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 눌러도 한 번처럼, 멱등성(Idempotence)

드문 일은 몇 번이나 일어날까, 푸아송 분포(Poisson Distribution)
햇빛이 닿지 않는 수천 미터 바다 밑은 차갑고 어둡고 먹을 것이 드문 사막과 같다고 오랫동안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는 굴뚝이 서 있고, 그 둘레에 조개와 새빨간 깃을 단 관 모양 벌레가 빽빽이 모여 사는 모습이 1970년대 말에 처음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과학자들조차 믿기 어려워했던 장면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 바로 열수 분출구입니다.
열수 분출구(Hydrothermal Vent)란 지구 내부의 열로 뜨거워진 물이 해저의 갈라진 틈으로 뿜어져 나오는 곳을 말합니다. 대륙을 움직이는 판이 서로 멀어지는 해령 근처에 주로 모여 있으며, 지구가 지질학적으로 살아 있고 표면에 물이 풍부하기에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이 분출구가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검은 굴뚝이 어떤 원리로 자라는지, 햇빛 없이 살아가는 생물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그리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로스트 시티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바다 밑 뜨거운 샘이 빚어내는 또 하나의 세계
1977년, 잠수정 창밖에 나타난 뜻밖의 생명

1977년 2월 미국의 심해 잠수정 앨빈(Alvin)을 탄 연구진이 갈라파고스 해저 열곡에서 따뜻한 물이 솟는 틈과 그 둘레에 몰려 사는 생물들을 직접 관찰하고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이 탐사에는 오리건 주립대학교의 잭 코리스(Jack Corliss)를 비롯한 여러 지질학자가 참여했습니다.
(1) 예고된 발견
1976년 스크립스 해양연구소가 깊은 바다에서 끌고 다니는 카메라로 이상 신호를 먼저 포착했고, 이듬해 같은 자리로 돌아가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2) 검은 연기의 발견
1979년 봄 동태평양 해팽의 북위 21도 지점에서 앨빈이 검은 입자를 뿜는 굴뚝을 찾아냈고, 이를 블랙 스모커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3) 뜻밖의 풍경
빛이 전혀 없는 곳인데도 생물이 가득했습니다. 이 생명이 햇빛이 아닌 다른 에너지로 산다는 사실은 이후 연구로 차츰 밝혀졌습니다.
끓지 않는 400도의 물과 자라나는 굴뚝

분출구 주변의 바닷물은 약 2도로 차가운데, 뿜어져 나오는 물은 60도에서 높게는 400도를 넘기도 합니다. 대서양 중앙 해령 남부에서는 464도가 잠깐 관측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물이 수증기로 날아가지 않는 것은 수심 2,500미터의 압력이 약 250기압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1) 광물이 굳는 순간
뜨거운 물에는 지각에서 녹아 나온 금속과 황 성분이 가득 들어 있고, 이 물이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 광물이 한꺼번에 가라앉아 굴뚝의 벽이 됩니다.
(2) 검은색의 정체
처음에는 황산칼슘 계열의 광물인 경석고가 쌓이고, 이어 구리·철·아연의 황화물이 틈을 메웁니다. 검은 연기는 이 황화물 입자가 만든 빛깔입니다.
(3) 빠르게 자라는 탑
굴뚝은 하루에 약 30센티미터씩 자란 기록이 있으며, 높이가 60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1996년에는 오리건 앞바다에서 고질라라는 별명이 붙은 40미터짜리 굴뚝이 스스로 무너져 내린 일도 있습니다. 바륨·칼슘·규소 성분이 많고 온도가 낮은 분출구는 흰 연기를 내어 화이트 스모커라 부릅니다.
굴뚝에서 나온 물은 둘레의 바닷물보다 가벼워 위로 솟으며 퍼져 나가고, 이렇게 흩어진 금속 성분은 바다의 철 순환에도 한몫합니다.
햇빛 대신 화학물질을 먹는 생태계

분출구 둘레의 생물 밀도는 주변 해저보다 1만 배에서 10만 배까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풍요를 떠받치는 것은 황화수소 같은 화학물질에서 에너지를 얻어 양분을 만드는 세균입니다. 광합성이 빛으로 하는 일을 화학합성은 화학물질로 하는 셈입니다.
(1) 입도 장도 없는 벌레
관벌레 가운데 리프티아(Riftia pachyptila)는 입과 소화관이 없고, 몸속 영양체라는 기관에 사는 세균이 만든 양분을 받아 삽니다. 이런 공생은 1981년에야 밝혀졌습니다.
(2) 독을 나르는 붉은 깃털
황화수소는 대부분의 생물에게 독이지만 관벌레의 붉은 깃털 속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황화수소를 함께 실어 세균에게 전해 줍니다.
(3) 먹이 사슬의 위층
세균을 뜯어 먹는 작은 갑각류 위로 새우, 게, 고둥, 문어까지 층층이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분출구에서 발견된 새로운 생물종은 300종이 넘습니다. 2001년 인도양의 카이레이 분출구에서 처음 보고된 비늘발고둥은 칼슘이 아니라 황화철로 몸을 덮은 갑옷을 두르고 있습니다. 다만 이 생태계가 태양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하면 지나칩니다. 이곳 생물도 광합성으로 생긴 바닷속 산소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스트 시티와 아직 열려 있는 질문들

2000년 12월 대서양 중앙 해령 옆 아틀란티스 해저 산(Atlantis Massif)에서 전혀 다른 분출구 지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름하여 로스트 시티입니다. 화산 열이 아니라 맨틀 암석과 바닷물이 만나 일어나는 화학 반응의 열로 움직이며, 수온이 40도에서 90도로 낮고 물은 강한 알칼리성입니다. 이곳에서는 적어도 3만 년 동안 이어진 활동의 흔적이 확인되어, 수명이 짧은 검은 굴뚝보다 훨씬 오래 버텨 온 곳으로 평가됩니다.
- 검은 굴뚝(Black Smoker): 화산 활동이 열원이고 수백 도의 산성 물에 금속 황화물이 풍부합니다.
- 로스트 시티(Lost City): 맨틀 암석의 사문석화 반응이 열원이고, 수소와 메탄을 내며 흰 탄산염 탑이 섭니다.
- 포세이돈(Poseidon): 로스트 시티의 가장 큰 탑으로 높이가 약 60미터에 이릅니다.
-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 이런 분출구가 생명의 요람이었다는 가설이 있으나 학계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알려진 활성 분출구 지대는 2009년 기준으로 약 500곳이며, 그중 절반 가까이는 직접 본 곳이 아니라 물속 신호로만 짐작한 곳입니다. 해저의 1퍼센트 미만만 잘 알려져 있다는 평가도 있을 만큼 탐사할 곳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장 깊은 분출구는 카리브해 케이맨 해구에서 수심 약 5,000미터 지점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끝까지 궁금해하는 마음, 그것이 열수 분출구 탐사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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