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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이 라디오를 켜자 노래가 흘러나오고, 잠시 뒤 긴박한 장면에서는 어디선가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깔립니다. 두 소리 모두 귀에는 똑같이 들리지만, 앞의 노래는 주인공도 듣고 뒤의 음악은 관객만 듣습니다. 소리가 이야기 세계 ‘안’에서 나오는지 ‘밖’에서 덧입혀졌는지를 가르는 이 기준이 바로 ‘디제시스 사운드(Diegetic Sound)’입니다.
디제시스 사운드란 쉽게 말해 ‘등장인물이 사는 이야기 세계 안에 소리의 출처가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대사, 발소리, 문 닫히는 소리, 극 중 라디오 음악이 여기에 해당하며, 그 반대편에는 배경음악이나 해설처럼 이야기 세계 밖에서 들려오는 논디제시스 사운드(Non-Diegetic Sound)가 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디제시스라는 말의 뿌리와 두 소리의 구분부터 경계를 넘나드는 활용 사례, 그리고 실제 영상을 만들 때 쓰는 소리 설계 요령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이야기 세계 안과 밖을 가르는 소리의 문법
디제시스 사운드란 무엇인가?

‘디제시스(Diegesis)’는 ‘이야기함, 서술’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플라톤이 서술과 모방을 나누어 설명할 때 쓰기도 했습니다. 영화 이론에서는 1951년 프랑스 미학자 에티엔 수리오(Étienne Souriau)가 ‘디에제즈(diégèse)’를 영화가 그려 내는 허구의 세계, 곧 관객이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일 때 떠올리는 세계라는 뜻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개념이 소리에 붙으면서 영상 음향을 나누는 기본 잣대가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과 크리스틴 톰프슨(Kristin Thompson)의 영화 입문서 《Film Art》는 디제시스 사운드를 ‘이야기 세계 안의 출처에서 나온다고 제시되는 모든 목소리, 음악, 효과음’으로 정의합니다. 중요한 점은 실제 녹음 방식이 아니라 관객이 그 소리의 출처를 어디로 받아들이는가입니다. 스튜디오에서 따로 만든 발소리라도 화면 속 인물의 것으로 들리면 디제시스 사운드입니다.
디제시스와 논디제시스, 두 소리의 구분

두 소리를 가르는 가장 쉬운 질문은 ‘극 중 인물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입니다. 들을 수 있으면 디제시스, 관객만 들을 수 있으면 논디제시스입니다.
- 디제시스 사운드(Diegetic Sound): 대사, 발소리, 빗소리, 극 중 악단의 연주처럼 이야기 세계 안에 출처가 있는 소리입니다.
- 논디제시스 사운드(Non-Diegetic Sound): 분위기를 이끄는 배경음악, 화면 밖 해설, 장면을 강조하는 효과음처럼 이야기 세계 밖에서 덧붙인 소리입니다.
- 메타디제시스 사운드(Meta-Diegetic Sound): 인물의 머릿속에서만 울리는 기억, 환청, 상상의 노래처럼 이야기 안에 있지만 한 사람만 듣는 소리입니다.
(1) 화면 안 소리와 화면 밖 소리
디제시스 사운드는 출처가 화면에 보일 수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화면 밖 복도에서 들리는 발소리도 이야기 세계 안의 소리입니다.
(2) 메타디제시스라는 세 번째 층
클로디아 고브먼(Claudia Gorbman)은 1987년 저서 《Unheard Melodies》에서 영화음악을 이 틀로 분석하며, 제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의 용어를 빌려 인물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로 구분했습니다.
쉬운 예시로 이해하는 디제시스 사운드

[사례 1] 사막 한가운데의 악단, 〈Blazing Saddles〉
1974년 멜 브룩스(Mel Brooks)의 코미디 〈Blazing Saddles〉에서는 보안관이 말을 타고 사막을 달리는 동안 재즈곡이 흐릅니다. 관객은 당연히 배경음악이라고 여기지만, 곧 사막 한가운데서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와 그의 악단이 그 곡을 연주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논디제시스라고 믿었던 소리가 디제시스였음을 드러내며 관객의 기대를 뒤집는 유명한 장면입니다.
[사례 2] 워크맨 속 믹스테이프, 〈Guardians of the Galaxy〉
2014년 〈Guardians of the Galaxy〉의 주인공 피터 퀼은 어머니가 남긴 카세트테이프 ‘Awesome Mix Vol. 1’을 워크맨으로 듣습니다. 노래의 출처가 극 중 물건이므로 디제시스 음악이며, 테이프는 어머니와 지구를 잇는 이야기 장치가 됩니다. 다만 관객에게는 이어폰 속 작은 소리가 아니라 꽉 찬 음질로 들려, 인물이 느끼는 대로 듣게 만드는 효과를 냅니다.
소리의 경계를 설계하는 실전 요령

디제시스와 논디제시스의 구분은 이론 용어에 그치지 않고, 편집실에서 장면의 감정과 몰입을 조절하는 도구가 됩니다. 소리를 어느 쪽에 둘지 정하는 순간 관객이 장면과 맺는 거리가 달라집니다.
(1) 현실감은 디제시스로 쌓기
주변 소음과 공간의 울림을 살리면 관객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2) 감정은 논디제시스로 이끌기
배경음악은 인물이 모르는 위험이나 속마음을 관객에게 먼저 알려 줄 수 있습니다.
(3) 경계를 넘나들며 장면 잇기
극 중 라디오 노래가 다음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이어지면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4) 의도한 혼란은 아껴 쓰기
출처를 일부러 흐리는 연출은 웃음이나 긴장을 주지만, 너무 잦으면 관객이 이야기 흐름을 놓칠 수 있습니다.
디제시스 사운드는 이야기 세계 안에 출처가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소리이고, 논디제시스 사운드는 그 세계 밖에서 관객에게만 들려주는 소리입니다. 같은 노래라도 어디에서 울린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현실감이 되기도, 감정의 해설이 되기도 합니다.
들리는 모든 소리에 ‘누가 이 소리를 듣는가’를 묻는 것, 그것이 영상 속 소리 읽기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