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가면 이길까, 선발자 이점(First-Mover Advantage)
재미없는 영화를 보다가도 표값이 아까워 끝까지 자리를 지킨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배가 부른데 음식을 남기면 돈이 아깝다며 억지로 다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면, 끝까지 앉아 있든 자리를 뜨든 이미 낸 표값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미 써 버려서 어떤 선택을 해도 되찾을 수 없는 비용을 ‘매몰 비용(Sunk Cost)’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되찾을 수 없는 비용이 아까워 앞으로의 결정을 그르치는 생각의 함정을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라고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매몰 비용의 뜻부터 사람들이 이 함정에 빠지는 까닭, 실험과 역사 속 사례, 그리고 함정을 피하는 방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지나간 돈에 붙잡히는 마음, 매몰 비용의 원리와 극복
되찾을 수 없는 비용, 매몰 비용이란

경제학은 비용을 두 가지로 나누어 봅니다. 이미 치러서 되돌릴 수 없는 비용과, 지금의 선택에 따라 아직 피할 수 있는 앞으로의 비용입니다.
(1) 이미 가라앉은 비용
영어의 ‘sunk’는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뜻입니다. 공장 짓는 데 이미 쓴 돈, 끝난 광고비, 연구 개발에 들인 돈처럼 어떤 결정을 내려도 바뀌지 않는 비용이 여기에 속합니다.
(2) 지난 일은 지난 일이라는 원칙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결정이라면 앞으로 생길 비용과 이익만 비교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두라는 뜻에서 ‘기왕지사 원칙(Bygones Principle)’이라고 합니다.
(3) 공장 예시로 보는 계산
1억 달러를 들여 1억 2천만 달러의 가치를 낼 공장을 짓다가, 3천만 달러를 쓴 뒤 완성 후 가치가 6,500만 달러로 줄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마저 짓는 데 7천만 달러가 더 드니, 이미 쓴 돈과 상관없이 멈추는 편이 낫습니다. 반대로 가치가 7,500만 달러라면 계속 짓는 것이 맞습니다.
사람들이 함정에 빠지는 까닭

계산으로는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쉽게 이 원칙을 어깁니다. 행동경제학은 그 밑바탕에 몇 가지 마음의 움직임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 낭비 회피(Waste Aversion): 지금 그만두면 지금까지 쓴 돈과 시간이 헛것이었다고 인정하는 셈이라 그 순간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 손실 회피(Loss Aversion): 사람은 같은 크기라도 얻는 기쁨보다 잃는 아픔을 더 크게 느껴, 손실을 확정 짓는 선택을 꺼립니다.
- 개인 책임감(Personal Responsibility): 처음 결정을 내린 사람이 바로 나라면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워 더 매달리게 됩니다.
- 낙관 편향(Optimism Bias): 이미 돈을 건 뒤에는 그 선택이 잘될 가능성을 실제보다 높게 믿기 쉽습니다.
실제로 1977년 배리 스토(Barry Staw)와 프레더릭 폭스(Frederick Fox)의 실험에서는, 앞선 실패한 투자를 스스로 결정했다고 들은 참가자들이 남이 결정했다고 들은 참가자들보다 같은 부서에 평균적으로 더 많은 돈을 다시 쏟아부었습니다.
실험과 역사 속 매몰 비용

매몰 비용의 오류는 실험실에서도, 나라의 큰 사업에서도 거듭 확인되었습니다.
(1) 연극 시즌권 실험
1985년 미국의 심리학자 할 아크스(Hal Arkes)와 캐서린 블루머(Catherine Blumer)는 대학 극장의 시즌권 구매자를 무작위로 나누어 일부에게만 할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정가를 다 낸 사람들이 할인받은 사람들보다 시즌 초반 공연을 더 자주 보러 왔습니다. 공연의 재미는 같은데, 낸 돈의 크기가 발걸음을 바꾼 것입니다.
(2) 스키 여행 질문
같은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100달러짜리 여행과 더 즐거울 50달러짜리 여행을 실수로 같은 날에 예약했고, 둘 다 환불이 안 된다면 어디로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절반 넘는 사람이 덜 즐거울 것을 알면서도 돈을 더 낸 여행을 골랐습니다.
(3) 콩코드의 오류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e)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그동안 들인 돈과 정치적 약속 때문에 사업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매몰 비용의 오류를 ‘콩코드의 오류(Concorde Fallacy)’라고도 부릅니다.
함정을 피하는 결정의 기술

매몰 비용의 오류는 누구나 빠질 수 있지만, 몇 가지 습관으로 그 힘을 줄일 수 있습니다.
(1) 처음 시작한다면 고를까 묻기
지금까지 들인 것을 모두 지우고, 오늘 처음 이 선택 앞에 섰다면 같은 길을 고를지 스스로 물어봅니다.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면 멈출 때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2) 멈출 기준을 미리 정하기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예산이나 기간, 목표 같은 그만둘 기준을 정해 두면, 막상 그 순간이 와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3) 결정과 평가를 나누기
처음 결정을 내린 사람과 계속할지를 평가하는 사람을 나누면 개인 책임감 때문에 매달리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큰 사업을 중간에 외부 시선으로 다시 점검하는 까닭입니다.
다만 이미 들인 노력에서 얻은 경험과 정보는 매몰 비용이 아니라 앞으로 쓸 수 있는 자산입니다. 지난 돈을 잊으라는 말은 지난 배움까지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매몰 비용의 오류는 아까운 마음이 미래의 선택을 대신 내려 버리는 함정입니다. 끝까지 버티는 것이 늘 끈기는 아니며, 제때 멈추는 것도 용기 있는 결정입니다.
이미 쓴 것보다 앞으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차분히 견주어 보는 일, 그것이 후회 없는 선택을 만드는 경제적 사고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