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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을 떠올리면 대개 바다와 오름, 맛집이 먼저 생각납니다. 그러나 그 여행은 집에서 짐을 싸고 항공권을 예매하는 순간 이미 시작되었고, 공항과 비행기를 거쳐 다시 집 현관문을 열 때 비로소 끝납니다. 여행지 한 곳만 보아서는 여행의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는 셈입니다. 이렇게 관광을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하나로 이어진 구조로 보는 틀이 바로 ‘라이퍼의 관광 시스템(Leiper’s Tourism System)’입니다.
라이퍼의 관광 시스템이란 쉽게 말해 ‘관광객, 관광객이 떠나는 지역, 거쳐 가는 길, 머무는 목적지, 그리고 관광 산업이라는 다섯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함께 움직이는 하나의 체계’를 의미합니다. 호주의 관광학자 닐 라이퍼(Neil Leiper)가 1979년 학술지 『관광 연구 연보(Annals of Tourism Research)』에 발표한 논문에서 제시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라이퍼가 이 모형을 만든 까닭과 다섯 가지 구성 요소, 세 지역이 각각 맡는 역할, 그리고 이 모형이 오늘날 관광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주는 시사점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떠나고 거치고 머무는 여행의 구조, 라이퍼의 관광 시스템
라이퍼의 관광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1970년대까지 관광은 학자마다 다르게 정의되었습니다. 경제학자는 돈의 흐름으로, 숙박업이나 항공업 종사자는 자기 업종의 눈으로 관광을 설명했기 때문에 전체 모습을 담는 정의가 부족했습니다.
(1) 관광을 하나의 체계로 정의하다
라이퍼는 관광을 ‘자기 의지로 떠나, 평소 사는 곳을 벗어나 하룻밤 이상 머무는 사람들의 이동과 체류로 이루어진 체계’로 정의했습니다. 다만 여행 중 들르는 곳에서 돈을 버는 것이 주된 목적인 이동은 관광에서 제외했습니다.
(2) 다섯 가지 구성 요소
이 체계는 관광객, 관광객 발생 지역, 경유 지역, 관광 목적지 지역, 관광 산업이라는 다섯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다섯 요소는 공간적으로, 또 기능적으로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3) 바깥과 소통하는 열린 체계
관광 시스템은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이퍼는 이 체계가 자연, 문화, 사회, 경제, 정치, 기술 같은 더 넓은 환경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열린 시스템이라고 보았습니다.
세 지역이 맡는 역할

다섯 요소 가운데 세 가지는 지리적 공간입니다. 관광객은 이 세 지역을 차례로 지나며 여행을 완성합니다.
(1) 관광객 발생 지역: 여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관광객이 평소 사는 곳으로, 여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입니다. 일상의 피로나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처럼 떠나고 싶게 만드는 요인이 생기는 곳이며, 관광 수요가 나오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광고와 홍보, 여행 상품 판매 같은 마케팅 활동은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2) 경유 지역: 출발지와 목적지를 잇는 길
두 지역을 연결하는 이동 구간입니다. 도로, 철도, 항로, 바닷길과 그 위의 교통수단, 공항과 휴게소가 여기에 속합니다. 경유 지역은 단순한 통로를 넘어 잠시 들르는 경유지 관광이 생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3) 관광 목적지 지역: 잠시 머무는 곳
관광객이 발생 지역에는 없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찾아가 머무는 곳입니다. 볼거리와 숙박, 음식 같은 서비스가 모여 있고, 관광이 지역 경제와 사회, 환경에 주는 영향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곳입니다.
시스템을 움직이는 관광객과 관광 산업

나머지 두 요소는 사람과 산업입니다. 관광객이 시스템 안을 움직이는 주인공이라면, 관광 산업은 그 움직임을 돕는 무대 장치에 해당합니다.
라이퍼는 관광 산업이 한 장소에 모여 있지 않고 세 지역에 나뉘어 퍼져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 여행사(Travel Agency): 주로 발생 지역에서 여행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합니다.
- 교통 사업자(Transport Operator): 항공사, 철도, 버스, 선박처럼 경유 지역에서 관광객을 실어 나릅니다.
- 숙박업(Accommodation): 목적지 지역에서 관광객이 머물 곳을 제공합니다.
- 관광 안내 기관(Tourist Information Service): 발생 지역과 목적지 양쪽에서 정보를 알리고 방문을 이끕니다.
또한 라이퍼는 관광이 ‘부분적으로만 산업화된’ 활동이라고 보았습니다. 관광객은 호텔과 항공사뿐 아니라 동네 공원, 일반 식당, 공공 도로처럼 관광 산업이 아닌 자원도 함께 쓰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들

이 모형의 가장 큰 가치는 한 요소의 변화가 다른 요소로 번진다는 사실을 한눈에 보여 준다는 데 있습니다.
(1) 연결이 끊기면 전체가 멈춘다
어느 도시로 가는 항공 노선이 끊기면 그곳의 호텔과 식당, 택시 기사까지 손님을 잃습니다. 목적지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경유 지역이 막히면 관광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국경이 닫혔던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세계 관광이 한꺼번에 멈춘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2) 영향은 목적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관광객이 많이 떠나는 발생 지역에서도 돈이 밖으로 빠져나가고 생활 문화가 바뀌는 등 변화가 생깁니다. 경유 지역에서는 교통 혼잡과 소음, 배출 가스 문제가 나타납니다.
(3) 함께 관리해야 지속된다
그래서 관광 정책과 경영은 목적지 한 곳만 볼 것이 아니라, 출발지의 마케팅과 이동 수단, 목적지의 수용 여건을 함께 따져야 합니다. 오늘날 지속 가능한 관광을 이야기할 때 이 모형이 자주 바탕이 되는 까닭입니다.
라이퍼의 관광 시스템은 여행을 한 장소의 경험이 아니라 집에서 시작해 집으로 돌아오는 하나의 흐름으로 보게 해 줍니다. 단순한 그림이지만, 관광객과 지역과 산업이 얼마나 촘촘히 엮여 있는지 보여 주어 지금도 관광학 입문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모형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다음 여행에서 목적지뿐 아니라 떠나는 곳과 거쳐 가는 길까지 함께 바라보는 것, 그것이 더 깊이 있는 여행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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