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멈추고 고를 것인가, 비서 문제(Secretary Problem)

이익을 깎는 다섯 방향의 압력, 포터의 5 포스(Porter’s Five Forces)
물을 냄비에 넣고 끓이면 물은 액체로 남아 있다가 100°C에 이르면 수증기가 되어 날아갑니다. 압력솥처럼 압력을 높이면 끓는점이 올라가 물이 더 뜨거워져도 액체로 버팁니다. 반대로 높은 산에서는 압력이 낮아 물이 100°C보다 낮은 온도에서 끓기 때문에 밥이 설익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온도와 압력을 끝없이 함께 올리면 물은 어떻게 될까요?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액체와 기체를 나누던 경계가 사라지고, 둘 중 어느 쪽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가 나타납니다. 이처럼 임계점보다 높은 온도와 압력에 놓여 액체와 기체의 구분이 없어진 물질을 ‘초임계 유체(Supercritical Fluid)’라고 합니다. 기체처럼 퍼지면서도 액체처럼 다른 물질을 잘 녹이는 독특한 성질 덕분에 커피 공장부터 발전소까지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초임계 유체가 생기는 임계점의 의미부터 기체와 액체 사이에 놓인 성질, 산업에서 쓰이는 사례, 그리고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초임계 유체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액체도 기체도 아닌 상태, 초임계 유체
임계점이란 무엇인가

초임계 유체를 이해하려면 먼저 임계점(Critical Point)이라는 특별한 온도와 압력을 알아야 합니다.
(1) 끓는점 곡선의 끝
압력을 높일수록 물질의 끓는점은 올라갑니다. 압력과 온도에 따라 액체와 기체가 나뉘는 경계를 이어 그리면 하나의 곡선이 되는데, 이 곡선은 끝없이 이어지지 않고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춥니다. 이 끝점이 바로 임계점입니다.
(2)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임계점에 가까워질수록 액체는 점점 묽어지고 기체는 점점 빽빽해집니다. 마침내 임계점에 이르면 둘의 밀도가 같아져 액체와 기체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하나의 유체만 남습니다. 임계 온도보다 뜨거운 기체는 아무리 눌러도 액체로 바뀌지 않습니다.
(3) 물질마다 다른 임계점
물의 임계점은 약 374°C, 약 22MPa로 대기압의 200배가 넘습니다. 반면 이산화탄소는 약 31°C, 약 7.4MPa에서 임계점에 이르러 비교적 쉽게 초임계 상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산화탄소는 독성이 낮고 불에 타지 않으며 값도 싸서, 산업에서 가장 흔히 쓰는 초임계 용매가 되었습니다.
기체와 액체 사이의 성질

초임계 유체는 기체와 액체의 장점을 함께 지니고 있어 화학자들이 특히 관심을 두는 물질입니다.
(1) 기체처럼 잘 스며드는 성질
초임계 유체는 끈적임이 기체에 가까울 만큼 낮고, 분자가 빠르게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구멍이 많은 고체 속으로도 기체처럼 쉽게 스며들어 구석구석까지 닿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원료 깊숙이 숨은 성분도 짧은 시간 안에 뽑아낼 수 있습니다.
(2) 액체처럼 잘 녹이는 성질
밀도는 액체에 가까울 만큼 높아질 수 있어 다른 물질을 녹이는 힘이 기체보다 훨씬 강합니다. 또 액체와 기체의 경계면이 없기 때문에 표면 장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3) 손잡이처럼 조절되는 성질
임계점 근처에서는 압력이나 온도를 조금만 바꿔도 밀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밀도가 바뀌면 녹이는 힘도 함께 바뀌므로, 압력을 조절해 원하는 성분만 골라 녹이거나 다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같은 용매 하나로 여러 성분을 차례로 나누어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초임계 유체가 쓰이는 곳

이런 성질 덕분에 초임계 유체는 해로운 유기 용매를 대신하는 깨끗한 용매로 널리 쓰입니다.
- 디카페인 커피(Decaffeinated Coffee): 초임계 이산화탄소로 볶기 전의 생두에서 카페인을 뽑아냅니다. 압력을 낮추면 이산화탄소가 기체로 날아가 용매가 거의 남지 않습니다.
- 맥주와 향료(Hops and Fragrance Extraction): 맥주에 쓰는 홉의 성분이나 꽃의 향, 식물의 기름을 뽑아내는 데에도 같은 방법이 쓰입니다.
- 초임계 건조(Supercritical Drying): 표면 장력 없이 용매를 빼낼 수 있어, 아주 가볍고 구멍이 많은 에어로젤이나 섬세한 생물 표본을 망가뜨리지 않고 말릴 수 있습니다.
- 초임계 유체 크로마토그래피(Supercritical Fluid Chromatography): 혼합물을 성분별로 나누는 분석 방법으로, 열에 약한 물질도 다룰 수 있어 거울상처럼 닮은 의약품 분자를 가려내는 데 쓰입니다.
- 초임계 발전(Supercritical Power Generation): 물을 초임계 상태로 뜨겁게 만들어 터빈을 돌리면, 일반 발전 방식보다 열효율을 약 39%에서 약 45%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자연 속의 초임계 유체

초임계 유체는 실험실과 공장에만 있는 물질이 아니라,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1) 대포 속에서 처음 발견된 상태
1822년 프랑스의 샤를 카냐르 드 라 투르(Charles Cagniard de la Tour)는 액체와 돌 구슬을 넣고 밀봉한 대포 포신을 데우며 구슬이 구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느 온도에서 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알아채면서, 액체와 기체의 구분이 사라지는 임계점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2) 깊은 바다의 열수 분출공
바다 밑 열수 분출공에서는 최대 약 400°C의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옵니다. 깊은 바다의 높은 압력 아래에서 이 물의 일부는 초임계 상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금성의 뜨거운 대기
금성의 대기는 대부분 이산화탄소이며, 표면 온도는 약 462°C, 압력은 지구의 약 90배에 이릅니다. 이산화탄소의 임계점을 훌쩍 넘는 환경이라 금성 표면을 덮은 대기는 초임계 유체 상태입니다.
초임계 유체는 고체, 액체, 기체라는 익숙한 구분이 언제나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온도와 압력이라는 두 손잡이만으로 물질의 성질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은 더 깨끗한 화학 공정을 찾는 길에도 큰 힌트가 되고 있습니다.
경계 너머의 상태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물질을 새롭게 다루는 화학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