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쫓는 텅 빈 물건, 맥거핀(MacGuffin)

늘릴수록 늦어진다, 브룩스의 법칙(Brooks’s Law)
서점에 가면 해마다 수많은 신간이 쏟아져 나오지만, 몇 년 뒤까지 꾸준히 팔리는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반면 수백 년 전에 쓰인 고전은 지금도 서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읽힐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새것이 더 튼튼하고 오래 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오래 버틴 것이 앞으로도 더 오래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오래 살아남은 것일수록 앞으로 남은 수명도 길어진다는 경험칙을 ‘린디 효과(Lindy Effect)’라고 부릅니다. 사람이나 음식처럼 시간이 지나면 낡고 상하는 것과 달리, 책과 생각, 기술처럼 상하지 않는 것은 하루하루 살아남을 때마다 오히려 앞날이 더 길어진다는 생각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린디 효과라는 이름이 생겨난 배경과 이 효과가 들어맞는 대상, 남은 수명을 어림하는 방법과 실제 예측 사례, 그리고 일상에서 활용하는 법과 한계까지 차근차근 정리합니다.
린디 효과의 원리와 활용
이름의 유래와 발전

린디(Lindy)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던 유명한 식당 이름입니다. 이 식당에는 공연을 마친 코미디언들이 밤마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1964년 작가 앨버트 골드먼(Albert Goldman)은 잡지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에 실은 글에서, 이곳 코미디언들 사이에 오가던 경험칙을 ‘린디의 법칙(Lindy’s Law)’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습니다. 텔레비전에 얼마나 나왔는지를 보면 그 코미디언의 경력이 얼마나 이어질지 가늠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수학의 언어로 다시 정리한 사람은 프랙털 이론으로 유명한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it Mandelbrot)입니다. 그는 1982년 책 「자연의 프랙털 기하학(The Fractal Geometry of Nature)」에서 코미디언이 앞으로 활동할 기간은 지금까지 활동한 기간에 비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뜻을 만든 사람은 작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입니다. 그는 2012년 책 「안티프래질(Antifragile)」에서 린디 효과를 사람의 경력에서 책, 생각, 기술처럼 상하지 않는 모든 것으로 넓혔습니다. 탈레브는 40년 동안 꾸준히 찍혀 나온 책은 앞으로 40년쯤 더 찍혀 나올 것으로 기대할 수 있고, 거기서 10년을 더 버티면 기대할 수 있는 남은 기간도 그만큼 늘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상하지 않는 것에만 맞는 이유

린디 효과가 모든 대상에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나 동물, 음식이나 기계 부품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닳고 낡는 것은 오래될수록 남은 수명이 짧아집니다. 아흔 살 노인이 열 살 아이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린디 효과가 들어맞는 대상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 스스로 닳지 않는다
생각이나 이야기, 노래, 제도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낡지 않습니다. 사라진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2) 계속 쓰이며 다시 만들어진다
책은 새로 찍혀 나오고, 요리법은 대를 이어 전해지며, 도구는 새로 만들어집니다. 쓰는 사람이 있는 한 몸은 바뀌어도 존재는 이어집니다.
(3) 오래 버틴 것 자체가 시험을 통과한 증거다
긴 세월 동안 유행과 전쟁, 기술의 변화를 견뎌 냈다는 것은 그만큼 쓸모와 생명력이 검증되었다는 뜻입니다. 시간은 약한 것을 먼저 걸러 내는 체 역할을 합니다.
남은 수명을 어림하는 방법

린디 효과로 어림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어떤 대상이 지금까지 존재해 온 기간을 보고, 앞으로도 대략 그만큼은 더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날짜를 맞히는 계산이 아니라, 무엇이 더 오래 갈지 비교하는 눈대중에 가깝습니다.
- 출간 1년 된 책과 100년 된 고전: 100년을 버틴 고전이 앞으로도 더 오래 읽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 바퀴, 의자, 숟가락: 수천 년 동안 모양이 크게 바뀌지 않은 물건은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 갓 나온 기술과 오래된 기술: 몇 달 된 서비스보다 수십 년 동안 쓰인 기술이 다음 10년을 버틸 가능성이 큽니다.
비슷한 생각으로 실제 예측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천체물리학자 리처드 고트(J. Richard Gott)는 1969년 베를린 장벽을 찾았을 때, 지은 지 8년 된 장벽이 앞으로 약 2년 8개월에서 24년 사이에 무너질 가능성이 50%라고 어림했습니다. 장벽은 그로부터 20년 뒤인 1989년에 무너졌습니다. 고트는 1993년 이 방법을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일상에서 쓰는 법과 한계

린디 효과는 쏟아지는 새 정보 가운데 무엇에 시간을 들일지 고를 때 쓸모 있는 기준이 됩니다. 새로 나온 책보다 오래 읽혀 온 책을, 갑자기 뜬 유행보다 오래 지켜 온 습관을 먼저 살펴보는 식입니다. 새 기술이나 도구를 고를 때도 얼마나 오래 쓰여 왔는지를 함께 따져 보면 금방 사라질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린디 효과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습니다.
- 확률일 뿐 예언이 아니다(Probability): 오래된 것이 더 오래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반드시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 큰 변화 앞에서는 약하다(Disruption): 수십 년 쓰인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난 것처럼, 환경이 크게 바뀌면 오래된 것도 빠르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 살아남은 것만 보인다(Survivorship Bias): 우리 눈에는 오래 버틴 것만 보이고, 일찍 사라진 수많은 것은 보이지 않아 효과가 실제보다 커 보일 수 있습니다.
- 새것을 무조건 밀어내는 기준이 아니다(Novelty): 모든 고전도 처음에는 신간이었습니다. 새것은 오래 남을 기회를 아직 얻지 못했을 뿐입니다.
결국 린디 효과는 시간이 가장 믿을 만한 심사위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새것의 반짝임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오랜 세월을 견뎌 낸 것의 무게를 먼저 헤아려 보는 것, 그것이 오래 남을 것을 알아보는 지혜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