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는 늘었는데 살림은 줄었다, 화폐 환상(Money Illusion)
같은 나라로 여행을 떠나도 사람마다 여행의 모습은 크게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정해진 명소를 돌고 한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배낭 하나만 메고 현지인의 집에 머물며 그들과 같은 밥을 먹습니다. 둘 다 같은 여행자인데 왜 이렇게 다른 길을 고르는 것일까요? 이 차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틀이 바로 ‘코헨의 관광객 유형(Cohen’s Tourist Typology)’입니다.
코헨의 관광객 유형이란 쉽게 말해 ‘여행자가 익숙함과 새로움 가운데 무엇을 더 원하는지에 따라 관광객을 네 가지로 나눈 분류’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사회학자 에릭 코헨(Erik Cohen)이 1972년 학술지 「소셜 리서치(Social Research)」에 실은 논문 「국제 관광의 사회학을 향하여(Toward a Sociology of International Tourism)」에서 처음 제시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이 분류의 바탕이 되는 익숙함과 새로움의 개념부터, 네 가지 관광객의 특징, 일상에서 찾아보는 예시, 그리고 이 이론이 남긴 의미와 한계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익숙함과 새로움으로 나눈 네 가지 여행자
익숙함과 새로움, 그리고 환경 거품

코헨은 모든 여행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기는 두 가지 마음이 섞여 있다고 보았습니다.
(1) 새로움을 찾는 마음
사람들은 낯선 풍경과 문화, 처음 맛보는 음식을 경험하려고 집을 떠납니다. 일상과 다른 것을 보고 느끼는 일은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2) 익숙함에 기대는 마음
그러나 너무 낯선 환경은 불안과 피로를 함께 가져옵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여행자는 다시 익숙한 것을 찾게 됩니다.
(3) 환경 거품(Environmental Bubble)
코헨은 여행자가 낯선 곳에서도 고향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누리게 해 주는 보호막을 ‘환경 거품’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기 나라 말이 통하는 가이드, 늘 먹던 음식을 파는 식당,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호텔이 이 거품을 이룹니다. 여행자가 이 거품 안에 얼마나 머무느냐에 따라 여행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이 코헨의 생각이었습니다.
네 가지 관광객의 특징

코헨은 익숙함이 가장 큰 쪽에서 새로움이 가장 큰 쪽까지 여행자를 네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 조직된 대중 관광객(Organized Mass Tourist): 단체 여행 상품을 사서 미리 짜인 일정대로 움직입니다. 가이드가 길을 안내하고 숙소와 식사도 모두 정해져 있어, 여행 내내 환경 거품 안에 머무릅니다.
- 개별 대중 관광객(Individual Mass Tourist): 숙소와 항공편은 여행사를 통해 마련하지만, 단체에 묶이지 않고 일정을 어느 정도 스스로 정합니다. 그래도 대부분 이미 잘 알려진 명소와 시설을 이용합니다.
- 탐험가(Explorer): 여행 계획을 혼자 세우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찾아갑니다. 현지인과 어울리고 그 지역의 말을 배우려 하지만, 편안한 숙소와 믿을 만한 교통수단은 놓지 않습니다.
- 표류자(Drifter): 정해진 계획 없이 떠돌며 현지 사회 속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관광객을 위한 시설을 일부러 피하고, 현지인처럼 일하고 먹고 자는 생활을 택합니다.
코헨은 앞의 두 유형을 관광 산업이 짜 놓은 틀을 따르는 ‘제도화된 관광’으로, 뒤의 두 유형을 그 틀에서 벗어난 ‘비제도화된 관광’으로 묶었습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익숙함은 줄고 새로움은 커집니다.

일상에서 찾아보는 네 유형

네 유형은 우리 주변의 여행 모습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단체 여행
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나 전세 버스로 유명한 사원과 시장을 돌고, 저녁에는 한식당에서 식사하는 여행은 조직된 대중 관광객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길을 잃을 걱정이 없고 편하지만, 현지인과 마주칠 기회는 적습니다.
자유 여행을 떠난 직장인
항공권과 호텔만 묶은 상품을 사서 낮에는 지도 앱을 보며 이름난 거리와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는 개별 대중 관광객에 해당합니다.
오지 마을을 찾은 여행 작가
교통이 불편한 산골 마을을 찾아가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되, 밤에는 깨끗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쉬는 사람은 탐험가에 가깝습니다.
몇 달씩 머무는 장기 여행자
농장에서 일을 거들며 숙식을 해결하고 현지 친구들과 지내는 장기 여행자는 표류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론이 남긴 의미와 한계

코헨의 분류는 관광객을 하나의 무리로 보지 않고, 서로 다른 동기와 행동을 지닌 사람들로 나누어 보게 했다는 점에서 관광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 관광지가 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처음에는 탐험가와 표류자만 찾던 외딴 마을도, 길이 알려지고 숙소와 식당이 생기면 대중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지로 바뀌곤 합니다. 어떤 유형의 여행자가 많이 찾는지 보면 그 관광지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사람은 한 유형에 고정되지 않는다
같은 사람도 젊을 때는 표류자처럼, 아이와 함께할 때는 단체 관광객처럼 여행할 수 있습니다. 여행지와 동행, 나이와 경험에 따라 고르는 방식이 달라지므로 유형을 사람에게 붙이는 꼬리표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3) 여행의 의미까지는 담지 못한다
이 분류는 여행자가 무엇을 하는지는 잘 보여 주지만, 여행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코헨 자신도 1979년 논문에서 여행 경험을 휴식, 기분 전환, 체험, 실험, 실존의 다섯 가지 방식으로 다시 나누며 생각을 넓혔습니다.
코헨의 관광객 유형은 여행자를 좋고 나쁨으로 가르는 잣대가 아니라, 낯선 곳에서 사람마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균형을 어떻게 잡는지 보여 주는 지도입니다. 단체 여행의 편안함도, 홀로 떠도는 여행의 자유로움도 저마다의 가치를 지닙니다.
다음 여행을 계획할 때 나는 환경 거품 안에 얼마나 머물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 그것이 나에게 맞는 여행을 찾는 관광학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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