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꾸기는 쉽게, 삶은 든든하게, 유연안정성(Flexicurity)
같은 감자라도 삶아서 소금만 뿌린 것과 얇게 썰어 기름에 튀기고 향과 조미료를 입혀 봉지에 담은 것은 우리 몸에 같은 음식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영양 성분표의 숫자는 비슷해 보여도, 어디까지 손을 대고 무엇을 더했는지에 따라 음식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직관입니다. 이 직관을 하나의 틀로 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틀이 바로 ‘노바 식품 분류(Nova Food Classification)’입니다. 식품을 지방이나 당 같은 영양소가 아니라 산업적으로 가공된 정도와 목적에 따라 네 무리로 나누는 체계로, 2009년 브라질 상파울루대학교의 연구자들이 제안했습니다. 오늘날 영양학과 공중보건 연구, 각국의 식생활 지침에서 널리 쓰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노바 분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네 무리가 각각 무엇인지, 초가공식품은 어떻게 알아보는지, 그리고 이 분류의 쓰임과 한계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음식을 가공의 정도로 읽는 네 칸 지도
영양소가 아니라 가공을 본다

노바 분류는 영양학자 카를루스 아우구스투 몬테이루의 연구에서 자랐습니다. 처음에는 영양 부족을 연구했지만, 1990년대 중반 브라질에서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비만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며 눈길을 돌렸습니다.
(1) 개별 영양소에서 식사 전체로
그는 음식 하나하나의 영양소를 따지기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먹는지를 통계로 살폈습니다. 그러자 쌀과 콩 같은 전통 음식 중심의 식사와 고도로 가공된 제품 중심의 식사라는 두 갈래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2) 이름의 유래
‘노바’는 포르투갈어로 ‘새롭다’는 뜻의 낱말에서 왔습니다. 원래 논문 제목이 ‘음식의 새로운 분류’였고, 이 말을 이름으로 쓰자는 생각은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의 장클로드 무바락이 냈다고 전해집니다.
(3) 약어가 아니다
흔히 NOVA라고 대문자로 적지만 무엇의 머리글자를 딴 것은 아닙니다. 최근 논문들은 Nova라고 적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네 칸으로 나뉜 식품 지도

노바는 식품을 산업적 가공의 성격과 정도, 목적에 따라 네 무리로 나눕니다. 번호가 커질수록 공장에서 손을 많이 댄 음식입니다.

- 미가공·최소가공식품(Unprocessed or Minimally Processed Foods): 식물, 동물, 균류의 먹을 수 있는 부분과 물, 그리고 이를 다듬고 말리고 갈고 얼리고 저온 살균한 것입니다. 소금, 설탕, 기름을 더하지 않습니다. 과일, 채소, 곡물, 콩, 신선한 고기, 달걀, 우유, 플레인 요구르트가 예입니다.
- 가공 조리 재료(Processed Culinary Ingredients): 첫 번째 무리에서 짜내거나 정제해 얻은 것으로, 음식을 만들 때 간을 맞추고 조리하는 데 씁니다. 올리브유, 소금, 설탕, 식초, 꿀, 버터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 가공식품(Processed Foods): 첫 번째 무리 식품에 두 번째 무리의 재료를 더해 만든 비교적 단순한 식품입니다. 치즈, 통조림 채소, 소금 간을 한 견과, 시럽에 담근 과일, 말리거나 통조림으로 만든 생선이 예입니다.
-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 여러 가지 원료를 산업적으로 배합해 만든 제품으로, 첫 번째 무리의 식품은 아예 없거나 아주 조금만 들어 있습니다.
초가공식품을 알아보는 방법

네 번째 무리가 가장 눈길을 끄는 만큼 노바는 이 무리를 가려내는 기준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밝혀 둡니다. 핵심은 제품 뒷면의 원재료 목록입니다.
(1) 부엌에서는 쓰지 않는 재료
고과당 옥수수 시럽, 경화유, 변성 전분, 단백질 분리물처럼 보통의 요리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물질이 들어 있으면 초가공식품으로 봅니다. 가수분해 단백질이나 기계로 발라낸 고기도 같은 부류입니다.
(2) 겉모습을 꾸미는 첨가물
향료, 색소, 감미료, 유화제, 증점제처럼 맛과 모양을 돋보이게 하는 첨가물이 쓰이는 점도 특징입니다.
(3) 산업적 공정과 포장
압출, 틀에 찍어 내기, 미리 튀기기 같은 산업 공정과 정교한 합성 포장도 이 무리를 만드는 방법으로 꼽힙니다.
(4) 설계된 목적
노바는 이런 식품이 값싼 원료, 긴 유통 기간, 강한 상표 이미지로 이익을 내고, 곧바로 먹거나 마실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무리의 음식이나 직접 만든 요리를 대신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시각입니다.
식생활 지침으로, 그리고 논쟁 속으로

노바는 연구실 밖에서도 힘을 얻었습니다. 2014년 브라질 보건부는 노바를 바탕으로 새 식생활 지침을 냈고, 몬테이루가 이를 이끌었습니다.
(1) 브라질의 황금률
지침의 핵심 문장은 자연 그대로이거나 최소한으로 가공한 식품과 직접 만든 요리를 초가공식품보다 늘 우선하라는 것입니다. 기름, 소금, 설탕은 조금만 쓰고, 가공식품은 적게, 초가공식품은 피하라고 권합니다.
(2) 국제기구의 채택
범미보건기구는 자체 식생활 지침에 노바를 받아들였고, 유엔식량농업기구는 브라질 지침이 사회적·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강조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3) 영양을 말하지 않는다
노바는 음식의 영양 가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며, 영양 성분을 평가하는 용도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영양 등급을 보여 주는 표시 제도와 함께 쓰자는 제안도 나옵니다.
(4) 이분법이라는 비판
한편에서는 초가공식품을 대체로 해롭다고 보는 이분법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강화된 영양을 놓치고 가공을 다른 식습관 요인과 뒤섞을 수 있다는 것이며, 정의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엄밀한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노바 식품 분류는 음식을 무엇이 들었느냐보다 어떻게, 왜 만들어졌느냐로 나누어 보자는 제안입니다. 완벽한 잣대는 아니지만, 매일의 식탁을 돌아보게 하는 쉬운 기준이라는 점이 널리 퍼진 이유입니다.
제품 뒷면의 원재료 목록을 한 번 더 읽어 보고, 낯선 이름이 길게 이어지는지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 그것이 노바 식품 분류 이해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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