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는 도중에 길을 찾는다, 형성평가(Formative Assessment)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 하나를 샀을 뿐인데 장바구니에 보험 상품이 슬쩍 담겨 있거나, 한 달 무료 체험을 눌렀다가 해지 버튼을 찾지 못해 몇 달째 요금을 낸 경험이 있으신가요? 실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용자가 그렇게 움직이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화면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설계를 부르는 이름이 바로 ‘다크 패턴(Dark Patterns)’입니다.
다크 패턴이란 쉽게 말해 ‘사용자가 제대로 알았거나 선택할 수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도록 화면의 배치, 색깔, 문구로 속이거나 몰아가는 설계’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온라인 눈속임 상술’이라고도 부르며, 이제는 디자인 윤리를 넘어 법으로 다루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다크 패턴이라는 말이 생겨난 배경부터 대표적인 유형, 실제로 큰 대가를 치른 사례, 그리고 우리나라의 규제와 정직한 디자인의 원칙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사용자를 속이는 화면의 구조와 대응
다크 패턴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다크 패턴이라는 말은 2010년 영국의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 해리 브리그널(Harry Brignull)이 처음 만들었습니다. 디자인 분야에는 자주 생기는 문제를 잘 푸는 검증된 해법을 뜻하는 ‘디자인 패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브리그널은 반대로 사용자를 일부러 속이고 조종하려고 만든 해법도 하나의 패턴처럼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늘에 숨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을 담아 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같은 해 사례를 모아 알리는 웹사이트를 열고 대표 유형 12가지를 정리했습니다. 이후 이 사이트는 이름을 바꾸었고, 브리그널 자신도 지금은 ‘기만적 패턴(Deceptive Patterns)’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씁니다. 다만 법률과 연구에서는 여전히 다크 패턴이라는 말이 널리 쓰입니다.
다크 패턴이 무서운 이유는 사용자가 속았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은 ‘내가 잘못 눌렀나 보다’ 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한 사람의 피해는 작아도 수많은 사람에게서 모이면 기업에는 큰 이익이 됩니다.
다크 패턴의 대표적인 유형


다크 패턴은 모양이 다양하지만 몇 가지 흔한 수법으로 묶어 볼 수 있습니다.
- 바퀴벌레 모텔(Roach Motel): 가입은 버튼 한 번이면 되지만 해지는 전화 연결, 여러 단계의 확인 화면을 거쳐야 하도록 만들어 지쳐서 포기하게 합니다.
- 장바구니 끼워 넣기(Sneak into Basket): 사용자가 고르지 않은 상품이나 옵션을 미리 체크해 두어 결제에 슬쩍 포함합니다.
- 숨은 비용(Hidden Costs): 처음에는 싼 가격만 보여 주고 결제 마지막 단계에서야 수수료와 배송비를 더합니다.
- 죄책감 문구(Confirmshaming): 거절 버튼에 ‘아니요, 저는 손해를 보겠습니다’ 같은 말을 넣어 거절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 위장 광고(Disguised Ads): 광고를 기사나 다운로드 버튼처럼 꾸며 누르게 합니다.
- 강제 연장(Forced Continuity): 무료 체험이 끝나면 따로 알리지 않고 바로 유료 결제로 넘어가게 해 해지할 때를 놓치게 합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원하는 버튼은 크고 화려하게, 거절 버튼은 작고 흐린 글씨로 만드는 수법도 흔합니다. 사용자는 화면을 꼼꼼히 읽지 않고 눈에 띄는 곳부터 누르기 때문에, 이런 작은 차이만으로도 선택이 크게 달라집니다.
대가를 치른 다크 패턴 사례

다크 패턴이 얼마나 큰 문제가 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가 미국 아마존(Amazon)의 프라임 회원 사건입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23년 아마존이 헷갈리는 화면으로 소비자를 프라임 회원에 가입시키고, 해지는 여러 페이지와 반복 확인을 거치게 해 일부러 어렵게 만들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해지를 막기 위한 미로
아마존 내부에서는 이 해지 절차를 고대 그리스의 긴 서사시 이름을 따 ‘일리아스(Iliad)’라고 불렀습니다. 결국 2025년 9월 아마존은 10억 달러의 민사 제재금과 15억 달러의 소비자 환급, 모두 25억 달러를 내기로 합의했습니다. 아울러 거절 버튼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가입한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쉽게 해지할 수 있게 고치기로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다크 패턴이 단순한 마케팅 기법을 넘어 법을 어긴 행위로 판단될 수 있음을 보여 준 대표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규제와 정직한 디자인

우리나라도 2025년 2월 14일부터 개정 전자상거래법을 시행해 여섯 가지 다크 패턴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1) 숨은 갱신과 순차공개 가격책정
무료 체험이 유료로 바뀌거나 정기결제 금액이 오를 때는 소비자의 동의를 따로 받아야 합니다. 또 검색 결과처럼 가격을 처음 보여 주는 화면에 꼭 내야 하는 총금액을 표시해야 합니다.
(2) 사전 선택과 잘못된 계층 구조
다른 상품을 사겠다는 항목을 미리 체크해 두거나, 선택 버튼의 크기·모양·색깔에 큰 차이를 두어 사업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끄는 행위가 금지됩니다.
(3) 취소·탈퇴 방해와 반복 간섭
가입보다 해지 절차를 훨씬 복잡하게 만들거나, 이미 거절한 선택을 팝업창으로 계속 다시 묻는 행위도 금지됩니다. 위반하면 시정명령과 과태료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EU)도 2022년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에 온라인 플랫폼이 사용자를 속이거나 조종하는 화면을 설계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넣는 등, 세계 곳곳에서 규제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합니다. 들어오는 문만큼 나가는 문도 쉽게 만들고, 버튼은 누르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정직하게 알려야 합니다.
다크 패턴은 당장의 가입자 수와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용자는 브랜드를 다시 믿지 않습니다. 규제가 강해지면서 이제는 법적인 위험까지 커졌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를 더 오래 붙잡는 화면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일을 쉽고 분명하게 끝내도록 돕는 화면입니다.
사용자를 속이지 않고 스스로 고르게 하는 것, 그것이 오래 신뢰받는 디자인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