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나를 먹는 시장, 카니벌리제이션(Cannibalization)

떠나고 싶은 마음과 부르는 곳, 푸시-풀 이론(Push-Pull Theory)
마을 한가운데 누구나 소를 풀어 먹일 수 있는 넓은 풀밭이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를 한 마리 더 풀면 그 이익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되지만, 풀이 줄어드는 손해는 마을 사람 모두가 나누어 집니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소를 한 마리 더 풀고 싶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자원을 각자 자기 이익만 따라 쓰다가 결국 모두가 쓸 수 없게 망가뜨리는 현상을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고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공유지의 비극이 무엇인지, 왜 일어나는지, 실제로 어떤 곳에서 나타났는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이 논의되어 왔는지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의 이해
모두의 풀밭이 사라지는 이야기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은 미국의 생물학자 개릿 하딘이 1968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글에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딘은 1833년 영국의 윌리엄 포스터 로이드가 소개한 공동 목초지 이야기를 빌려 이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이야기 속 목동들은 모두 합리적으로 행동합니다. 소 한 마리를 더 늘리면 그 소를 팔아 얻는 이익은 온전히 자기 몫이고, 풀밭이 상하는 비용은 여러 목동이 나누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계속 소를 늘리고, 마침내 풀밭은 아무도 쓸 수 없는 맨땅이 됩니다.
여기서 ‘비극’은 누군가가 악해서 생기는 불행을 뜻하지 않습니다. 각자 똑똑하게 계산한 선택이 모여 피할 수 없이 나쁜 결과로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이런 생각은 오래전에도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 가진 것일수록 가장 적은 관심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왜 함께 쓰는 자원은 쉽게 망가질까

경제학에서는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기 쉬운 자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막기 어려운 이용
누구나 들어와 쓸 수 있어서, 특정한 사람의 이용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2) 줄어드는 자원
한 사람이 쓴 만큼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양이 줄어듭니다.
(3) 흩어지는 비용
이익은 쓴 사람에게 돌아가지만, 손해는 모두에게 조금씩 나누어집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자원을 ‘공유 자원(Common-Pool Resources)’이라고 부릅니다. 바다의 물고기, 지하수, 깨끗한 공기가 대표적입니다.
반대로 집 앞마당처럼 주인이 분명한 땅에서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인이 풀이 자라는 속도를 살펴 소의 수를 조절하고, 망가졌을 때의 손해도 오롯이 자기가 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제는 자원 자체가 아니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용 방식에 있습니다.
여기에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더해집니다. 내가 아껴 써도 다른 사람이 마구 쓰면 나만 손해를 본다는 계산이 서기 때문에, 서로 먼저 더 많이 가져가려는 경쟁이 벌어집니다.
우리 주변의 공유지의 비극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바다입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앞바다의 그랜드뱅크스는 오랫동안 대구가 넘쳐나는 어장이었지만, 대형 어선들이 앞다투어 잡아들이면서 대구 수가 크게 줄었습니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1992년 대구잡이를 멈추는 조치를 내렸고, 이 일로 많은 어민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대기 오염과 기후 변화도 같은 구조를 보입니다. 공장과 자동차가 내뿜는 오염 물질의 비용은 지구 전체가 함께 떠안기 때문에, 각 나라와 기업은 배출을 스스로 줄이려는 동기가 약해집니다.
일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공용 회의실을 쓰고 정리하지 않거나, 함께 쓰는 냉장고에 음식을 오래 넣어 두는 일, 공원에 쓰레기를 두고 가는 일도 작은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공용 와이파이로 큰 파일을 내려받으면 모두의 속도가 느려지고,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에 광고 글이 넘치면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워집니다. 함께 쓰는 공간이라면 어디서든 같은 원리가 작동하는 셈입니다.
비극을 막는 방법

하딘은 이 문제를 풀려면 정부가 이용을 규제하거나, 자원을 나누어 각자의 재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나라가 어획량 한도를 정하거나, 오염 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팔게 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길도 있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1990년 『공유의 비극을 넘어(Governing the Commons)』에서, 세계 여러 지역의 주민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목초지와 숲, 어장과 지하수를 오랫동안 잘 지켜 온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오스트롬은 이 연구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으며, 여성으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오스트롬이 찾은 성공한 공동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 분명한 경계(Clearly Defined Boundaries): 누가 자원을 쓸 수 있는지 정해져 있습니다.
- 함께 만든 규칙(Collective-Choice Arrangements): 자원을 쓰는 사람들이 규칙을 정하는 데 참여합니다.
- 서로 살피는 감시(Monitoring): 규칙을 잘 지키는지 구성원이 함께 살핍니다.
- 단계적인 제재(Graduated Sanctions): 규칙을 어기면 가벼운 벌부터 차례로 무거워집니다.
결국 핵심은 자원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 믿음과 약속이 있느냐입니다. 서로를 믿을 수 있으면 사람들은 당장의 이익보다 오래 함께 쓰는 길을 고릅니다.
공유지의 비극은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두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을 알면 바다와 숲, 공기처럼 함께 쓰는 자원을 둘러싼 갈등과 정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이익과 모두의 이익을 함께 헤아리는 것, 그것이 함께 쓰는 자원을 오래 지키는 지혜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