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아질수록 전력도 줄었다, 데너드 스케일링(Dennard Scaling)

번호 몇 개로 전체를 세다, 독일 전차 문제(German Tank Problem)
겨울철 미국 캘리포니아 뉴스에는 며칠 동안 퍼붓는 폭우와 산사태 소식이 자주 등장합니다. 일기예보관들은 이럴 때 ‘하늘의 강이 또 상륙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땅 위에 흐르는 강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수증기가 하늘에서 길게 띠를 이루어 바다 건너 수천 킬로미터를 흘러오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대기의 강(Atmospheric River)’입니다.
대기의 강이란 쉽게 말해 ‘따뜻한 바다에서 증발한 많은 양의 수증기가 좁고 긴 띠 모양으로 모여 대기 아래층을 따라 먼 곳까지 옮겨 가는 통로’를 의미합니다. 길이는 보통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지만 폭은 몇백 킬로미터에 불과해, 위성 사진으로 보면 정말 하늘을 가로지르는 강줄기처럼 보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대기의 강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배경부터 이 수증기 띠가 비를 만드는 원리, 강도를 나누는 등급, 그리고 우리 삶에 주는 혜택과 위험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을 흐르는 수증기 띠의 정체
위성이 찾아낸 하늘의 강

대기의 강이라는 이름은 1990년대 초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기상학자 레지널드 뉴얼(Reginald Newell)과 융 주(Yong Zhu)가 처음 썼습니다. 바다 위 수증기의 흐름을 분석하던 이들은 수증기가 넓게 퍼져서 움직이지 않고 몇 개의 좁은 띠에 몰려 흐른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 관측의 발전(Satellite Remote Sensing): 예전에는 기상 관측 기구에 주로 기대야 해서 넓은 바다 위 수증기를 제대로 잴 수 없었지만, 극궤도 위성의 마이크로파 센서가 바다 전체의 수증기량을 자주 측정하면서 이 띠들이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 다른 이름(Pineapple Express): 하와이 근처 열대 바다에서 북아메리카 서해안으로 이어지는 대기의 강은 하와이의 파인애플에 빗대어 파인애플 익스프레스라고도 불립니다.
- 동시에 여러 개(Multiple Plumes): 보통 한 반구에는 언제나 이런 띠가 서너 개에서 다섯 개쯤 동시에 흐르고 있습니다.
아마존강보다 많은 물을 나르는 원리

대기의 강은 주로 중위도 바다에서 발달하는 온대 저기압과 함께 나타납니다. 저기압의 한랭 전선 바로 앞쪽을 따라 강한 바람이 불면, 열대와 아열대 바다에서 올라온 수증기가 그 바람에 실려 한 줄로 길게 끌려갑니다.
(1) 좁은 띠가 대부분을 나른다
중위도에서 남북 방향으로 옮겨지는 수증기의 90% 이상을 대기의 강이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띠들이 차지하는 폭은 위도선 한 바퀴 길이의 10%도 되지 않습니다.
(2) 거대한 강과 맞먹는 양
강한 대기의 강 하나가 옮기는 수증기의 양은 지구에서 가장 큰 강인 아마존강의 물 흐름보다 많을 때도 있습니다. 물이 액체가 아니라 기체 상태로 하늘에 떠서 흘러갈 뿐입니다.
(3) 산을 만나면 비로 쏟아진다
수증기를 가득 실은 공기가 해안의 산맥에 부딪혀 위로 밀려 올라가면 식으면서 구름이 되고, 짧은 시간에 엄청난 비나 눈을 쏟아 냅니다. 같은 대기의 강이라도 산이 높고 가파른 곳일수록 비가 훨씬 많이 내립니다.
약함부터 예외적까지 다섯 등급

태풍에 등급이 있듯이 대기의 강에도 강도를 나누는 기준이 있습니다. 2019년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서부기상수문극한센터(CW3E)는 마틴 랠프(F. Martin Ralph)를 중심으로 대기의 강을 다섯 등급으로 나누는 척도를 발표했습니다.
양과 시간을 함께 본다
이 척도는 대기의 강이 얼마나 많은 수증기를 옮기는지와 그 상태가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를 함께 따집니다. 먼저 수증기 수송량으로 등급을 매긴 뒤, 24시간이 안 되면 한 단계 낮추고 48시간을 넘기면 한 단계 높입니다. 같은 양이라도 오래 머물수록 피해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혜택에서 위험으로
1등급은 ‘약함’으로 대체로 이로운 비를 뿌리고, 3등급은 이로움과 위험이 비슷하며, 5등급은 ‘예외적’으로 주로 큰 피해를 남깁니다. 1996년 말부터 1997년 초까지 약 100시간 동안 이어지며 큰 피해를 낸 폭우가 5등급의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가뭄을 끝내는 비, 홍수를 부르는 비

대기의 강은 고마운 물줄기이면서 동시에 무서운 재해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1) 물 공급원
미국 서해안에서는 한 해 강수와 쌓인 눈의 30~40%가 대기의 강에서 옵니다. 그래서 대기의 강이 몇 번 찾아오느냐에 따라 오랜 가뭄이 끝나기도 하고, 반대로 대기의 강이 오지 않으면 가뭄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2) 홍수와 산사태
2021년 11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잇따른 대기의 강이 쌓인 눈을 녹이며 큰 홍수를 일으켰습니다. 2019년 3월 이란에서는 대서양에서 약 9,000킬로미터를 건너온 드문 대기의 강이 기록적인 홍수를 일으켜 7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3) 따뜻해질수록 강해진다
기온이 오르면 공기가 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도 늘어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지구가 더워질수록 대기의 강이 더 자주, 더 강하게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며 예보와 물 관리 대책을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기의 강은 우리가 마시는 물과 우리를 위협하는 홍수가 같은 하늘의 흐름에서 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위성과 예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며칠 앞서 하늘의 강이 어디로 향하는지 내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강줄기를 읽어 내는 것, 그것이 물과 재해를 함께 다스리는 지구과학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