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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실패 끝에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 사람은, 기회가 찾아와도 손을 뻗지 않게 됩니다. 이때 누군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면 당장의 어려움은 덜 수 있지만, 스스로 일어설 힘까지 생기지는 않습니다. 사회복지가 ‘도움을 주는 일’을 넘어 ‘힘을 되찾게 돕는 일’로 나아가게 한 핵심 개념이 바로 ‘임파워먼트(Empowerment)’입니다.
임파워먼트란 쉽게 말해 ‘개인과 집단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스스로 참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키워 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우리말로는 흔히 ‘역량 강화’라고 옮기며, 오늘날 사회복지 실천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관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임파워먼트의 탄생 배경과 개념부터 이를 떠받치는 강점관점, 힘이 자라는 3가지 차원, 그리고 현장에서 쓰이는 실천 3단계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합니다.
임파워먼트의 개념과 실천 원리
임파워먼트란 무엇인가?

사회복지에서 임파워먼트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알린 사람은 미국의 사회복지학자 바버라 솔로몬(Barbara Solomon)입니다. 그녀는 1976년 저서 『흑인 임파워먼트(Black Empowerment)』에서 차별받는 지역사회의 사람들이 겪는 ‘무력감’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무력감은 심리학의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과도 닮아 있습니다. 1967년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피할 수 없는 충격을 반복해 겪은 동물이, 나중에 피할 길이 열려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반복된 좌절이 사람에게서도 ‘해 봐야 소용없다’는 믿음을 남긴다는 점에서, 임파워먼트는 바로 이 믿음을 깨뜨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생각은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그는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판적으로 깨닫는 ‘의식화’를 강조했습니다. 임파워먼트는 이러한 깨달음이 실제 행동과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시혜적 관점(Paternalism): 전문가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려 주는 방식입니다.
- 임파워먼트 관점(Empowerment): 당사자가 문제 해결의 주인이 되고, 전문가는 함께 길을 찾는 협력자가 됩니다.
임파워먼트를 떠받치는 강점관점

임파워먼트가 가능하려면 먼저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1990년대 초 미국 캔자스대학교의 데니스 샐리베이(Dennis Saleebey) 등이 정리한 ‘강점관점(Strengths Perspective)’은 사람의 결함이 아니라 가진 힘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1) 모든 사람에게는 강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의 개인이나 가족, 지역사회라도 재능, 경험, 관계, 희망 같은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단명이나 문제 목록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닙니다.
(2) 시련은 상처이자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질병이나 상실, 고난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견뎌 낸 경험은 새로운 힘과 지혜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3) 성장의 한계를 미리 정하지 않습니다
전문가가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은 닫힙니다. 당사자의 꿈과 목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4) 환경은 자원으로 가득합니다
이웃, 종교 모임, 동네 가게, 자조 모임처럼 공식 서비스 밖에도 삶을 지탱하는 자원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힘이 자라는 임파워먼트의 3가지 차원

임파워먼트는 한 사람의 마음가짐만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사회복지학자 로레인 구티에레즈(Lorraine Gutiérrez) 등은 힘이 개인 안에서 시작해 관계와 사회로 넓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 개인적 차원(Personal):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단계입니다.
- 대인관계적 차원(Interpersonal):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어 지식과 기술을 나누고,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말하는 힘을 기릅니다.
- 사회·정치적 차원(Political): 함께 목소리를 모아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데 참여하는 단계입니다.
장애인 인권 운동의 구호인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한 것은 없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는 세 번째 차원을 잘 보여 줍니다. 당사자가 정책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정책을 만드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화·발견·발전: 임파워먼트 실천 3단계

현장에서는 마일리(Miley), 오멜리아(O’Melia), 듀보이스(DuBois)가 제시한 3단계 모델이 널리 활용됩니다. 핵심은 모든 단계에서 당사자와 사회복지사가 동등한 파트너로 일한다는 점입니다.
[1단계] 대화(Dialogue)
서로 신뢰 관계를 쌓고, 당사자가 원하는 변화가 무엇인지 함께 정리합니다. 이때 ‘무엇이 문제인가’보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2단계] 발견(Discovery)
당사자와 주변 환경에 숨어 있는 강점과 자원을 찾아냅니다. 예를 들어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그동안 버텨 온 생활력, 도움을 줄 수 있는 친척, 지역의 공동육아 모임 등이 자원이 됩니다.
[3단계] 발전(Development)
찾아낸 자원을 연결해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하고, 작은 성공을 함께 확인하며 다음 목표로 나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점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게 됩니다.
임파워먼트는 ‘대신 해 주는 복지’에서 ‘함께 힘을 키우는 복지’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다만 이 개념이 ‘이제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책임 떠넘기기로 쓰여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구조적 장벽이 있기에, 사회적 지원과 제도 개선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임파워먼트가 완성됩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무엇을 해 줄까’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상대 안에 이미 있는 힘을 믿어 주는 것, 그것이 한 사람이 다시 삶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