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속 압력솥이 터지는 순간, 간헐천(Geyser)
1930년대 미국 중남부는 거센 모래바람과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농사를 망친 오클라호마 사람들이 짐을 싸서 서쪽 캘리포니아로 떠났고, 이들은 ‘오키(Okie)’라고 불렸습니다. 이 무렵의 일을 두고 오클라호마 출신 코미디언 윌 로저스가 했다고 전해지는 농담이 있습니다. 오키들이 오클라호마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가자 두 주의 평균 지능이 모두 올라갔다는 내용입니다.
한 사람도 더 똑똑해지지 않았는데 양쪽 평균이 함께 오른다는 말은 언뜻 말장난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숫자를 따져 보면 이 농담은 실제로 성립합니다. 이처럼 한 집단의 일부를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뿐인데 두 집단의 평균이 모두 올라가는 현상을 ‘윌 로저스 현상(Will Rogers Phenomenon)’이라고 합니다.
본 자료에서는 윌 로저스 현상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기본 원리부터 숫자로 따라가 보는 예시, 의학 통계에서 나타난 암 병기 이동 사례, 그리고 이런 착시에 속지 않는 방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옮기기만 했는데 오르는 평균, 윌 로저스 현상

이름의 유래와 기본 원리

농담 속 논리는 이렇습니다. 떠난 사람들은 오클라호마에서는 평균보다 조금 처지는 편이었지만, 캘리포니아에 가서는 그곳 평균보다 나은 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클라호마는 평균을 깎던 사람들이 빠져서 평균이 오르고, 캘리포니아는 평균을 끌어올리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평균이 오릅니다.
다만 이 말이 정말 윌 로저스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그의 말로 알려졌고, 지역과 사람만 바꾼 비슷한 농담은 그보다 앞서 이미 돌고 있었습니다.
이 현상이 일어나려면 조건이 하나 필요합니다. 옮겨 가는 사람의 값이 떠나는 집단의 평균보다는 낮고, 들어가는 집단의 평균보다는 높아야 합니다. 이 조건만 맞으면 그 사람이 집단에서 꼴찌나 1등일 필요도 없습니다.
숫자로 따라가 보기

간단한 숫자 두 묶음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A 묶음은 1, 2, 3, 4이고, B 묶음은 5, 6, 7, 8, 9입니다.
(1) 옮기기 전
A 묶음의 평균은 2.5, B 묶음의 평균은 7입니다. 전체 아홉 개 숫자의 평균은 5입니다.
(2) 숫자 하나를 옮긴다
B 묶음에서 가장 작은 5를 A 묶음으로 옮깁니다. 5는 B 묶음 평균 7보다 작고, A 묶음 평균 2.5보다 큽니다.
(3) 옮긴 뒤
A 묶음은 1, 2, 3, 4, 5가 되어 평균이 3으로 오르고, B 묶음은 6, 7, 8, 9가 되어 평균이 7.5로 오릅니다. 그런데 전체 평균은 여전히 5입니다.
차이가 더 극단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1, 2로 된 묶음과 99, 10,000, 20,000으로 된 묶음에서 99를 앞 묶음으로 옮기면, 앞 묶음의 평균은 1.5에서 34로, 뒤 묶음의 평균은 약 10,033에서 15,000으로 함께 뛰어오릅니다.
두 묶음이 모두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숫자 자체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전체 평균은 각 묶음 평균을 사람 수만큼 무게를 두어 합친 값이라 그대로 머물고, 경계선만 옮겨졌을 뿐입니다.
암 병기 이동, 통계가 만든 생존율

이 농담은 의학 통계에서 진지한 문제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1985년 미국 예일 대학교의 앨번 파인스타인(Alvan Feinstein) 연구진은 폐암 환자의 생존율을 비교한 논문에서 이 현상에 윌 로저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친구가 이 농담을 윌 로저스의 말로 들려준 것이 계기였다고 합니다.
연구진이 같은 병원들에서 1953~1964년에 치료받은 환자와 1977년에 처음 치료받은 환자를 견주자, 뒤의 환자들이 세 가지 주요 병기 모두에서 6개월 생존율이 더 높았습니다. 치료가 크게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뒤의 환자들은 그 사이 새로 도입된 여러 영상 검사를 받았고, 예전 같으면 보이지 않았을 작은 전이가 발견되어 더 진행된 병기로 옮겨 분류된 사람이 많았습니다.
옮겨 간 환자들은 원래 병기에서는 상태가 나쁜 편이었지만, 새 병기에서는 상태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 결과 두 병기의 생존율이 모두 오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를 병기 이동(Stage Migration)이라고 부르며, 치료가 나아지지 않아도 진단 방법이 바뀌는 것만으로 성적이 좋아 보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연구진이 검사 기술과 상관없는 증상 기준으로 다시 나누어 보자, 두 시기 환자들의 생존율은 비슷했습니다.
비슷한 일은 다른 병에서도 보고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다발성 경화증에서 자기 공명 영상(MRI)을 활용한 새 진단 기준이 쓰이면서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검사가 예민해질수록 증상이 가벼운 사람까지 환자로 분류되어, 환자 집단의 경과가 실제보다 좋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착시에 속지 않는 방법

윌 로저스 현상은 병원뿐 아니라 학교, 회사, 지역 통계처럼 사람을 등급이나 집단으로 나누는 곳 어디서나 생길 수 있습니다. 반 편성을 바꾸거나 등급 기준을 조정하기만 해도 모든 반, 모든 등급의 평균이 오른 듯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착시를 피하려면 다음을 살펴보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 전체 평균(Overall Average): 집단별 평균만 보지 말고 전체를 합친 평균이 실제로 달라졌는지 함께 확인합니다.
- 분류 기준(Classification Criteria): 비교하는 두 시기나 두 기관이 같은 기준으로 집단을 나누었는지 살펴봅니다.
- 이동한 구성원(Migrated Members): 어느 집단에서 어느 집단으로 누가 옮겨 갔는지 따로 떼어 내 그 영향을 따져 봅니다.
평균은 집단을 한눈에 보여 주는 편리한 숫자이지만, 경계선을 어디에 긋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모두가 나아졌다는 숫자 앞에서 누가 어디로 옮겨 갔는지 먼저 물어보는 일, 그것이 숫자의 착시를 걷어 내는 통계적 사고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