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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세어 읽는 통계, 아이소타입(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 Picture Education)
아이가 처음 집을 떠나 하루의 몇 시간을 보내는 곳은 대개 유치원입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블록을 쌓고, 화분에 물을 주며 친구와 다투고 화해하는 법을 익힙니다. 글자나 셈보다 놀이가 먼저인 이 풍경은 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위한 학교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20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 어린 시절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으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놀이 자체를 배움으로 보고, 아이를 정원의 식물처럼 키우는 곳을 처음 만든 사람이 있었고, 그가 붙인 이름이 바로 ‘유치원(Kindergarten)’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독일의 교육자 프뢰벨이 첫 유치원을 연 이야기부터 그가 만든 놀잇감 은물, 금지령을 딛고 세계로 퍼진 과정, 그리고 우리나라 유치원의 출발과 오늘날의 모습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놀이로 배우는 아이들의 정원
프뢰벨과 첫 유치원

유치원이라는 말과 제도를 만든 사람은 독일의 교육자 프리드리히 프뢰벨(Friedrich Fröbel)입니다. 그는 스위스의 교육 개혁가 페스탈로치에게 배운 뒤, 어린아이의 교육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1) 숲과 결정에서 얻은 생각
어려서 숲 관리인의 견습생으로 일했던 프뢰벨은 자연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광물 박물관에서 결정을 정리하던 시절에는 돌 하나에도 자라나는 질서가 있다고 느꼈고, 사람도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자란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2) 1837년의 놀이 학교
1837년 프뢰벨은 독일 바트블랑켄부르크에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이와 활동 학교’를 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텃밭을 가꾸고, 스스로 고른 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3) 아이들의 정원이라는 이름
1840년 6월 28일, 그는 이 학교의 이름을 ‘킨더가르텐’으로 바꾸었습니다. 독일어로 아이(Kind)와 정원(Garten)을 합친 말로, 아이는 정원의 식물처럼 돌봄 속에서 스스로 자란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놀잇감으로 가르친 은물

프뢰벨은 아이가 손으로 만지며 세상의 모양과 질서를 깨닫도록 특별한 놀잇감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놀이 선물(Spielgabe)’이라 불렀고, 우리말로는 은물(恩物)이라고 옮깁니다. 은물은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차례대로 건네도록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 제1 은물(Gift 1): 아기 손에 쥐어지는 털실 공으로, 굴리고 숨기고 다시 찾으며 색과 움직임을 익힙니다.
- 제2 은물(Gift 2): 나무로 깎은 공과 정육면체로, 굴러가는 것과 제자리에 서는 것의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 제3 은물(Gift 3): 정육면체 하나를 작은 정육면체 8개로 나눈 것으로, 쪼개고 다시 맞추며 부분과 전체를 배웁니다.
- 제4 은물(Gift 4): 겉보기엔 제3 은물과 같지만 길쭉한 판 8개로 나뉘어, 쌓을 수 있는 모양이 훨씬 다양해집니다.
이 블록을 가지고 논 아이 가운데에는 훗날 건축가가 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도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만진 단풍나무 블록이 지금도 손끝에 남아 있다며 건축의 기하학을 유치원 놀이에서 배웠다고 회고했습니다.
금지령을 딛고 세계로

유치원은 독일 안에서 순탄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나라 밖으로 밀려나면서 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1) 프로이센의 유치원 금지령
1848년 혁명을 진압한 프로이센 정부는 새로운 사상을 경계했습니다. 1851년 프뢰벨식 유치원이 위험한 사상을 퍼뜨린다며 금지했고, 이 조치는 다른 독일 지역으로도 번졌습니다. 프뢰벨은 이듬해인 1852년 세상을 떠났고, 금지령은 그의 제자 마렌홀츠뷜로(Marenholtz-Bülow) 남작 부인 등의 노력 끝에 1860년에야 풀렸습니다.
(2) 바다를 건넌 교사들
금지령 탓에 프뢰벨에게 배운 교사들이 여러 나라로 흩어졌습니다. 1856년 마르가레테 슈르츠(Margarethe Schurz)는 미국 위스콘신주 워터타운에 독일어로 가르치는 미국 첫 유치원을 열었습니다.
(3) 학교 제도 안으로
1860년에는 엘리자베스 피버디(Elizabeth Peabody)가 보스턴에 영어로 가르치는 첫 유치원을 세웠고, 1873년에는 세인트루이스에 공공 재정으로 운영하는 첫 유치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유치원은 점차 정식 교육 제도의 첫 칸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치원과 오늘

유치원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도 들어왔습니다. 그 출발에는 식민지 시대의 그늘과 새로운 교육에 대한 기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1) 경성유치원
1913년 서울에 조선인 아이를 위한 경성유치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친일 관료와 부유층이 중심이 되어 세운 곳으로, 수업을 일본어로 하며 일본식 생활 예절을 가르쳤습니다.
(2) 이화유치원
1914년 1월에는 미국인 교육자 샬럿 브라운리(Charlotte Brownlee)가 서울 정동에서 아이 16명으로 이화유치원을 열었습니다. 이듬해 유치원 교사를 기르는 과정도 두어, 우리나라 유아 교육의 뿌리로 꼽힙니다.
(3) 오늘날의 유치원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만 3세부터 5세까지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닙니다. 하루 대부분을 바깥 자연에서 보내는 숲 유치원처럼, 놀이와 자연을 중시한 프뢰벨의 생각을 새롭게 살리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치원은 어린 시절을 학교에 가기 전의 빈 시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배움의 시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블록을 쌓고 무너뜨리는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세상의 질서와 자기 자신을 함께 발견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정원을 가꾸어 주는 것, 그것이 배움을 이해하는 교육학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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