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르치지 않아도 배운다, 잠재적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
휴대폰 화면에서 작은 닫기 단추를 누르려다 엉뚱한 광고를 눌러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화면 아래쪽의 큼직한 결제 단추는 눈길을 주지 않아도 쉽게 눌립니다. 같은 손가락인데도 어떤 단추는 누르기 쉽고, 어떤 단추는 유난히 어렵습니다.
디자인학과 인간공학에서는 이 차이를 ‘피츠의 법칙(Fitts’s Law)’으로 설명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폴 피츠(Paul M. Fitts)가 1954년에 발표한 이 법칙은, 목표물을 가리키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목표까지의 거리와 목표의 크기로 정해진다는 내용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피츠의 법칙의 뜻과 등장 배경부터 법칙을 이루는 요소, 화면 디자인에서 활용되는 방식, 그리고 법칙의 한계와 주의할 점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합니다.
피츠의 법칙의 이해와 활용
피츠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피츠의 법칙은 사람이 손이나 도구로 어떤 목표를 가리킬 때, 목표가 멀수록 그리고 작을수록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법칙입니다. 반대로 목표가 가깝고 클수록 빠르고 정확하게 닿을 수 있습니다.
- 거리(Distance): 출발점에서 목표의 중심까지 떨어진 정도입니다. 멀수록 움직임이 길어집니다.
- 너비(Width): 움직이는 방향으로 잰 목표의 크기입니다. 넓을수록 정확하게 멈추기 쉽습니다.
- 이동 시간(Movement Time): 움직이기 시작해 목표에 닿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피츠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미국 공군 연구소에서 조종석 계기와 조종 장치의 배치를 연구했던 학자입니다. 조종사가 급한 순간에 엉뚱한 스위치를 건드리는 사고를 줄이려면, 사람의 움직임을 숫자로 이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1954년 실험에서 그는 참가자에게 막대로 두 금속판을 번갈아 빠르게 두드리게 하고, 판 사이의 거리와 판의 너비를 바꿔 가며 시간을 쟀습니다.
그 결과 거리와 너비가 함께 같은 비율로 커지면 걸리는 시간은 거의 그대로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리와 크기 각각이 아니라 둘 사이의 비율이었습니다. 이후 연구에서 이 관계는 손가락, 발, 마우스는 물론 현미경 아래에서 하는 정밀한 작업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피츠의 법칙을 이루는 요소

피츠는 이 관계를 하나의 식으로 정리했습니다. 피츠가 처음 제시한 식은 MT = a + b × log₂(2D/W)였고, 오늘날 흔히 쓰이는 형태는 MT = a + b × log₂(D/W + 1)입니다. 여기서 MT는 이동 시간, D는 거리, W는 너비입니다.
(1) 난이도 지수(Index of Difficulty)
log₂(D/W + 1) 부분으로, 목표를 가리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타냅니다. 거리가 두 배가 되거나 너비가 절반이 되면 난이도가 높아집니다.
(2) 상수 a와 b
사람과 도구에 따라 달라지는 값으로, 실험을 통해 구합니다. 마우스, 터치스크린, 조이스틱은 서로 다른 값을 가집니다.
(3) 로그 관계
이동 시간은 거리에 정비례하지 않고 로그로 늘어납니다. 그래서 이미 먼 목표를 조금 더 멀리 옮겨도 시간은 크게 늘지 않지만, 작은 목표를 더 작게 만들면 금방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거리가 8이고 너비가 1이면 난이도는 log₂9, 약 3.2비트입니다. 같은 거리에서 너비를 2로 넓히면 log₂5, 약 2.3비트로 낮아집니다. 단추를 조금만 키워도 누르기가 눈에 띄게 쉬워지는 셈입니다.
1990년 전후 캐나다의 컴퓨터과학자 스콧 매켄지(I. Scott MacKenzie)는 정보이론을 바탕으로 식을 조금 다듬었고, 오늘날 이 형태가 컴퓨터 화면 연구에서 널리 쓰입니다.
화면 디자인 속 피츠의 법칙

피츠의 법칙은 1970년대 후반 마우스 연구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화면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들의 기본 원칙이 되었습니다.
가장 자주 누르는 단추는 크게 만들고, 손이나 커서가 머무는 곳 가까이에 둡니다. 결제하기나 다음 같은 핵심 단추가 넓게 그려지는 이유입니다.
화면의 모서리와 가장자리도 중요한 자리입니다. 커서는 화면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가장자리의 목표는 사실상 너비가 끝없이 넓은 것과 같습니다. 화면 맨 위에 붙은 메뉴 막대나 모서리의 단추는 대충 밀어도 정확히 닿습니다.
마우스 오른쪽 단추를 누르면 커서 바로 옆에 나타나는 메뉴도 같은 원리입니다. 목표가 처음부터 가까이 있으니 거리가 거의 사라집니다.
휴대폰에서는 엄지손가락이 기준이 됩니다. 한 손으로 쥐었을 때 엄지가 편하게 닿는 화면 아래쪽에 자주 쓰는 메뉴를 모아 두는 것도 피츠의 법칙을 응용한 설계입니다.
[활용 포인트]
- 큰 목표: 자주 쓰는 단추는 넓고 크게
- 가까운 목표: 다음 동작은 손이 머무는 자리 가까이
- 가장자리: 화면 끝의 목표는 놓치기 어려움
- 거리 두기: 삭제처럼 위험한 단추는 일부러 멀리
피츠의 법칙을 쓸 때 주의할 4가지

피츠의 법칙은 강력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1) 찾는 시간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이 법칙은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이미 알 때의 움직임만 다룹니다. 많은 선택지 중에서 고르는 시간은 힉의 법칙(Hick’s Law)처럼 다른 원리로 설명합니다.
(2) 경로가 있는 움직임은 다릅니다
좁은 메뉴 길을 따라 커서를 옮기는 일처럼 길을 벗어나면 안 되는 움직임은, 1997년 조니 아코(Johnny Accot)와 슈민 자이(Shumin Zhai)가 정리한 조향 법칙(Steering Law)이 더 잘 맞습니다.
(3) 손가락은 커서보다 굵습니다
터치스크린에서는 손가락이 목표를 가리고 접촉 면적도 넓습니다. 그래서 애플은 최소 44포인트, 구글은 최소 48dp의 터치 영역을 권장합니다.
(4)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단추를 키우면 화면이 복잡해지고 정작 중요한 단추가 묻힙니다. 무엇을 쉽게, 무엇을 신중하게 누르게 할지 먼저 정해야 합니다.
결국 피츠의 법칙은 디자인이 사람의 몸과 손의 한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좋은 화면은 사용자가 애쓰지 않아도 손이 먼저 길을 찾게 만듭니다.
손이 닿는 거리와 목표의 크기를 먼저 헤아리는 것, 그것이 쓰기 편한 디자인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