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끝에서 관절을 거꾸로 푼다, 역기구학(Inverse Kinematics)

한곳에 모아 다시 나눈다, 허브 앤 스포크(Hub-and-Spoke Model)
서점에서 여행 책을 찾는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날은 ‘일본’ 여행서를, 어떤 날은 ‘2020년대에 나온 사진 위주의’ 여행서를 찾습니다. 그런데 서가는 한 가지 순서로만 꽂혀 있어서 나라별로 찾기는 쉬워도 출간 연도나 형식으로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측면으로 쪼개 두었다가 필요할 때 조합하는 방식, 그것이 바로 ‘패싯 분류(Faceted Classification)’입니다.
패싯 분류란 쉽게 말해 ‘주제를 대상, 재료, 활동, 장소, 시간처럼 서로 겹치지 않는 여러 측면으로 나누고, 각 측면의 기호를 이어 붙여 하나의 분류 번호를 만드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패싯(Facet)은 보석을 깎아 낸 각각의 면을 가리키는 말로, 한 주제를 여러 면에서 비추어 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패싯 분류의 기본 개념부터 랑가나단의 콜론 분류법, 열거식 분류와의 차이, 그리고 오늘날 검색 화면 속 패싯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지식을 조각내고 다시 조립하는 분류의 원리
패싯 분류란 무엇인가?

도서관 분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세상의 주제를 미리 모두 늘어놓는 방식과, 주제를 쪼갠 뒤 필요할 때 조립하는 방식입니다.
(1) 열거식 분류(Enumerative Classification)
가능한 주제를 위에서 아래로 나누어 표에 모두 적어 두고, 책이 들어오면 그 가운데 가장 알맞은 칸을 고르는 방식입니다. 표에 없는 새 주제가 나타나면 마땅히 넣을 자리가 없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2) 분석합성식 분류(Analytico-Synthetic Classification)
책의 주제를 먼저 여러 측면으로 분석한 다음, 측면마다 정해 둔 기호를 규칙에 따라 합성합니다. 패싯 분류가 여기에 해당하며, 표에 없던 주제라도 조각을 조합해 새 번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좋은 패싯은 뜻이 분명하고, 서로 겹치지 않으며, 모두 합치면 주제를 빠짐없이 덮어야 합니다. 시간, 장소, 형식처럼 거의 모든 분야에 두루 쓰이는 패싯도 있고, 한 분야 안에서만 쓰는 패싯도 있습니다.
랑가나단의 콜론 분류법과 PMEST

패싯 분류를 처음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도서관학 5법칙으로 유명한 인도의 S. R. 랑가나단(Shiyali Ramamrita Ranganathan)입니다. 그는 1933년 콜론 분류법(Colon Classification)을 펴냈는데, 패싯 사이를 쌍점(:)으로 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런던 유학 시절 부품을 끼워 맞춰 여러 모양을 만드는 메카노(Meccano) 조립 장난감을 보고 착안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랑가나단은 모든 주제가 다섯 가지 기본 범주로 나뉜다고 보았고, 머리글자를 따서 PMEST라고 불렀습니다.
- 개성(Personality): 그 주제의 중심이 되는 대상입니다(예: 의학에서 ‘폐’).
- 소재(Matter): 대상의 재료나 성질입니다(예: ‘결핵’).
- 활동(Energy): 대상에 가해지는 과정이나 작업입니다(예: ‘치료’).
- 공간(Space): 주제와 관련된 지리적 장소입니다(예: ‘인도’).
- 시간(Time): 주제와 관련된 시대나 연도입니다(예: ‘1950년’).
이 틀에 따르면 ‘1950년 인도에서 이루어진 엑스선을 이용한 폐결핵 치료 연구’라는 복잡한 주제도 의학 아래에 PMEST 순서대로 기호를 이어 붙여 하나의 분류 번호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PMEST를 정식화한 제4판(1952)부터는 쌍점 말고도 쉼표, 쌍반점, 마침표를 패싯마다 나누어 써서 기호만 보고도 어떤 측면인지 구별하게 했고, 장소와 함께 마침표를 쓰던 시간 패싯은 1960년대 초 작은따옴표로 바뀌었습니다.
열거식 분류와 무엇이 다른가?

듀이십진분류법(DDC)이나 한국십진분류법(KDC)은 기본적으로 열거식이지만, 지역이나 시대, 형식을 덧붙이는 보조표를 두어 패싯의 장점을 일부 받아들였습니다. 그래도 두 방식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1) 패싯 분류의 장점
새로운 주제가 생겨도 기존 조각을 조합하면 되므로 표를 크게 고치지 않아도 됩니다. 또 주제를 여러 측면으로 기록해 두면, 이용자가 나라에서 출발하든 시대에서 출발하든 원하는 순서로 자료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2) 패싯 분류의 한계
기호가 길고 복잡해져 서가에 붙이는 청구기호로 쓰기 불편합니다. 어떤 개념이 둘 이상의 패싯에 들어갈 수 있어 분류하는 사람마다 판단이 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콜론 분류법은 인도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쓰이고, 세계적으로는 열거식 체계가 여전히 널리 쓰입니다.
- 분류연구회(Classification Research Group): 1952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연구 모임으로, 랑가나단의 생각을 이어받아 전문 분야용 패싯 분류를 여럿 개발했습니다.
검색 화면 속에서 살아난 패싯

책 한 권은 서가의 한 자리에만 꽂히지만, 디지털 목록에서는 한 자료에 여러 패싯을 동시에 붙일 수 있습니다. 덕분에 서가에서 불편했던 패싯 분류의 생각이 검색 화면에서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 패싯 검색(Faceted Search): 검색 결과 옆에 주제, 저자, 연도, 언어 같은 패싯 목록과 항목별 자료 수를 보여 주고, 이용자가 하나씩 골라 결과를 좁히게 합니다. 오늘날 도서관 목록 검색 화면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 온라인 쇼핑몰(Online Shopping Mall): 가격대, 브랜드, 색상, 크기 같은 필터를 차례로 고르는 화면도 패싯 분류의 원리를 그대로 따릅니다.
- 국제십진분류법(Universal Decimal Classification): 언어, 형식, 장소, 시간 같은 패싯마다 고유한 기호를 두어 듀이 계열 분류에 조합의 유연함을 더했습니다.
패싯 분류는 주제를 미리 정해 둔 칸에 끼워 넣는 대신, 여러 측면으로 나누었다가 필요에 따라 다시 조립하는 분류 방식입니다. 랑가나단의 콜론 분류법에서 시작된 이 생각은 서가에서는 복잡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오늘날 도서관 검색과 쇼핑몰 필터 속에서 매일 쓰이고 있습니다.
정보를 한 줄로 세우기 전에 그것이 가진 여러 얼굴을 먼저 살피는 것, 그것이 원하는 자료를 빠르게 찾는 정보 조직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