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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기업들은 앞다투어 ‘최초’라는 말을 붙이려 합니다. 남보다 먼저 들어가야 손님을 모두 차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처음 길을 연 회사가 끝까지 1등을 지킨 경우만큼이나, 뒤따라온 회사에 자리를 내준 경우도 많습니다.
시장에 가장 먼저 들어간 기업이 그 덕분에 누리는 유리함을 ‘선발자 이점(First-Mover Advantage)’이라고 합니다. 줄여서 선점 효과라고도 부르며, 반대로 늦게 들어간 기업이 앞선 회사의 시행착오를 보고 배우며 얻는 유리함은 후발자 이점이라고 합니다.
본 자료에서는 선발자 이점이 생기는 원리부터 먼저 간 기업이 겪는 불리함, 연구가 보여 준 의외의 결과, 그리고 들어갈 때를 고르는 전략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갈 것인가 뒤따를 것인가, 선발자 이점의 원리와 한계
먼저 들어간 기업이 얻는 세 가지 힘

1988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마빈 리버먼(Marvin Lieberman)과 데이비드 몽고메리(David Montgomery)는 선발자 이점을 다룬 대표적인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먼저 들어간 기업이 얻는 힘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기술의 앞섬
먼저 만든 기업은 특허를 얻고, 많이 만들어 본 경험으로 생산비를 남보다 빨리 낮출 수 있습니다. 뒤따르는 회사는 같은 물건을 만들어도 처음에는 값이 더 들기 쉽습니다.
(2) 좋은 자원의 선점
목 좋은 자리, 뛰어난 인재, 믿을 만한 원료 공급처는 먼저 가는 사람이 차지합니다. 미국의 월마트(Walmart)가 대형 할인점이 없던 작은 마을부터 매장을 열어 자리를 굳힌 것이 자주 드는 예입니다.
(3) 손님을 붙잡는 전환 비용
처음 써 본 상품에 익숙해진 손님은 웬만해서는 다른 상품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코카콜라나 크리넥스처럼 상품군의 이름처럼 불리는 브랜드가 오랫동안 시장을 이끄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이 세 가지 힘은 서로를 키우기도 합니다. 먼저 손님을 모은 기업은 더 많이 팔아 생산비를 낮추고, 낮춘 값으로 다시 손님을 끌어모으며 앞선 거리를 벌려 나갑니다.
먼저 간 기업이 치르는 비싼 값

먼저 가는 일에는 대가도 따릅니다. 앞선 연구는 선발자가 겪는 불리함도 함께 짚었습니다.
- 무임승차(Free-Rider Effect): 선발자가 큰돈을 들여 개발한 기술과 시장 조사를 뒤따르는 회사가 훨씬 적은 비용으로 따라 할 수 있습니다.
- 시장 교육 비용(Market Education Cost): 낯선 상품이 왜 필요한지 손님에게 처음부터 알리는 데 많은 광고비가 듭니다.
- 불확실성(Uncertainty): 손님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술이 표준이 될지 모르는 채로 큰 투자를 해야 합니다.
- 현실 안주(Incumbent Inertia): 한번 자리를 잡은 기업은 기존 설비와 방식에 묶여 새로운 변화에 굼뜨게 대응하기 쉽습니다.
애플(Apple)이 1993년에 내놓은 개인용 정보 단말기 뉴턴(Newton)은 시장을 처음 연 제품으로 꼽히지만, 값이 비싸고 손글씨 인식이 자주 틀려 널리 퍼지지 못했습니다. 그 자리는 더 작고 쓰기 쉬운 팜파일럿(Palm Pilot)이 차지했습니다.
연구가 보여 준 의외의 결과

오랫동안 많은 연구는 먼저 들어간 기업이 평균 30% 안팎의 높은 점유율을 누린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이 결과에는 큰 함정이 있었습니다.
(1) 살아남은 기업만 센 계산
기존 자료에는 이미 망해 사라진 선발자가 거의 빠져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회사만 보고 평균을 내니 먼저 가면 성공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쉬웠습니다.
(2) 역사 자료로 다시 본 결과
1993년 피터 골더(Peter Golder)와 제라드 텔리스(Gerard Tellis)는 50개 상품군, 약 500개 브랜드의 역사 기록을 다시 살폈습니다. 그 결과 시장을 처음 연 기업의 47%가 실패했고, 평균 점유율은 10%에 그쳤습니다. 특히 기술이 빨리 바뀌는 내구재에서는 실패율이 비내구재보다 두 배 넘게 높았습니다.
(3) 진짜 승자는 빠른 추격자
오래도록 시장을 이끈 기업은 선발자보다 평균 13년쯤 늦게 들어온 곳이 많았습니다. 1992년에 문을 연 온라인 서점 북스택스 언리미티드(Book Stacks Unlimited)보다 늦게 출발한 아마존(Amazon)이 결국 시장을 차지한 것도 비슷한 예입니다.
들어갈 때를 고르는 지혜

결국 중요한 것은 ‘가장 먼저’가 아니라 ‘알맞은 때’입니다. 선발자 이점이 커지는 상황과 작아지는 상황을 나누어 보면 판단에 도움이 됩니다.
(1) 먼저 가는 편이 유리할 때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치가 커지는 서비스, 바꾸기 번거로운 상품, 특허로 단단히 지킬 수 있는 기술은 먼저 자리를 잡는 쪽이 오래 유리합니다.
(2) 뒤따르는 편이 유리할 때
기술이 빠르게 바뀌거나 손님의 취향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장에서는 앞선 회사의 실수를 지켜보며 더 나은 상품으로 들어가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힘을 냅니다.
(3) 먼저 간 뒤가 더 중요한 까닭
선발자라는 이름은 출발선일 뿐입니다. 상품을 꾸준히 고치고 손님을 붙잡는 노력을 이어 가야 앞선 자리가 오래 갑니다. 먼저 얻은 경험과 손님의 목소리를 다음 상품에 빠르게 담아내는 기업만이 처음의 유리함을 오래 지킬 수 있습니다.
선발자 이점은 먼저 간 기업에게 분명한 기회를 주지만, 그 자체로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간 만큼 비용과 위험도 함께 짊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빨리 가는 것에 들뜨기보다 시장이 무르익는 때와 내 힘을 함께 살피는 일, 그것이 기회를 성과로 바꾸는 전략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