 말해 ‘관광객이 일상과 다른 장소를 바라볼 때, 사회와 문화가 미리 길들여 놓은 방식으로 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관광은 단순히 어딘가에 가는 일이 아니라 특별한 것을 보러 가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개념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관광객의 시선의 뜻과 유래부터 시선이 만들어지는 과정, 시선의 여러 유형, 그리고 오늘날의 관광지와 여행자에게 주는 의미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합니다.
관광객의 시선의 원리와 사례
존 어리가 말한 관광객의 시선


이 개념은 영국의 사회학자 존 어리(John Urry)가 1990년에 펴낸 책 『관광객의 시선(The Tourist Gaze)』에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어리는 오랫동안 랭커스터 대학교에서 관광과 이동을 연구한 학자입니다.
어리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다룬 의사의 시선에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의사가 훈련받은 눈으로 환자의 몸을 읽어 내듯, 관광객도 배우고 익힌 눈으로 장소를 읽는다는 것입니다.
어리에 따르면 관광의 핵심은 일상과 비일상의 구분에 있습니다. 매일 보는 거리와 집은 시선을 끌지 못하지만, 낯선 풍경이나 오래된 건물, 이국적인 음식은 ‘볼 만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관광객의 시선은 늘 일상과의 차이를 찾아 움직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시선이 개인의 취향만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리는 어떤 장소가 볼 만한지 판단하는 기준이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지며, 그 기준은 함께 배우고 나누는 문화적 산물이라고 보았습니다.
시선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관광객은 여행지에 가기 전부터 이미 많은 장면을 보고 떠납니다. 그 장면들이 쌓여 ‘이곳에서는 이것을 봐야 한다’는 기대를 만듭니다.
- 미디어(Media): 영화와 드라마, 광고, 여행 프로그램이 특정 장소를 멋진 장면으로 반복해 보여 줍니다.
- 안내서와 홍보(Guidebooks and Promotion): 꼭 가 봐야 할 명소와 가장 좋은 사진 각도를 미리 알려 줍니다.
- 사진(Photography): 관광객은 기대한 장면을 다시 찍으며 그 이미지를 또 퍼뜨립니다.
이렇게 보면 관광은 이미지를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엽서에서 본 에펠탑을 직접 보고, 그 엽서와 비슷한 사진을 찍어 돌아오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어리는 이처럼 사진과 관광이 서로를 키우며 함께 발전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관광지 역시 이 시선에 맞춰 스스로를 꾸밉니다. 전망대와 포토존을 만들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가깝게 거리와 건물을 단장합니다. 시선이 장소를 바꾸고, 바뀐 장소가 다시 시선을 굳히는 셈입니다.
낭만적 시선과 집단적 시선

어리는 관광객의 시선이 하나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고, 대표적인 두 가지 유형을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 낭만적 시선(Romantic Gaze): 사람이 드문 자연이나 한적한 장소를 홀로, 혹은 소수가 조용히 바라보며 감상하는 방식입니다.
- 집단적 시선(Collective Gaze):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북적이는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방식으로, 해변 휴양지나 놀이공원이 대표적입니다.
낭만적 시선을 가진 관광객에게는 다른 관광객이 방해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외진 곳,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 나서게 되고, 그 장소도 곧 붐비게 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반대로 집단적 시선에서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오히려 장소의 매력이 됩니다.
이후 어리는 요나스 라르센(Jonas Larsen)과 함께 2011년 개정판 『관광객의 시선 3.0(The Tourist Gaze 3.0)』을 내며, 시선이 눈으로 보는 일에 그치지 않고 몸으로 걷고 만지고 찍는 수행에 가깝다는 점을 더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관광객의 시선이 주는 의미

스마트폰과 누리소통망이 퍼지면서 관광객의 시선은 더 빠르고 강하게 움직입니다. 한 장의 사진이 널리 퍼지면 수많은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기도 합니다.
이런 흐름은 관광지에 기회이자 부담이 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마을이 갑자기 명소가 되어 지역 경제가 살아나기도 하지만, 주민의 일상이 구경거리가 되거나 특정 장소에만 사람이 몰리는 문제도 생깁니다.
관광객의 시선은 앞서 다룬 연출된 진정성이나 오버투어리즘 같은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관광객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무대를 꾸미는 일, 그리고 같은 장면을 보려는 사람이 한곳에 지나치게 몰리는 일 모두 결국 무엇을 볼지 정하는 시선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광학에서는 이 개념을 관광객을 탓하는 말로 쓰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왜 보고 싶어 하는지 돌아보는 도구로 활용합니다. 남이 정해 준 장면만 확인하고 돌아오는 대신,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과 장소의 이야기를 함께 바라본다면 여행의 깊이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관광객의 시선은 우리가 보는 풍경이 결코 순수한 풍경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익숙한 구도에서 한 걸음 벗어나 볼 때, 여행은 확인이 아니라 발견이 됩니다.
내 눈이 무엇을 보도록 배워 왔는지 깨닫는 것, 그것이 진짜 여행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