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눗방울이 무지갯빛인 이유, 박막 간섭(Thin-Film Interference)

봉지째 물에 담가 익히는 요리, 수비드(Sous Vide)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할머니의 장보기를 한 시간 도와주고, 그 한 시간을 통장에 적어 둡니다. 며칠 뒤 컴퓨터가 고장 나자 이웃 대학생이 와서 한 시간 동안 고쳐 주고, 통장에서는 한 시간이 빠져나갑니다. 돈은 한 푼도 오가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필요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돈 대신 시간을 주고받는 장치가 바로 ‘타임뱅크(Time Banking)’입니다. 타임뱅크란 다른 사람을 도운 시간만큼 시간 단위의 적립금을 쌓고, 그것으로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이웃 사이의 서비스 교환 제도를 의미합니다.
본 자료에서는 타임뱅크가 움직이는 기본 원리와 생겨난 역사, 이 제도가 지키려는 다섯 가지 가치, 그리고 사회복지 현장의 활용과 한계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시간으로 서로를 돕는 이웃의 은행
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 시간

타임뱅크의 규칙은 아주 단순합니다. 한 시간 동안 남을 도우면 한 시간을 받고, 한 시간 동안 도움을 받으면 한 시간을 냅니다.
(1) 일의 종류를 따지지 않는 계산
변호사가 법률 상담을 해 주든, 학생이 강아지를 산책시켜 주든 한 시간은 똑같이 한 시간으로 셉니다. 기술의 수준이나 시장 가격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시간을 같은 값으로 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2) 이자도 물가도 없는 적립금
적립한 시간은 바로 쓰지 않고 오래 모아 둘 수 있습니다. 다만 한 시간의 값이 늘 같아서 이자가 붙지 않고 물가에 따라 오르내리지도 않습니다. 쌓아 두기만 해서는 얻을 것이 없으니, 남는 시간을 공동 기금에 기부해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돌리는 곳도 많습니다.
(3) 기록과 연결을 맡는 사람
처음에는 종이 장부로도 운영할 수 있지만, 요즘은 대부분 전용 프로그램으로 거래를 기록합니다. 여러 타임뱅크는 코디네이터를 두어 도움을 구하는 사람과 줄 수 있는 사람을 이어 줍니다.

노동 시간을 돈처럼 쓴 실험의 역사

시간을 돈처럼 쓰자는 생각은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1) 19세기의 시간 상점
1827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조사이아 워런(Josiah Warren)은 물건값을 일한 시간으로 치르는 상점을 열어 1830년까지 운영했습니다. 1832년 영국 런던에서는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이 노동 시간이 적힌 증서로 물건을 바꾸는 거래소를 세웠습니다.
(2) 일본에서 시작된 첫 타임뱅크
오늘날과 같은 타임뱅크는 1973년 일본의 주부이자 사회 평론가였던 미즈시마 데루코(Teruko Mizushima)가 만든 자원봉사 노동은행에서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젊을 때 남을 도운 시간을 모아 두었다가 나이가 들어 도움이 필요할 때 쓰자는 생각이었고, 1980년대 초에는 회원이 3,800명을 넘었습니다.
(3) 미국과 영국으로 퍼진 운동
미국에서는 법률가 에드거 칸(Edgar S. Cahn)이 1980년대 초부터 이 생각을 넓혔고, 1992년 책에서 ‘타임 달러’라는 말을 썼습니다. 영국에서는 1998년 스트라우드에 첫 타임뱅크가 문을 열었고, 2002년 전국 단체가 생겼습니다.
타임뱅크가 지키는 다섯 가지 가치

에드거 칸은 타임뱅크가 단순한 교환 장치가 아니라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도구라고 보았고, 그 바탕을 다섯 가지 가치로 정리했습니다.
- 자산(Asset): 모든 사람은 남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진 소중한 존재입니다.
- 일의 재정의(Redefining Work): 아이를 돌보고 이웃을 챙기는 일처럼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일도 귀한 일입니다.
- 호혜(Reciprocity): 도움은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고 서로 주고받아야 합니다.
- 공동체(Social Networks): 사람은 서로 기대는 관계망 속에서 더 단단해집니다.
- 존중(Respect):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
받기만 하던 사람이 주는 사람으로
칸은 많은 복지 기관이 도움받는 사람을 모자란 점으로만 바라본다고 비판했습니다. 타임뱅크에서는 늘 도움을 받던 노인이나 장애인도 전화로 말벗이 되어 주거나 요리를 가르치며 시간을 적립할 수 있습니다. 남을 돕는 경험은 자신감과 사회적 관계를 함께 키워 줍니다.
복지 현장의 활용과 남은 과제

타임뱅크는 30여 개 나라로 퍼졌고, 일본과 한국, 대만, 뉴질랜드, 세네갈 등에서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1) 노인 돌봄과 지역 건강
1990년까지 미국의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은 노인 돌봄에 타임뱅크를 시험하는 데 12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혼자 사는 노인을 병원까지 태워 주거나, 돌봄에 지친 가족에게 잠깐의 쉼을 주는 일이 대표적입니다.
(2)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길
처음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의 사회 복귀, 중독 회복을 돕는 데에도 쓰였습니다. 남을 돕는 경험 자체가 회복의 한 과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3) 풀어야 할 숙제
모든 시간을 같은 값으로 매기면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이 참여를 망설일 수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적립 시간에 세금을 매겨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졌고, 코디네이터를 둘 운영비를 꾸준히 마련하는 것도 과제로 꼽힙니다.
타임뱅크는 돈이 없어도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제도입니다. 시장이 값을 잘 쳐주지 않던 돌봄과 이웃의 정을 다시 셈에 넣었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힘을 되살리는 복지의 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누구의 한 시간이든 똑같이 귀하다는 믿음을 나누는 것, 그것이 이웃과 함께 사는 공동체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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