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지 않고 바로 날아가는 고체, 승화(Sublimation)
음악 앱을 처음 깔면 돈을 내지 않아도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곡 사이에 광고가 끼어들고, 원하는 곡을 골라 듣거나 내려받으려 하면 유료 요금제를 안내하는 화면이 나타납니다. 한동안 공짜로 쓰던 사람 가운데 일부는 결국 지갑을 엽니다.
이처럼 기본 제품이나 서비스는 무료로 주고, 더 나은 기능이나 용량, 편의는 돈을 받고 파는 가격 전략을 ‘프리미엄(Freemium)’이라고 합니다. 공짜를 뜻하는 영어 Free와 웃돈을 뜻하는 Premium을 합친 말입니다. 우리말로는 부분 유료화라고도 부르며, 고급스럽다는 뜻의 프리미엄과는 다른 말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생긴 배경과 이 모델이 돈을 버는 원리, 무료판을 제한하는 여러 방법, 그리고 프리미엄을 설계할 때 부딪히는 어려움과 비판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공짜로 모으고 웃돈으로 버는, 프리미엄의 세계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생긴 배경

무료판을 먼저 퍼뜨리고 나중에 유료판을 파는 방식은 1980년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도 이미 쓰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부르는 이름은 한참 뒤에 생겼습니다. 2006년 미국의 벤처 투자자 프레드 윌슨(Fred Wilson)은 자신의 블로그에 한 가지 사업 방식을 정리했습니다. 서비스를 무료로 주어 입소문과 추천, 검색으로 많은 고객을 효율적으로 모은 뒤, 그 고객들에게 웃돈을 받는 부가 서비스나 더 나은 판을 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이 나온 뒤 윌슨이 투자한 회사 알라크라(Alacra)의 재러드 루킨(Jarid Lukin)이 이 방식에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름이 생기자 흩어져 있던 비슷한 사업들을 하나의 모델로 묶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9년에는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책 『프리(Free)』에서 공짜를 앞세운 사업 모델을 깊이 다루면서 이 개념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비즈니스 인맥 서비스 링크드인(LinkedIn),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 메신저 디스코드(Discord)처럼 많은 온라인 서비스가 이 방식을 씁니다.
공짜가 돈이 되는 원리

공짜로 나눠 주고도 돈을 버는 비결은 몇 가지 경제적 원리에 있습니다.
(1) 한 명 더 늘어나는 비용이 거의 없음
소프트웨어나 온라인 서비스는 한 번 만들어 두면 사용자 한 명을 더 받는 데 드는 비용이 아주 작습니다. 그래서 무료 사용자가 많아져도 손해가 크지 않습니다. 반대로 한 개를 더 만들 때마다 재료비가 드는 물건은 프리미엄 모델과 잘 맞지 않습니다.
(2) 무료 사용자가 곧 광고판
무료판은 그 자체로 마케팅 수단이 됩니다. 써 본 사람이 주변에 권하고, 친구를 초대하면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사용자가 사용자를 불러옵니다. 광고비를 크게 들이지 않고도 고객층을 넓힐 수 있습니다.
(3) 소수의 유료 고객이 전체를 먹여 살림
프리미엄 서비스에서 돈을 내는 사용자는 대개 전체의 일부에 그칩니다. 그래도 무료 사용자의 규모가 충분히 크면 소수의 유료 고객이 내는 돈으로 서비스 전체를 꾸릴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모델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모으고, 그중 얼마나 유료로 옮겨 가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무료판을 제한하는 여러 방법

프리미엄은 무료판에서 무엇을 아껴 두느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집니다. 자주 쓰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능 제한(Limited Features): 기본 기능은 열어 두고 고급 기능만 유료로 묶습니다. 무료 영상 통화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통화를 막아 두는 식입니다.
- 용량 제한(Limited Capacity): 저장 공간이나 데이터 크기, 사용 횟수에 상한을 둡니다.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가 무료 용량을 정해 두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 사용 조건 제한(Limited Use License): 학생이나 개인, 교육용으로 쓸 때만 무료로 허락합니다.
- 시간 제한(Limited Use Time): 일정 시간이나 단계까지만 무료로 쓰게 하고, 더 쓰려면 기다리거나 돈을 내게 합니다.
- 지원 제한(Limited Support): 빠른 기술 지원이나 상담은 유료 고객에게만 제공합니다.
신문사의 디지털판처럼 한 달에 몇 개의 기사만 무료로 보여 주는 방식도 있는데, 이를 부드러운 유료 장벽이라는 뜻에서 소프트 페이월(Soft Paywall)이라고 부릅니다. 무료로 내려받아 즐기고 게임 속 아이템을 사게 하는 무료 게임(Free-to-play) 역시 프리미엄의 한 갈래입니다.
프리미엄을 설계할 때의 어려움과 비판

프리미엄은 겉보기보다 균형을 잡기 어려운 전략입니다. 무료판이 너무 좋으면 굳이 돈을 낼 이유가 없어 유료판이 팔리지 않고, 무료판이 너무 빈약하면 처음부터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무료판이 유료판의 수요를 깎아 먹는 일을 막으면서도 사용자를 붙잡아 둘 만큼은 쓸모 있어야 합니다.
(1) 무료 사용자에게 드는 비용
한 명당 비용이 작다고 해도 사용자가 수백만 명이 되면 서버와 고객 응대 비용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집니다.
(2) 공짜에 길든 고객
오랫동안 무료로 쓴 사람은 그 가격을 당연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나중에 무료 범위를 줄이면 거센 반발을 부르기도 합니다.
(3) 지나친 과금 유도
일부 무료 게임은 돈을 쓸수록 유리해지는 구조 때문에 돈으로 이기는 게임(Pay-to-win)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무료라는 말로 끌어들인 뒤 과도한 결제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옵니다.
좋은 프리미엄은 무료 사용자에게 충분한 가치를 주면서, 더 많이 쓰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유료판을 원하도록 길을 놓아 둡니다. 공짜가 얼마나 많은지가 아니라 무엇을 공짜로 줄지를 정하는 일, 그것이 프리미엄 전략 설계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