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을 떼고 파는 가게, 면세점(Duty-Free Shop)
외교관이나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부모를 따라 몇 년마다 나라를 옮겨 다니는 학생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나라마다 교과서와 시험이 다르니, 고등학교를 어디서 마치든 대학에 들어갈 때 성적을 제대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맞춰야 하는 셈입니다. 이런 고민에서 출발해, 세계 어느 대학에서나 통하는 하나의 교육과정과 시험을 만든 것이 바로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입니다.
국제 바칼로레아란 쉽게 말해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재단이 만든 국제 교육과정과 그 졸업 자격’을 의미합니다. 흔히 줄여서 IB라고 부르며, 1968년에 세워져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의 공립과 사립학교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국제 바칼로레아가 생겨난 배경과 대표 과정인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짜임, 점수를 매기는 방식, 그리고 우리나라 공교육에 들어온 과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국경을 넘는 교육과정, 국제 바칼로레아
국제 바칼로레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국제 바칼로레아는 국제학교 교사들의 현실적인 고민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러 나라 학생이 한 교실에 모이는 학교에서는 어느 한 나라의 시험만으로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1) 제네바 국제학교의 실험
1960년대 중반 제네바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Geneva)의 교육자들이 중심이 되어 국제학교들이 함께 쓸 교육과정과 시험을 준비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임이 자라나 1968년 제네바에 국제 바칼로레아 사무국이 문을 열었고, 지금도 본부는 그곳에 있습니다.
(2) 열두 학교에서 시작된 시범 운영
첫 사무총장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육학자 알렉 피터슨(Alec Peterson)이었습니다. 1968년 열두 나라의 열두 학교가 디플로마 과정에 참여했고, 1975년까지 이어진 시범 기간을 거쳐 정식 과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3) 네 가지 과정으로 넓어지다
처음에는 고등학생 과정만 있었지만 1994년 중학생 과정, 1997년 초등학생 과정이 정식으로 생겼고, 2012년에는 직업 진로와 연결된 과정이 더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3세부터 19세까지를 아우르는 네 과정을 운영합니다.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짜임

흔히 IB라고 하면 16세에서 19세 학생이 2년 동안 이수하는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가리킵니다. 이 과정은 여러 과목을 넓게 배우면서도 몇 과목은 깊이 파고들도록 짜여 있습니다.
(1) 여섯 개 과목군
학생은 언어와 문학, 외국어, 개인과 사회, 과학, 수학, 예술의 여섯 과목군에서 대개 한 과목씩 고릅니다. 예술 대신 다른 과목군에서 한 과목을 더 택할 수도 있습니다.
(2) 심화와 기본
여섯 과목 가운데 서너 과목은 깊이 배우는 심화 수준으로, 나머지는 기본 수준으로 듣습니다. 자신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심화로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세 가지 핵심 요소
과목 공부 말고도 모든 학생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통 과정이 있습니다.
- 지식론(Theory of Knowledge):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때 그 근거가 무엇인지 따져 보는 수업입니다.
- 소논문(Extended Essay): 스스로 주제를 정해 조사하고 영어 기준 4,000단어 이내의 논문을 씁니다.
- 창의·활동·봉사(Creativity, Activity, Service): 교실 밖에서 예술 활동, 운동, 봉사를 꾸준히 실천합니다.
점수는 어떻게 매길까?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평가는 한 번의 시험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학교 안에서 하는 평가와 학교 밖에서 치르는 평가를 함께 반영합니다.
(1) 내부 평가와 외부 평가
과목마다 실험 보고서, 발표, 탐구 과제 같은 내부 평가를 담당 교사가 먼저 채점하고, 외부 심사자가 그 점수를 다시 확인합니다. 과정 끝에는 전 세계에서 같은 시기에 치르는 필기시험이 이어집니다.
(2) 45점 만점
여섯 과목은 각각 1점부터 7점까지 받아 최대 42점이 되고, 지식론과 소논문의 결과에 따라 최대 3점이 더해져 만점은 45점입니다.

(3) 졸업장을 받는 조건
졸업장을 받으려면 총점이 24점 이상이어야 하고, 창의·활동·봉사를 모두 마쳐야 합니다. 점수가 넘더라도 어느 과목에서 1점을 받거나 핵심 요소를 마치지 못하면 졸업장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국제 바칼로레아

국제 바칼로레아는 오랫동안 외국인학교와 국제학교의 과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 공교육의 수업과 평가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 속에서 우리나라 공립학교에도 들어왔습니다.
(1) 한국어로 치르는 시험
2019년 제주와 대구 교육청은 국제 바칼로레아 본부와 함께 디플로마 과정의 일부 과목과 핵심 요소를 한국어로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이 2013년 정부 차원에서 일본어 과정을 도입한 데 이어 나온 시도였습니다.
(2) 공립학교의 변화
제주의 표선고등학교처럼 읍면 지역의 일반고가 국제 바칼로레아 학교가 되면서, 이 과정은 일부 학생만의 특별한 교육에서 지역 공교육의 한 선택지로 넓어졌습니다.
(3) 남은 과제
논술과 토론 중심의 수업과 평가에는 숙련된 교사와 채점 체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사 연수와 비용, 대학 입시와의 연결 같은 문제를 함께 풀어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국제 바칼로레아는 나라를 옮겨 다니는 학생들의 졸업장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무엇을 외웠는지보다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하는지를 묻는 교육의 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여러 과목을 넓게 배우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글로 풀어내는 경험은 어느 나라에서 공부하든 쓸모가 있습니다.
정답을 고르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근거와 함께 말하는 연습, 그것이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배움으로 가는 교육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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