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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런던 동쪽 끝의 빈민가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젊은 졸업생들이 하나둘 짐을 풀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물건을 나눠 주고 돌아가는 대신, 아예 그 동네에 들어가 함께 살면서 배우고 가르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낯선 실험은 바다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100여 년 전 서울 인사동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바로 ‘인보관 운동(Settlement House Movement)’입니다.
인보관 운동이란 쉽게 말해 ‘교육받은 사람들이 가난한 지역에 들어가 주민과 함께 살면서 교육과 생활 지원, 사회 개혁을 함께 펼친 운동’을 의미합니다. ‘인보(隣保)’는 이웃끼리 서로 돕는다는 뜻이며, 오늘날 동네마다 있는 사회복지관이 바로 이 운동에서 출발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인보관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미국의 헐 하우스가 남긴 성과, 이 운동을 이끈 세 가지 원칙, 그리고 한국으로 이어진 발자취와 오늘날의 의미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이웃이 되어 가난과 마주한 인보관 운동
토인비 홀, 함께 사는 실험의 시작

산업화가 한창이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도시 빈민가는 좁은 집과 더러운 위생, 끝없는 가난으로 신음했습니다. 런던 화이트채플 지역의 교구 목사 새뮤얼 바넷(Samuel Barnett)과 교사이자 사회 운동가였던 아내 헨리에타 바넷(Henrietta Barnett)은 이런 동네에서 오래 일하며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가끔 찾아와 돕는 것만으로는 가난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부부는 대학생들이 빈민가에 직접 머물며 이웃의 삶을 겪어 보게 하자고 제안했고, 1884년 12월 24일 세계 최초의 인보관인 ‘토인비 홀(Toynbee Hall)’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름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다 1883년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난 옥스퍼드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를 기리며 붙였습니다.
당시에도 가난한 사람을 돕는 활동은 있었습니다. 1869년 런던에서 생긴 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y)는 도움받을 사람을 꼼꼼히 조사해 자선이 겹치지 않도록 정리했지만, 가난을 주로 개인의 게으름이나 잘못에서 찾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인보관 운동은 이와 달리 가난의 원인을 산업화가 낳은 사회 구조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새로웠습니다.
헐 하우스와 제인 애덤스

토인비 홀을 둘러본 미국의 제인 애덤스(Jane Addams)는 친구 엘런 게이츠 스타(Ellen Gates Starr)와 함께 1889년 9월 시카고에 ‘헐 하우스(Hull House)’를 세웠습니다. 주변은 이탈리아, 그리스, 독일 등지에서 막 건너온 이민자들이 북적이는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처음에는 낡은 저택 한 채에서 시작했지만 1911년에는 건물이 13동으로 늘어났습니다.
헐 하우스가 동네에 남긴 흔적은 다양합니다.
(1) 아이와 가족을 위한 공간
시카고 최초의 공공 놀이터와 공중목욕탕을 만들고, 일하러 간 어머니들을 위해 유치원을 열었습니다.
(2) 배움과 문화
영어, 문학, 미술, 공예 수업과 무료 강연, 음악회, 아마추어 연극을 꾸려 이민자들이 새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왔습니다.
(3) 제도의 변화
아동 노동을 막는 법, 미국 최초의 소년 법원, 노동자 보호 제도가 만들어지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애덤스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31년 미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헐 하우스의 성공에 힘입어 미국의 인보관은 1920년대에 500곳 가까이로 늘어났습니다.
인보관 운동의 세 가지 원칙

인보관 운동의 활동은 흔히 영어 머리글자를 따 ‘3R’이라 불리는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리됩니다. 이는 애덤스 자신의 표현이라기보다 후대 교과서와 개설서에서 정리한 틀이며, 오늘날 사회복지 실천에서도 자주 인용됩니다.
- 거주(Residence): 돕는 사람이 지역에 직접 살면서 주민과 이웃이 되어 그들의 사정을 몸으로 이해합니다.
- 조사(Research): 동네의 집, 일자리, 위생, 출신 국가 등을 꼼꼼히 조사해 가난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힙니다. 1895년 펴낸 『헐 하우스 지도와 논문(Hull-House Maps and Papers)』은 주민의 국적과 임금을 지도에 담아 시카고 사회학 연구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 개혁(Reform): 조사로 드러난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법과 제도를 바꾸도록 꾸준히 요구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도움을 ‘베푸는 일’이 아니라 ‘함께하는 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인보관의 활동가들은 주민을 가르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에게서 배우며 동네의 문제를 함께 풀어 갈 동료로 대하려 했습니다.
한국으로 이어진 인보관

인보관 운동은 아시아에도 전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1921년 4월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부가 서울 인사동에 문을 연 ‘태화여자관’이 최초의 인보관이자 사회복지관의 시작으로 꼽힙니다. 이 건물은 1919년 3·1 운동 때 민족 대표들이 독립 선언식을 열었던 태화관 자리였습니다.
초대 관장인 선교사 마이어스(Mamie D. Myers)는 낮에 바깥출입이 어려웠던 여성들을 위해 밤에 요리, 자수, 재봉 같은 실용 기술을 가르치는 야학을 열었습니다. 이어 한글 교육과 가정 방문, 아동 보건, 공중위생 사업으로 활동을 넓혔으며, 이곳은 지금의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종합사회복지관도 인보관의 정신을 잇고 있습니다. 활동가가 지역에 살아야 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지역의 문제를 주민과 함께 찾고 풀어 간다는 생각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공부방, 무료 급식, 동네 모임 같은 일상적인 활동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인보관 운동은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던 시대에 가난을 사회의 문제로 바라보고, 거리를 둔 자선 대신 이웃으로서의 연대를 택했습니다. 그 덕분에 놀이터와 유치원, 아동 보호법, 그리고 동네 사회복지관이라는 소중한 유산이 생겨났습니다.
물론 모든 문제를 이웃의 선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삶 가까이에서 그 사정을 먼저 듣는 태도는 여전히 사회복지의 출발점입니다. 담장 너머의 삶을 내 이웃의 일로 여기고 곁에 머무는 것, 그것이 더불어 사는 지역 공동체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