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침반이 남쪽을 가리키던 시절, 지자기 역전(Geomagnetic Reversal)

쇠를 천천히 갉아먹는 반응, 부식(Corrosion)
두 반의 시험 점수를 비교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평균도 같고, 점수가 퍼진 정도도 같고, 공부 시간과 점수의 관계를 나타내는 숫자까지 똑같다면 두 반은 사실상 같은 반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대부분은 그렇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들을 그래프로 그려 보면 전혀 다른 모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단 네 묶음의 자료로 보여 준 것이 바로 ‘앤스컴 콰르텟(Anscombe’s Quartet)’입니다.
앤스컴 콰르텟이란 쉽게 말해 ‘평균, 분산, 상관계수, 회귀선 같은 요약 통계가 거의 똑같지만 그래프로 그리면 완전히 다르게 생긴 네 개의 자료 묶음’을 의미합니다. 콰르텟은 음악에서 네 명이 함께 연주하는 사중주를 뜻하는 말로, 네 자료가 한 세트로 움직인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앤스컴 콰르텟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네 그래프가 각각 보여 주는 함정, 그 뒤를 이은 공룡 모양의 자료, 그리고 데이터를 제대로 읽는 방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숫자 뒤에 숨은 모양을 보는 법
앤스컴 콰르텟이란 무엇인가?

이 자료는 영국 출신 통계학자 프랜시스 앤스컴(Francis Anscombe)이 1973년 학술지 「미국 통계학자(The American Statistician)」에 실은 논문 「통계 분석에서의 그래프(Graphs in Statistical Analysis)」에서 처음 소개했습니다. 당시 통계학자들 사이에는 ‘계산은 정확하고 그래프는 대충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앤스컴은 이 생각을 뒤집고 싶었습니다.
(1) 똑같은 요약 통계
네 묶음은 모두 점 11개로 이루어져 있고, 다음 값들이 거의 같습니다.
- x의 평균(Mean of x): 네 묶음 모두 정확히 9입니다.
- x의 분산(Variance of x): 네 묶음 모두 정확히 11입니다.
- y의 평균(Mean of y):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7.50으로 같습니다.
-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0.816으로 같습니다.
- 회귀선(Regression Line): 모두 y = 3.00 + 0.500x로 같습니다.
(2) 앤스컴이 전하려던 말
숫자만 보면 네 자료는 쌍둥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앤스컴은 그래프를 그리지 않고 계산부터 하면 자료가 가진 진짜 모습을 놓친다는 점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
네 그래프가 보여 주는 함정

네 묶음을 산점도로 그리면 숫자가 감추고 있던 차이가 한눈에 드러납니다.
(1) 첫 번째 묶음
점들이 오른쪽 위로 비스듬히 흩어져 있습니다. 직선 관계에 약간의 오차가 섞인 모습으로, 요약 통계가 자료를 비교적 잘 설명하는 유일한 경우입니다.
(2) 두 번째 묶음
점들이 매끄러운 곡선을 그립니다. 두 변수 사이에 분명한 관계가 있지만 직선이 아니라서, 직선을 전제로 한 상관계수와 회귀선은 이 관계를 제대로 담지 못합니다.
(3) 세 번째 묶음
점 10개가 거의 완벽한 직선 위에 놓여 있는데, 점 하나만 훌쩍 위로 벗어나 있습니다. 이 이상치(Outlier) 하나가 회귀선을 끌어당기고, 1에 가까웠을 상관계수를 0.816으로 낮춥니다.
(4) 네 번째 묶음
점 10개가 모두 x = 8인 세로줄에 모여 있고, 점 하나만 x = 19에 홀로 떨어져 있습니다. 나머지 점들로는 관계를 말할 수 없는데도, 이 외딴 점 하나가 높은 상관계수를 만들어 냅니다.
공룡으로 이어진 실험

앤스컴이 이 숫자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뒤 연구자들은 요약 통계가 같고 모양만 다른 자료를 일부러 만드는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례 1] 데이터사우루스
2016년 데이터 시각화 연구자 알베르토 카이로(Alberto Cairo)는 점을 찍어 공룡 그림을 그린 자료를 만들고 ‘데이터사우루스(Datasaurus)’라고 불렀습니다. 평범한 요약 통계 뒤에 공룡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재치 있는 경고였습니다.
[사례 2] 데이터사우루스 더즌
2017년 오토데스크 연구소의 저스틴 마테이카(Justin Matejka)와 조지 피츠모리스(George Fitzmaurice)는 이 공룡 자료를 바탕으로, 점을 조금씩 옮기면서 요약 통계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유지하는 방법을 내놓았습니다. 그 결과 공룡과 별, 동심원, 줄무늬 등 서로 다른 그림 13개가 같은 통계를 갖는 ‘데이터사우루스 더즌(Datasaurus Dozen)’이 탄생했습니다.
데이터를 제대로 읽는 법

앤스컴 콰르텟은 지금도 통계학과 데이터 분석 수업의 첫 시간에 자주 등장하며, 에드워드 터프티(Edward Tufte)의 책 「정량 정보의 시각적 표현(The Visual Display of Quantitative Information)」에도 실렸습니다. 이 사례가 남긴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계산 전에 그려 봅니다
분석을 시작하기 전에 산점도나 히스토그램으로 자료의 모양부터 확인합니다. 곡선 관계인지, 한쪽으로 몰려 있는지, 무리에서 떨어진 점이 있는지는 그림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2) 튀는 점을 따로 살핍니다
이상치와 외딴 점은 몇 개만으로도 결과를 크게 흔듭니다. 그 점이 입력 실수인지, 실제로 특별한 사례인지 확인한 뒤에 분석 방법을 정해야 합니다.
(3) 숫자 하나로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상관계수가 높다는 것은 점들이 직선에 가깝게 놓여 있다는 뜻일 뿐, 관계의 모양이나 이유까지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앤스컴 콰르텟은 요약 통계가 자료를 압축한 그림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물체가 여러 가지일 수 있듯, 같은 숫자 뒤에도 전혀 다른 모양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숫자를 믿기 전에 그 숫자가 나온 자료를 직접 그려 보는 것, 그것이 데이터를 올바르게 읽는 통계적 사고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