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짜로 쓰다가 돈을 내는 이유, 프리미엄(Freemium)

화면 속 그곳으로 떠나는 여행, 영화 관광(Film-Induced Tourism)
경기가 나빠질 것 같으면 사람들은 먼저 지갑을 닫습니다. 외식을 줄이고, 옷이나 가전제품을 사는 일을 미루고, 남는 돈은 통장에 넣어 둡니다. 앞날이 불안할 때 아껴 쓰고 저축하는 것은 한 사람, 한 가정으로서는 지극히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선택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가게와 공장의 매출이 줄고,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들어 결국 사회 전체가 모으는 저축마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미덕인 절약이 경제 전체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이 생각을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라고 합니다. 저축의 역설(Paradox of Saving)이라고도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절약의 역설이 생겨나는 원리와 이 생각이 걸어온 역사, 그리고 경제 위기 때 이 역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와 이에 대한 반론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아낄수록 가난해지는 경제, 절약의 역설의 세계

내가 아낀 돈은 누군가의 소득

절약의 역설을 이해하는 열쇠는 한 사람의 지출이 곧 다른 사람의 소득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내가 빵집에서 쓴 돈은 빵집 주인의 매출이 되고, 빵집 주인은 그 돈으로 밀가루를 사고 직원에게 월급을 줍니다. 돈은 이렇게 손에서 손으로 돌며 여러 사람의 소득이 됩니다.
(1) 지출이 줄면 매출이 줄어듦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소비를 줄이면 가게와 기업이 파는 물건의 양이 줄어듭니다. 경제 전체에서 물건과 서비스를 사려는 힘, 곧 총수요가 약해지는 것입니다.
(2) 매출이 줄면 소득이 줄어듦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사람을 내보냅니다. 그러면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이 함께 줄어듭니다.
(3) 소득이 줄면 저축도 줄어듦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은 예전만큼 저축할 여유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더 모으려고 아꼈는데, 모두가 가난해지면서 사회 전체의 저축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처럼 부분에서 옳은 것이 전체에서도 옳으리라고 여기는 잘못을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합니다. 절약의 역설은 이 오류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벌의 우화에서 케인스까지

아끼기만 하면 나라가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1714년 네덜란드 출신 의사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은 『꿀벌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에서, 가정을 부유하게 만드는 절약이 나라 전체에도 같은 효과를 내리라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9세기에는 소비가 부족하고 저축이 지나쳐 경제가 나빠진다고 본 학자들이 이 문제를 깊이 다뤘습니다. 1892년 영국의 존 로버트슨(John M. Robertson)은 책 『저축의 오류(The Fallacy of Saving)』에서, 온 국민이 저축에만 매달렸다면 모인 돈은 오히려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이 생각을 경제학의 중심에 올려놓은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입니다. 케인스는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에서, 소비를 줄여 더 저축하려는 모든 시도는 다른 사람의 소득을 줄이므로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1948년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이 교과서 『경제학(Economics)』에서 절약의 역설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면서 이 말이 널리 퍼졌습니다.
경제 위기 때 드러나는 역설

절약의 역설은 특히 경기가 얼어붙었을 때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모두가 불안해서 쓰지 않으니 경기가 더 나빠지고, 경기가 나빠지니 더 불안해져 또 쓰지 않는 악순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 빚의 역설(Paradox of Debt): 사람들이 빚을 갚으려고 한꺼번에 허리띠를 졸라매면 소득이 줄어 빚을 갚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집니다.
- 디레버리징의 역설(Paradox of Deleveraging):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가 말한 것으로, 가계와 기업, 은행이 동시에 빚과 자산을 줄이면 각자에게는 신중한 대비가 경제 전체의 고통을 키운다는 뜻입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뒤에 이 역설이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2009년 4월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이던 재닛 옐런(Janet Yellen)은 소비자는 저축을 늘리려 구매를 줄이고, 기업은 현금을 지키려 투자를 취소하고 사람을 내보내는 흐름을 민스키의 디레버리징의 역설로 설명했습니다. 이런 때 정부가 지출을 늘려 줄어든 수요를 메워야 한다는 주장도 이 역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절약의 역설에 대한 반론

절약의 역설은 케인스 경제학의 중요한 생각이지만, 모든 경제학자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주된 반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값이 내려가면 수요가 되살아남
수요가 줄면 물건값이 내려가고, 싸진 값이 다시 사람들의 구매를 부른다는 반론입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값과 임금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는 반박도 있습니다.
(2) 저축은 투자의 밑천
은행에 맡긴 저축은 기업에 빌려줄 돈이 되어 이자율을 낮추고 투자를 늘린다는 반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돈을 장롱에 쌓아 두거나, 이자율이 이미 0에 가까워 더 내릴 수 없는 때에는 이 길이 막힐 수 있습니다.
(3) 긴 시간에서는 저축이 성장을 이끎
길게 보면 저축으로 쌓인 자본이 공장과 기계, 기술에 쓰여 경제를 키운다는 반론입니다. 그래서 절약의 역설은 주로 경기가 침체한 짧은 기간에 들어맞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절약의 역설은 아껴 쓰는 습관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모두의 선택이 한데 모이면 개인의 계산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우리 모두에게도 좋은지 한 번 더 따져 보는 일, 그것이 거시경제적 사고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