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이 만들수록 싸진다, 경험 곡선(Experience Curve)

귀족 청년의 졸업 여행, 그랜드 투어(Grand Tour)
어느 작은 마을 근처에 커다란 광산이 들어섰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광산에서 일하면 월급을 두 배로 준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몰리고, 마을에는 식당과 가게가 늘어나며 집값도 오릅니다. 그런데 몇 년 뒤 돌아보니 오래된 공방과 작은 공장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하나둘 문을 닫았습니다. 돈은 넘쳐 나는데 오히려 다른 산업은 약해진 것입니다. 나라 전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현상이 바로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입니다.
네덜란드병이란 쉽게 말해 ‘천연자원처럼 한 분야가 갑자기 호황을 맞으면서 제조업이나 농업 같은 다른 수출 산업이 오히려 쇠퇴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축복처럼 보이는 횡재가 경제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풍요의 역설’로도 불립니다.
본 자료에서는 네덜란드병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이 병이 생기는 원리부터 역사 속 사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한 방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횡재가 산업을 약하게 만드는 원리
네덜란드병이란 무엇인가?

네덜란드병은 자원이 많은 나라가 겪는 특별한 질병이 아니라, 갑자기 외화가 쏟아져 들어올 때 경제 곳곳에 나타나는 부작용을 가리키는 경제학 용어입니다.
(1) 가스전 발견과 이름의 유래
1959년 네덜란드 북부 흐로닝언(Groningen)에서 유럽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전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스 수출로 큰돈이 들어왔지만, 그 뒤 네덜란드의 제조업은 눈에 띄게 힘을 잃었습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1977년 이 현상을 ‘네덜란드병’이라고 부르며 처음 이름을 붙였습니다.
(2) 자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천연자원 발견뿐 아니라 자원 가격 급등, 대규모 해외 원조, 외국인 투자처럼 짧은 기간에 외화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모든 경우를 설명할 때 이 개념을 씁니다.
네덜란드병이 생기는 원리

1982년 경제학자 맥스 코든(W. Max Corden)과 피터 니어리(J. Peter Neary)는 네덜란드병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모형을 내놓았습니다. 이 모형은 경제를 세 부문으로 나눕니다.
- 호황 부문(Booming Sector): 석유, 가스, 금, 구리처럼 갑자기 큰돈을 벌어들이는 분야입니다.
- 침체 부문(Lagging Sector): 제조업이나 농업처럼 국제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수출 분야입니다.
- 비교역 부문(Non-tradable Sector): 식당, 미용, 건설처럼 나라 안에서만 사고파는 서비스 분야입니다.
(1) 지출 효과(Spending Effect)
자원으로 번 돈이 나라 안에서 쓰이면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 물가와 임금이 오릅니다. 외화가 몰리면서 자기 나라 돈의 가치도 높아집니다. 그러면 수출품은 외국에서 비싸지고 수입품은 싸져, 제조업과 농업이 가격 경쟁에서 밀려납니다. 코든과 니어리의 모형에서는 이 효과를 네덜란드병의 주된 통로로 봅니다.
(2) 자원 이동 효과(Resource Movement Effect)
돈을 잘 버는 호황 부문이 더 높은 임금을 주면 일손과 자본이 그쪽으로 빠져나갑니다. 다만 자원 산업은 큰 설비에 비해 고용하는 사람이 적은 편이라, 이 효과는 지출 효과보다 작다고 여겨집니다.
역사 속 네덜란드병

네덜란드병이라는 이름은 20세기에 생겼지만, 비슷한 일은 훨씬 오래전부터 되풀이되었습니다.
[사례 1] 은이 넘쳐 난 16세기 스페인
16세기 스페인에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캐낸 막대한 은이 흘러들었습니다. 은이 넘치자 나라 안의 물가가 크게 올랐고, 스페인 사람들은 비싸진 자국 제품 대신 외국에서 물건을 사들였습니다. 그 결과 스페인 안의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사례 2] 인산염이 바닥난 섬나라 나우루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는 비료 원료인 인산염을 캐서 팔아 한때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금도 거의 걷지 않고 정부가 돈을 넉넉히 썼지만, 인산염이 대부분 바닥나자 다른 산업이 거의 없던 나라 경제는 큰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사례 3] 북해 석유와 영국·노르웨이
1970년대 북해에서 석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자 영국과 노르웨이에도 많은 외화가 들어왔습니다. 경제학자들은 1970년부터 1990년 무렵까지 두 나라의 제조업이 석유 호황의 영향을 받았는지 꾸준히 연구해 왔습니다. 결과는 나라와 시기에 따라 엇갈리지만, 북해 석유는 선진국의 네덜란드병을 살펴볼 때 자주 등장하는 대표 사례입니다.
네덜란드병을 막는 방법

자원이 많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네덜란드병을 앓는 것은 아닙니다. 들어온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1) 천천히 쓰고 미래를 위해 모아 두기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입니다. 노르웨이는 북해 석유로 번 돈을 1990년에 만든 정부 연금 기금(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에 넣어 해외에 투자하고, 해마다 기금 가치의 약 3% 안에서만 예산에 쓰는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돈이 한꺼번에 국내로 풀리지 않으니 물가와 화폐 가치가 급하게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2) 다른 산업의 힘 기르기
교육과 사회 기반 시설에 투자해 제조업과 농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반대로 관세를 높여 약해진 산업을 보호하는 방식은 수입에 필요한 외화 수요를 줄여 화폐 가치를 더 끌어올릴 수 있어, 오히려 병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3) 진단이 어려운 병
화폐 가치가 오르는 까닭은 생산성 향상, 교역 조건 변화, 대규모 투자 자금 유입 등 여러 가지입니다. 그래서 한 나라가 정말 네덜란드병을 앓고 있는지 가려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예상보다 훨씬 큰 석유나 가스전이 발견된 나라들에서 평균적으로 화폐 가치가 오르고 다른 수출 산업이 위축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네덜란드병은 갑자기 생긴 큰돈이 언제나 축복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자원은 언젠가 바닥나고 가격은 오르내리지만, 한 번 무너진 산업은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늘의 횡재를 내일의 경쟁력으로 바꿔 두는 것, 그것이 오래가는 풍요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