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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면 강과 호수가 얼어붙고 산과 들이 눈으로 덮입니다. 그런데 아주 먼 옛날, 지구 전체가 이렇게 얼어붙은 적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극지방뿐 아니라 햇볕이 가장 뜨거운 적도 바다까지 두꺼운 얼음으로 덮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 가설입니다.
눈덩이 지구란 쉽게 말해 지구의 표면이 거의 전부 얼음으로 뒤덮여, 액체 상태의 물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가설을 의미합니다. 이 일은 지금으로부터 약 7억 1700만 년 전부터 6억 3500만 년 전 사이, 그리스어로 ‘얼음’과 ‘탄생’을 합쳐 이름 지은 크라이오제니아기(Cryogenian Period)에 벌어졌다고 여겨집니다.
본 자료에서는 눈덩이 지구라는 생각이 등장하게 된 과정부터 지구가 통째로 얼어붙는 원리, 이를 뒷받침하는 암석의 증거, 그리고 얼음 행성이 다시 녹아 생명의 역사로 이어진 과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지구가 통째로 얼어붙었던 시절, 눈덩이 지구
눈덩이 지구라는 생각의 등장

지구 전체가 얼었다는 대담한 생각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수수께끼에서 출발했습니다.
(1) 이상한 자리의 빙하 흔적
19세기 후반부터 스코틀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노르웨이 등 여러 곳에서 아주 오래된 빙하 퇴적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빙하가 바위를 긁고 실어 나른 흔적이 뚜렷했지만, 지금은 따뜻한 지역에서도 이런 흔적이 나와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았습니다.
(2) 적도에 남은 빙하의 증거
1964년 영국의 지질학자 브라이언 할랜드(W. Brian Harland)는 암석에 남은 옛 자기장 기록을 분석해, 이 빙하 퇴적물 가운데 일부가 열대 위도에서 쌓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장 따뜻해야 할 곳에 빙하가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3) 이름이 붙기까지
‘눈덩이 지구’라는 이름은 1992년 미국의 지질학자 조지프 커슈빙크(Joseph Kirschvink)가 처음 붙였습니다. 이후 1998년 폴 호프먼(Paul F. Hoffman)과 동료들이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암석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가설은 널리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지구가 통째로 얼어붙는 원리

지구가 한번 식기 시작하면 추위가 추위를 부르는 연쇄 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1) 햇빛을 되돌려 보내는 얼음
하얀 얼음과 눈은 햇빛을 대부분 우주로 반사합니다. 빛을 반사하는 정도를 ‘반사율(Albedo)’이라고 하는데, 얼음이 넓어질수록 지구가 흡수하는 열이 줄어 더 추워집니다.
(2) 멈추지 않는 되먹임
더 추워지면 얼음이 더 넓어지고, 넓어진 얼음은 다시 햇빛을 더 많이 반사합니다. 1960년대 소련의 기후학자 미하일 부디코(Mikhail Budyko)는 계산을 통해, 얼음이 극지방에서 충분히 멀리 내려오면 이 되먹임이 지구 전체를 얼릴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3) 적도까지 내려온 얼음
여러 모형에 따르면 빙하가 적도에서 위도 25~30도 안쪽까지 내려오면, 그 뒤로는 얼음이 빠르게 적도까지 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대 지역의 빙하 흔적은 지구 전체가 얼었다는 강력한 단서로 여겨집니다.

암석에 남은 얼음 행성의 증거

과학자들은 수억 년 전의 일을 바위 속에 남은 흔적으로 추적합니다.
- 빙하 퇴적물(Glacial Deposits): 크기가 제각각인 돌이 뒤섞인 퇴적층과, 떠다니던 얼음이 녹으며 바닥에 떨어뜨린 ‘낙하석’이 열대 위도의 지층에서 발견됩니다.
- 띠 모양 철광층(Banded Iron Formation): 산화철 층과 규질 암석이 줄무늬처럼 번갈아 쌓인 암석입니다. 얼음이 바다를 덮어 산소가 부족해지면 물속에 녹은 철이 쌓였다가, 얼음이 녹으며 한꺼번에 가라앉은 흔적으로 해석됩니다.
- 덮개 탄산염암(Cap Carbonate): 빙하 퇴적층 바로 위를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 두께로 덮은 석회암이나 백운암입니다. 빙하기가 끝난 직후 바다의 화학 상태가 크게 바뀌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모든 과학자가 이 증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도 부근에 얼지 않은 바다가 띠처럼 남아 있었다는 ‘진창 지구(Slushball Earth)’ 가설처럼, 얼음이 얼마나 완전했는지를 두고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음 행성이 다시 녹은 과정

지구 전체가 얼음에 덮였다면 어떻게 다시 녹을 수 있었는지가 이 가설의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1) 화산이 쌓아 올린 온실가스
얼음 아래에서도 화산은 계속 이산화탄소를 내뿜었습니다. 평소에는 비와 암석의 풍화가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두지만, 땅과 바다가 얼어 있으니 이 과정이 거의 멈춰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에 계속 쌓였습니다.
(2) 수백만 년 만의 해빙
연구자들은 얼음을 녹이려면 이산화탄소가 오늘날의 약 350배, 대기의 약 13%에 이르러야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렇게 쌓이기까지 약 400만 년에서 3000만 년이 걸렸고, 강해진 온실 효과가 마침내 얼음을 녹였다고 봅니다.
(3) 생명의 역사에 남긴 흔적
눈덩이 지구 시기가 끝난 뒤, 지구에는 여러 세포로 이루어진 생물이 점차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마지막 눈덩이 지구가 다세포 생물의 진화를 이끈 계기였을 수 있다고 보며, 지금도 이 관계를 밝히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눈덩이 지구 가설은 지구의 기후가 생각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작은 변화가 되먹임을 거쳐 행성 전체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의 기후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얼어붙은 과거의 지구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오늘의 기후를 이해하는 공부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