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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지난 수십만 년 동안 몹시 추운 빙기와 비교적 따뜻한 간빙기를 여러 번 오갔습니다. 마지막 빙기가 절정이던 약 2만 년 전에는 북아메리카와 북유럽의 넓은 땅이 두꺼운 얼음에 덮여 있었고, 바닷물이 얼음으로 묶이면서 해수면도 지금보다 100m 넘게 낮았습니다.
이런 큰 기후 변화가 왜 되풀이되는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습니다. 지금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궤도와 자전축이 아주 느리게, 그러나 규칙적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 규칙적인 변화는 이를 정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밀란코비치 주기(Milankovitch Cycles)’라고 부릅니다.
본 자료에서는 밀란코비치 주기가 생겨난 배경과 이를 이루는 세 가지 변화, 이 이론을 뒷받침한 바다 밑 증거, 그리고 이론의 한계와 오늘날의 기후를 바라볼 때의 의미까지 차근차근 정리합니다.
밀란코비치 주기의 원리와 의미
이론의 탄생과 여름 햇빛의 열쇠

밀루틴 밀란코비치(Milutin Milanković)는 세르비아의 수학자이자 지구물리학자입니다. 그는 20세기 초, 지구의 궤도와 자전축이 달라질 때 위도마다 받는 햇빛의 양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계산기 없이 손으로 수십 년에 걸쳐 계산했습니다.
궤도의 변화가 빙하기를 부른다는 생각 자체는 그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19세기에 프랑스의 조제프 아데마르(Joseph Adhémar)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크롤(James Croll)이 비슷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밀란코비치는 이 생각을 정밀한 계산으로 다듬었고, 그 결과를 1941년 「일사량의 규범과 빙하기 문제」라는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그가 찾은 열쇠는 겨울의 추위가 아니라 북반구 고위도 지방 여름의 햇빛이었습니다. 북위 65도 부근처럼 땅이 넓은 지역에서 여름 햇빛이 약해지면 겨울에 쌓인 눈이 다 녹지 못하고 남습니다. 이런 해가 이어지면 눈이 해마다 쌓여 거대한 빙상으로 자라고, 반대로 여름 햇빛이 강해지면 빙상이 녹아 물러납니다.
궤도와 자전축이 만드는 세 가지 변화

밀란코비치 주기는 서로 다른 박자로 움직이는 세 가지 변화가 겹쳐서 만들어집니다.
(1) 이심률(Eccentricity)
지구의 공전 궤도는 완전한 원이 아니라 조금 찌그러진 타원이며, 그 찌그러진 정도가 약 10만 년과 약 40만 년을 주기로 바뀝니다. 궤도가 더 길쭉해질수록 태양에 가장 가까울 때와 가장 멀 때 받는 햇빛의 차이가 커집니다.
(2) 자전축 기울기(Obliquity)
지구의 자전축은 공전면에 대해 기울어져 있으며, 그 각도가 약 4만 1천 년을 주기로 22.1도에서 24.5도 사이를 오갑니다. 지금은 약 23.4도이며 조금씩 줄어드는 중입니다. 기울기가 클수록 여름은 더 덥고 겨울은 더 추워집니다.
(3) 세차운동(Precession)
자전축은 팽이처럼 천천히 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꿉니다. 이 때문에 지구가 태양에 가장 가까워지는 때가 어느 계절과 겹치는지가 약 2만 3천 년을 주기로 바뀝니다. 지금은 북반구의 겨울인 1월 초에 지구가 태양에 가장 가까워집니다.
이 세 가지는 지구 전체가 1년 동안 받는 햇빛의 총량보다는, 그 햇빛이 계절과 위도에 어떻게 나뉘는지를 바꿉니다. 바로 이 분배의 변화가 빙상이 자라고 줄어드는 방향을 정합니다.
바다 밑 진흙이 보여 준 증거

밀란코비치의 계산은 오랫동안 증명하기 어려운 가설로 남아 있었습니다. 수십만 년 전의 기후를 정확히 재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바꾼 것은 깊은 바다 밑에 쌓인 진흙이었습니다.
바다 밑 퇴적물에는 작은 플랑크톤인 유공충의 껍데기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껍데기에 담긴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은 그 시절 육지에 얼음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려 주는 기록이 됩니다. 1976년 제임스 헤이스(James Hays), 존 임브리(John Imbrie), 니컬러스 섀클턴(Nicholas Shackleton)은 이 기록을 분석해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 약 10만 년 주기(100,000 years): 이심률의 박자와 맞아떨어졌습니다.
- 약 4만 1천 년 주기(41,000 years): 자전축 기울기의 박자와 맞아떨어졌습니다.
- 약 2만 3천 년과 1만 9천 년 주기(23,000·19,000 years): 세차운동의 박자와 맞아떨어졌습니다.
이 논문은 지구 궤도의 변화를 ‘빙하기의 박자를 정하는 조율사(Pacemaker of the Ice Ages)’라고 불렀고, 이후 밀란코비치 주기는 기후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 이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남극 빙하에서 뽑아낸 얼음 기둥의 기록도 같은 박자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론의 한계와 오늘의 기후

밀란코비치 주기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대표적인 수수께끼가 이른바 ‘10만 년 문제’입니다. 지난 약 80만 년 동안 빙기와 간빙기는 주로 10만 년 박자로 오갔지만, 이심률이 바꾸는 햇빛의 양은 세 가지 변화 가운데 가장 작습니다. 그보다 앞선 시기에는 4만 1천 년 박자가 더 뚜렷했는데, 왜 박자가 바뀌었는지도 아직 논쟁 중입니다.
과학자들은 궤도의 변화가 방아쇠 역할을 하고, 지구 안의 되먹임이 그 효과를 키운다고 봅니다.
- 얼음과 반사율(Ice-Albedo Feedback): 하얀 얼음이 넓어질수록 햇빛을 더 많이 반사해 지구가 더 식습니다.
- 온실가스(Greenhouse Gases): 빙하 기록을 보면 빙기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적고 간빙기에는 많았습니다.
- 해양 순환(Ocean Circulation): 바닷물의 흐름이 바뀌면 열이 지구 곳곳으로 나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밀란코비치 주기는 수천 년에서 수만 년에 걸쳐 천천히 작용합니다. 그래서 지난 100여 년 사이에 빠르게 오른 기온은 이 주기로 설명할 수 없으며, 사람이 내놓은 온실가스가 주된 원인으로 꼽힙니다. 궤도의 느린 박자를 이해하면 오늘날의 변화가 얼마나 빠르고 이례적인지도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결국 밀란코비치 주기는 지구의 기후가 우주 속에서 지구가 놓인 자리와 깊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늘의 느린 박자와 지구 안의 되먹임을 함께 읽어 내는 것, 그것이 기후의 긴 역사를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