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맡긴 일이 엇나가는 이유,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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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한참을 걷다가 마시는 첫 잔의 물은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시원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잔은 첫 잔만큼 반갑지 않고, 다섯 번째 잔쯤 되면 더는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같은 물인데도 한 잔을 더 마실 때마다 느끼는 만족은 점점 줄어듭니다.
이처럼 어떤 것을 하나 더 얻을 때 늘어나는 만족이 갈수록 작아지는 현상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한계는 ‘끝에 하나 더’라는 뜻이고, 체감은 ‘차례로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얼마나 사고, 어떤 값을 매기는지를 설명하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한계효용의 뜻부터 이 법칙이 경제학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 물과 다이아몬드의 수수께끼, 그리고 일상과 정책 속에서 이 법칙이 쓰이는 모습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만족은 왜 줄어드는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의 원리와 쓰임
하나 더 얻을 때의 만족, 한계효용

경제학에서는 사람이 무언가를 쓰거나 가지면서 느끼는 만족을 효용이라고 부릅니다. 이 법칙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말을 먼저 알아 두면 좋습니다.
- 효용(Utility):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하며 느끼는 만족의 크기입니다.
- 총효용(Total Utility): 지금까지 소비한 양 전체에서 얻은 만족을 모두 더한 값입니다.
- 한계효용(Marginal Utility): 한 단위를 더 소비할 때 새로 늘어나는 만족입니다.
물을 한 잔 더 마실 때마다 총효용은 조금씩 늘어나지만, 늘어나는 폭인 한계효용은 점점 작아집니다. 그러다 한계효용이 0이 되는 지점에서 총효용은 가장 커지고, 그 뒤로도 억지로 더 마시면 오히려 배가 불러 괴로워지므로 한계효용은 마이너스가 됩니다. 사탕 세 개가 두 개보다 낫지만, 스무 번째 사탕은 첫 번째 사탕만큼 반갑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법칙이 경제학에 자리 잡기까지

만족이 줄어든다는 생각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1) 베르누이의 내기 연구
스위스의 수학자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는 1738년 발표한 논문에서, 같은 금액이라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자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원래는 내기와 위험을 다루던 연구였지만, 한계효용이 줄어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뚜렷하게 밝힌 글로 꼽힙니다.
(2) 고센의 첫째 법칙
1854년 독일의 경제학자 헤르만 하인리히 고센(Hermann Heinrich Gossen)은 같은 즐거움을 이어 가면 그 크기가 점점 줄어든다는 원리를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이 법칙을 ‘고센의 제1법칙’이라고도 부릅니다. 다만 그의 책은 당시 거의 읽히지 않았습니다.
(3) 한계혁명
1871년 영국의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와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Carl Menger), 1874년 스위스 로잔에서 활동한 레옹 발라(Léon Walras)가 서로 따로 한계효용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이 흐름을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이라 부르며, 이후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이 이를 바탕으로 수요곡선을 정리하면서 오늘날 경제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물은 싸고 다이아몬드는 비싼 까닭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값이 싸고,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매우 비쌉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와 자주 함께 이야기되는 이 수수께끼를 ‘가치의 역설(Paradox of Value)’ 또는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이라고 합니다.
한계효용으로 보면 이 역설이 풀립니다. 물은 우리 주변에 넉넉해서 이미 많이 쓰고 있으므로, 한 잔을 더 얻을 때의 만족인 한계효용이 아주 작습니다. 반면 다이아몬드는 매우 드물어서 하나를 더 가질 때의 만족이 큽니다. 값을 정하는 것은 물건 전체의 쓸모가 아니라 마지막 한 단위의 쓸모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이아몬드는 캐내고 다듬는 데 드는 비용도 훨씬 크다는 점이 더해집니다.
다만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물 한 병이 다이아몬드보다 귀할 수 있습니다. 물이 드물어지면 마지막 한 모금의 한계효용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일상과 정책 속 한계효용

이 법칙은 교과서 밖에서도 자주 모습을 드러냅니다.
(1) 무한 리필 식당의 계산
뷔페나 무한 리필 식당이 정해진 값으로 마음껏 먹게 할 수 있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손님이 먹을수록 한 접시를 더 먹는 만족이 줄어 결국 스스로 멈추기 때문입니다.
(2) 골고루 사는 이유
같은 돈으로 한 가지만 잔뜩 사기보다 여러 가지를 나누어 사는 것도 이 법칙 때문입니다. 사람은 돈 한 단위로 얻는 한계효용이 모든 물건에서 비슷해지도록 지출을 나누려 하는데, 이를 한계효용 균등의 법칙이라고 하며 ‘고센의 제2법칙’이라고도 부릅니다.
(3) 세금과 복지의 논거
같은 10만 원이라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주는 만족이 더 크다는 생각은, 소득이 많을수록 더 높은 세율을 매기는 누진세와 복지 정책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자주 쓰입니다.
예외처럼 보이는 경우
수집가는 마지막 한 장을 채울 때 더 큰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모두가 함께 써야 쓸모가 커지는 서비스는 쓰는 사람이 늘수록 만족이 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법칙은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철칙이라기보다, 사람의 선택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경향으로 이해하는 편이 알맞습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우리가 느끼는 만족이 많이 가질수록 무뎌진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해, 값이 정해지는 원리와 소비의 균형, 그리고 정책의 방향까지 설명해 줍니다.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지금 한 단위가 주는 만족을 헤아려 보는 일, 그것이 현명한 선택과 소비를 이해하는 경제학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