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게가 다른 쌍둥이 원자, 동위원소(Isotope)
집을 팔려고 부동산 중개인에게 일을 맡겼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집주인은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지만, 중개인은 값을 조금 더 올려 받아도 손에 쥐는 수수료는 크게 늘지 않습니다. 그러니 몇 주를 더 기다려 비싸게 파는 것보다 적당한 값에 빨리 거래를 끝내는 편이 중개인에게는 더 이득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일을 맡긴 사람과 맡은 사람의 이해가 어긋나면서 생기는 갈등을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고 합니다. 주주와 경영자, 회사와 직원, 국민과 정치인처럼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는 관계라면 어디서나 나타나며, 줄여서 대리인 문제라고도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주인-대리인 문제의 뜻과 생겨나는 까닭부터 기업에서 나타나는 모습, 이 문제가 치르게 하는 비용, 그리고 두 사람의 이해를 한 방향으로 묶는 방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맡긴 사람과 맡은 사람의 엇갈림, 주인-대리인 문제의 원리와 해법
일을 맡기는 순간 생기는 틈

주인-대리인 관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대신 일을 해 달라고 맡길 때 생겨납니다.
- 주인(Principal): 일을 맡기고 그 결과로 이익이나 손해를 보는 쪽입니다.
- 대리인(Agent): 주인을 대신해 실제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쪽입니다.
-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 자기 이익을 앞세워 생기는 갈등입니다.
문제가 생기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릅니다. 둘째, 대리인이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를 주인이 다 알 수 없습니다. 이를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이라고 합니다. 원하는 것이 같거나 모든 행동이 훤히 보인다면 대리인 문제는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이 생각은 1970년대에 경제학의 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티븐 로스(Stephen Ross)는 입맛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이스크림 맛을 대신 골라 주는 상황에 빗대어 이 어려움을 설명했다고 전해집니다. 남의 일을 대신할 때는 아무리 성실해도 그 사람의 속마음과 내 판단 사이에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인 없는 회사의 고민

이 문제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곳은 주식회사입니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지만, 실제로 회사를 움직이는 사람은 경영자입니다.
(1) 오래된 걱정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1776년 『국부론』에서, 주식회사의 경영자들은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을 관리하기 때문에 자기 돈을 다룰 때만큼 조심스럽게 살피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2) 소유와 경영의 분리
1932년 미국의 법학자 아돌프 벌(Adolf Berle)과 경제학자 가디너 민스(Gardiner Means)는 대기업의 주식이 수많은 사람에게 흩어지면서 회사를 가진 사람과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갈라졌다고 분석했습니다.
(3) 경영자의 다른 셈법
경영자는 회사의 이익보다 자기 자리나 명성,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 데 더 마음이 갈 수 있습니다. 화려한 사무실이나 무리한 인수합병이 그런 예로 자주 꼽힙니다. 회사가 커지면 경영자의 영향력과 보수도 함께 커지기 쉬워서,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이 적은 사업이라도 몸집을 불리는 쪽을 고를 수 있습니다.
엇갈림이 치르게 하는 값

1976년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젠슨(Michael Jensen)과 윌리엄 메클링(William Meckling)은 이 문제를 이론으로 정리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오늘날 대리인 이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연구로 꼽힙니다. 이들은 대리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손실을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이라 부르고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감시 비용
주인이 대리인을 지켜보는 데 드는 돈입니다. 외부 감사나 이사회 운영이 여기에 속합니다.
(2) 보증 비용
대리인이 스스로 믿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쓰는 돈입니다. 실적 보고서를 꼼꼼히 공개하는 일이 그 예입니다.
(3) 잔여 손실
감시와 보증을 다 해도 끝내 남는 손해입니다. 대리인의 판단이 주인이 직접 했을 때와 달라서 생기는 차이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는 부동산 중개인이 자기 집을 팔 때 고객의 집보다 약 3.7% 높은 값을 받는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자기 일일 때는 더 오래 기다리며 더 좋은 값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같은 방향을 보게 하는 방법

대리인 문제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지만, 대리인이 주인과 같은 쪽을 바라보게 만드는 방법은 여럿 있습니다.
(1) 성과와 보상 잇기
판매 수수료, 성과급, 스톡옵션(Stock Option)처럼 결과가 좋을수록 대리인의 몫도 커지게 하면 두 사람의 이익이 가까워집니다.
(2) 지켜보는 장치 두기
사외이사와 외부 감사, 투명한 공시는 대리인의 행동을 주인이 볼 수 있게 해 정보의 틈을 줄입니다.
(3) 지나친 보상의 함정
보상을 숫자 하나에만 묶으면 대리인은 그 숫자만 좇습니다. 단기 실적에 매달리다 회사의 앞날을 해치는 일이 생기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여러 지표를 함께 보고 보상을 몇 해에 나누어 주는 방식이 함께 쓰입니다.
이렇게 정보가 고르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계약이 가장 좋은지를 연구한 올리버 하트(Oliver Hart)와 벵트 홀름스트룀(Bengt Holmström)은 201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누군가를 믿고 일을 맡기는 순간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틈을 보여 줍니다. 대리인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바라는 것과 보이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일을 맡길 때 상대의 선의만 믿기보다 서로의 이익이 같은 곳을 향하도록 길을 내는 일, 그것이 건강한 조직과 신뢰를 만드는 경영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