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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카메라는 화면을 한 번 누르기만 하면 초점과 밝기가 알아서 맞춰집니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직접 계산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 계산을 기계가 대신합니다. 그렇다면 사진을 찍는 일에 들어 있던 복잡함은 정말 사라진 것일까요? 이 질문에 ‘복잡함은 없어지지 않고 자리를 옮길 뿐’이라고 답하는 원칙이 바로 ‘테슬러의 법칙(Tesler’s Law of Conservation of Complexity)’입니다.
테슬러의 법칙이란 쉽게 말해 ‘모든 시스템에는 더 줄일 수 없는 복잡함이 있으며, 남는 문제는 그것을 누가 떠안느냐’라는 원칙을 의미합니다.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Xerox PARC)와 애플(Apple)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다듬은 컴퓨터 과학자 래리 테슬러(Larry Tesler)가 정리한 원칙으로, ‘복잡성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테슬러의 법칙이 나온 배경과 복잡함을 나누어 맡는 세 주체, 생활 속 예시, 그리고 디자인에 활용할 때의 원칙과 한계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테슬러의 법칙, 복잡함의 자리를 정하는 디자인
테슬러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래리 테슬러는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사용자가 특정 모드에 갇히지 않는 ‘모드 없는(modeless)’ 편집 방식을 연구했고, 1980년 애플로 옮겨 리사(Lisa) 컴퓨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오늘날 누구나 쓰는 잘라내기·복사·붙여넣기 방식을 널리 퍼뜨린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테슬러는 회고 글에서, 잘라낸 내용을 잠시 보관하는 기능이 개발 부담을 키운다는 반대에 맞서 ‘사용자보다 개발자에게 짐을 지우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주장을 다듬어 1984년 무렵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모든 애플리케이션에는 더는 줄일 수 없는 고유한 복잡함이 있습니다. 남는 질문은 단 하나, 그것을 사용자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플랫폼 개발자 가운데 누가 다룰 것인가입니다.”
법칙 이름에 ‘보존(Conservation)’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에너지가 형태만 바뀔 뿐 사라지지 않듯, 복잡함도 화면에서 감출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물침대에 빗대어 ‘물침대 이론(Waterbed Theory)’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복잡함을 나누어 맡는 세 주체

테슬러의 정리에 따르면 줄일 수 없는 복잡함은 결국 다음 세 주체 가운데 누군가가 맡게 됩니다.
- 사용자(User): 설정을 고르고, 순서를 외우고, 실수를 바로잡는 일을 사용자가 직접 해야 합니다.
- 애플리케이션 개발자(Application Developer):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은 코드를 써서 사용자의 수고를 덜어 줍니다.
- 플랫폼 개발자(Platform Developer): 운영체제나 개발 도구가 공통 기능을 미리 갖추어, 여러 제품이 같은 짐을 나누어 집니다.

테슬러는 이 가운데 사용자에게 짐을 넘기는 선택을 가장 경계했습니다. 디자이너 댄 사퍼(Dan Saffer)의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엔지니어가 일주일만 더 애쓰면 없앨 수 있는 복잡함 때문에 백만 명의 사용자가 날마다 1분씩 허비한다면, 엔지니어의 일을 덜려고 사용자에게 벌을 주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법칙은 고를 것이 많을수록 결정이 느려진다는 힉의 법칙(Hick’s Law)이나, 목표가 멀고 작을수록 누르기 어렵다는 피츠의 법칙(Fitts’s Law)과는 초점이 다릅니다. 두 법칙이 사용자가 겪는 시간을 재는 틀이라면, 테슬러의 법칙은 복잡함을 누구에게 맡길지 정하는 책임의 문제를 다룹니다.
쉬운 예시로 이해하는 복잡함의 이동

복잡함이 옮겨 가는 모습은 우리가 날마다 쓰는 서비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1) 검색창
사용자는 몇 글자만 넣지만, 그 뒤에서는 오타를 고치고 검색어를 추천하며 결과의 순서를 매기는 계산이 이어집니다. 정확한 검색어를 떠올리는 수고를 시스템이 대신 맡은 것입니다.
(2) 주소 입력
우편번호나 도로명 몇 글자만 넣으면 나머지 주소가 채워지는 화면은, 긴 주소를 정확히 적어야 하는 부담을 데이터와 개발 쪽으로 옮긴 결과입니다.
(3) 자동차와 길 안내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은 2010년 저서 『Living with Complexity』에서, 자동차 속 컴퓨터 시스템은 해마다 복잡해지지만 그 숨은 복잡함 덕분에 운전은 더 단순하고 안전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좋은 길을 계산하는 일도 이제는 운전자가 아니라 내비게이션이 맡습니다.
세 예시 모두 사용자의 일은 가벼워졌지만, 그만큼 만드는 쪽의 설계와 계산은 무거워졌습니다. 복잡함의 총량은 그대로이고, 그 무게를 지는 사람만 바뀐 것입니다.
디자인에서의 활용과 한계

테슬러의 법칙을 디자인에 담으려면 먼저 그 일에서 끝내 줄일 수 없는 복잡함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사용자가 꼭 판단해야 할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기본값과 자동 입력, 단계별 안내로 시스템이 맡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늘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이상적인 사용자를 가정하기보다, 실제 사용자가 막히는 순간에 맞춰 짧은 도움말을 그 자리에 보여 주는 편이 효과적입니다.
다만 복잡함을 모두 숨기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감추면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길이 사라지므로, 처음 쓰는 사람에게는 단계별 안내를, 익숙한 사람에게는 고급 설정을 따로 두는 식으로 나누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브루스 토그나치니(Bruce Tognazzini)는 사람들은 삶의 복잡함이 줄어드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프로그램이 쉬워지면 사용자는 그만큼 더 복잡한 일에 도전한다는 것입니다.
테슬러의 법칙은 단순해 보이는 화면이 복잡함을 없앤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복잡함을 대신 짊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따라서 좋은 디자인은 복잡함을 얼마나 줄였느냐보다 그것을 어디에 두었느냐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져야 할 짐을 만드는 사람이 먼저 짊어지는 것, 그것이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