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남는 공부의 비밀,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

관절의 수가 움직임을 정한다, 자유도(Degrees of Freedom)
식당에 들어가 수십 가지 요리가 빼곡한 차림표를 받아 들면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늘 먹던 메뉴를 고르곤 합니다. 반대로 메뉴가 서너 가지뿐인 가게에서는 금방 주문을 마칩니다. 고를 것이 많아질수록 결정은 그만큼 느려집니다.
디자인학과 인간공학에서는 이 현상을 ‘힉의 법칙(Hick’s Law)’으로 설명합니다. 선택지의 수가 늘어날수록 사람이 하나를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법칙으로, 함께 연구한 학자의 이름을 붙여 ‘힉-하이먼 법칙(Hick-Hyman Law)’이라고도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힉의 법칙의 뜻과 등장 배경부터 법칙이 담고 있는 계산 방식, 화면과 공간 디자인에서 활용되는 사례, 그리고 법칙을 적용할 때 주의할 점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합니다.
힉의 법칙의 이해와 활용
램프 실험에서 시작된 법칙


이 법칙은 영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에드먼드 힉(William Edmund Hick)이 1952년에 발표한 논문 「정보 획득의 속도에 관하여(On the Rate of Gain of Information)」에서 출발했습니다. 힉은 둥글게 늘어놓은 램프 10개 가운데 하나에 불이 들어오면, 그 램프에 해당하는 열쇠를 손가락으로 누르는 실험을 했습니다.
힉은 켜질 수 있는 램프의 수를 바꿔 가며 반응 시간을 쟀습니다. 그 결과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반응이 느려졌지만, 시간이 선택지 수에 정비례해서 늘지는 않았습니다. 선택지가 두 배가 되어도 걸리는 시간은 두 배가 되지 않고, 일정한 폭씩만 늘어났습니다.
이듬해인 1953년에는 미국의 심리학자 레이 하이먼(Ray Hyman)이 비슷한 실험을 했습니다. 하이먼은 선택지의 수뿐 아니라 각 선택지가 나올 확률을 바꿔도 반응 시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자주 나오는 신호에는 빨리, 드물게 나오는 신호에는 느리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연구가 합쳐져 오늘날의 힉-하이먼 법칙이 되었습니다.
선택지와 결정 시간의 관계

힉의 법칙은 흔히 RT = a + b × log₂(n + 1)이라는 식으로 나타냅니다. 여기서 RT는 반응 시간, n은 똑같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선택지의 수입니다. a는 선택과 상관없이 드는 기본 시간이고, b는 정보를 처리하는 데 드는 시간의 비율입니다. n에 1을 더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까지 셈에 넣기 위해서입니다.
이 식의 핵심은 로그입니다. 로그는 숫자가 커질수록 늘어나는 폭이 점점 줄어드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지가 1개에서 3개로 늘 때와 15개에서 17개로 늘 때를 비교하면, 앞의 경우가 결정 시간을 훨씬 크게 늘립니다.
이런 모양이 나오는 까닭은 사람이 선택지를 하나씩 모두 살피지 않고, 절반씩 범위를 좁혀 가며 고르는 것처럼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힉은 정보 이론을 빌려 와 사람의 판단 과정을 일정한 속도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통로처럼 보았습니다.
힉은 이 실험에서 사람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1초에 대략 5비트(bit) 정도로 일정하다고 보고했습니다. 비트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가려내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을 뜻하는 단위입니다. 선택지가 늘면 가려내야 할 정보가 늘고,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는 설명입니다.
화면과 공간 디자인 속 힉의 법칙

힉의 법칙은 웹사이트와 앱 화면을 설계할 때 자주 쓰입니다. 첫 화면에 단추와 메뉴가 너무 많으면 사용자는 어디를 눌러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심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나 버립니다. 그래서 많은 서비스가 꼭 필요한 기능만 앞에 두고 나머지는 뒤로 숨기는 방식을 택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자주 쓰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분류(Categorization): 비슷한 선택지를 묶어 몇 개의 큰 갈래로 나눈 뒤, 그 안에서 다시 고르게 합니다.
- 단계적 공개(Progressive Disclosure): 처음에는 기본 기능만 보여 주고, 사용자가 원할 때 세부 설정을 펼쳐 보이게 합니다.
- 추천 표시(Highlighting): 가장 많이 쓰는 선택지를 눈에 띄게 강조해, 고민 없이 바로 고를 수 있게 합니다.
이 원리는 화면 밖에서도 통합니다. 리모컨의 단추를 줄이거나, 공항과 지하철역의 안내판에 꼭 필요한 정보만 담거나, 회원 가입 양식을 여러 단계로 나누는 일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흔히 힉의 법칙은 피츠의 법칙(Fitts’s Law)과 함께 소개됩니다. 피츠의 법칙이 목표물까지 손이나 마우스를 옮기는 시간을 다룬다면, 힉의 법칙은 무엇을 누를지 정하는 시간을 다룹니다. 두 법칙을 함께 고려하면 사용자가 단추 하나를 누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더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힉의 법칙을 적용할 때 주의할 점

다만 힉의 법칙은 어디에나 그대로 들어맞는 법칙이 아닙니다. 이 법칙은 단순한 신호를 보고 곧바로 반응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입니다. 긴 글을 읽고 비교해야 하거나, 처음 보는 선택지를 하나하나 따져야 하는 복잡한 결정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또 익숙함도 큰 변수입니다. 매일 쓰는 프로그램의 메뉴는 항목이 많아도 사용자가 위치를 외우고 있어 금방 찾습니다. 이때 무리하게 메뉴를 줄이거나 자꾸 위치를 바꾸면 오히려 사용하기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선택지를 줄이는 일이 언제나 좋은 것도 아닙니다. 지나치게 줄이면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찾으려고 여러 번 눌러 들어가야 하므로, 한 화면의 결정은 빨라져도 전체 과정은 길어집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선택지의 수와 단계의 깊이 사이에서 알맞은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힉의 법칙이 알려 주는 것은 많이 보여 주는 것이 곧 친절함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먼저 보고 어떻게 고를지를 헤아려 선택지를 정리할 때 디자인은 비로소 편해집니다.
망설임을 줄여 주는 단순한 선택지, 그것이 쓰기 편한 디자인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