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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제품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정작 회사 전체 매출은 생각만큼 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알고 보니 새 제품을 산 고객 상당수가 원래 그 회사의 다른 제품을 쓰던 사람들이었다면, 회사는 남의 시장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자기 시장을 옮겨 담은 셈입니다.
이처럼 한 기업이 내놓은 새 제품이나 서비스가 같은 기업의 기존 제품 판매를 갉아먹는 현상을 ‘카니벌리제이션(Cannibalization)’이라고 부르며, 우리말로는 ‘자기 시장 잠식’이라고도 합니다.
본 자료에서는 카니벌리제이션이 무엇인지, 왜 일어나는지, 실제 기업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겪고 활용했는지, 그리고 이를 다룰 때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카니벌리제이션의 이해
내가 나를 먹는 시장


카니벌리제이션은 ‘동족을 잡아먹는다’는 뜻의 영어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경쟁 회사가 아니라 자기 회사의 제품끼리 같은 고객을 두고 다투다가, 한쪽의 판매가 다른 쪽의 판매를 줄이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한 음료 회사가 기존 콜라 옆에 제로 칼로리 콜라를 내놓았다고 해 보겠습니다. 새 제품이 많이 팔려도 그중 상당 부분이 원래 일반 콜라를 마시던 고객의 이동이라면, 전체 판매량은 거의 늘지 않고 매출의 자리만 바뀝니다.
그래서 기업은 신제품의 판매량만 보지 않고, 그 판매가 새 고객에게서 왔는지 기존 제품에서 옮겨 왔는지를 함께 따집니다. 옮겨 온 비율이 높을수록 카니벌리제이션이 크다고 봅니다.
이 현상은 제조업에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은행이 모바일 앱을 키우면 지점 창구를 찾는 손님이 줄고, 출판사가 전자책을 내면 종이책 판매가 일부 줄어드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같은 회사 안에서 고객이 한 경로에서 다른 경로로 옮겨 가는 모든 경우에 이 개념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자기 시장을 잠식하게 될까

카니벌리제이션은 대개 제품끼리 겹치는 부분이 많을 때 일어납니다. 대표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비슷한 고객층
새 제품과 기존 제품이 같은 사람을 겨냥하면, 고객은 둘 중 하나만 고르게 됩니다.
(2) 비슷한 쓰임새
같은 필요를 채워 주는 제품이라면, 하나를 사면 다른 하나를 살 이유가 줄어듭니다.
(3) 가까운 가격과 판매 경로
가격대가 비슷하고 같은 매장이나 같은 앱에서 나란히 팔리면, 고객은 쉽게 갈아탑니다.
매장을 늘릴 때도 같은 일이 생깁니다. 한 브랜드가 기존 지점 바로 근처에 새 지점을 열면, 새 지점의 손님 상당수가 원래 기존 지점에 오던 손님일 수 있습니다.
보급형 제품도 비슷한 결과를 낳습니다. 저렴한 보급형 제품을 내놓으면 원래 비싼 고급형을 사려던 고객까지 보급형으로 내려와, 판매 대수는 늘어도 이익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겪은 카니벌리제이션

애플은 카니벌리제이션을 감수한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아이팟이 큰 성공을 거두던 시기에 음악 재생 기능을 갖춘 아이폰을 내놓았고, 이후 아이팟 판매는 줄었습니다. 그러나 회사 전체로 보면 훨씬 더 큰 시장을 얻었습니다.
반대로 코닥은 1975년에 회사 연구원이 디지털카메라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필름 사업을 해칠 수 있다는 걱정 속에 디지털 전환이 늦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결국 다른 회사들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차지했고, 코닥은 2012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습니다.
두 회사의 차이는 잠식을 피하려 했는지, 받아들이고 앞서 나갔는지에 있었습니다. 같은 위험 앞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넷플릭스도 DVD 우편 대여 사업이 잘되던 때에 스트리밍 서비스에 힘을 실었습니다. 기존 사업을 스스로 줄이는 선택이었지만, 시장이 바뀌는 흐름을 먼저 탄 덕분에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카니벌리제이션을 다룰 때 알아 둘 점

카니벌리제이션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내 시장을 잠식하지 않으면 경쟁자가 대신 잠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바뀌는 시기에는 기존 매출을 지키려다 더 큰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은 신제품을 내놓기 전에 고객층, 가격, 판매 경로를 기존 제품과 얼마나 다르게 할지 미리 정합니다. 또 새로 들어온 고객의 비율, 전체 매출과 이익의 변화를 함께 살펴 잠식이 감수할 만한 수준인지 판단합니다.
제품마다 뚜렷한 차이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크기, 기능, 가격 구간을 나누어 고객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고르게 하면, 서로 빼앗기보다 각자의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소형차부터 대형차까지 등급을 나누어 내놓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품 하나의 성적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성장입니다. 기존 제품과 새 제품이 서로 다른 역할을 맡도록 설계하면, 잠식은 줄이고 전체 시장은 넓힐 수 있습니다.
결국 카니벌리제이션은 피해야 할 실수라기보다 미리 계산하고 관리해야 할 비용에 가깝습니다. 얼마를 잃고 얼마를 얻을지 따져 본 뒤라면, 스스로 시장을 잠식하는 것도 충분히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카니벌리제이션은 새로운 성공이 기존의 성공을 갉아먹는 기업의 딜레마입니다. 이 개념을 알면 신제품 출시나 매장 확장 소식을 볼 때, 판매량 뒤에 숨은 고객의 이동까지 읽어 낼 수 있습니다.
지키는 것과 바꾸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 그것이 변화하는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경영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