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도 안 된다는 착각,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세상을 기울이는 시선, 더치 앵글(Dutch Angle)
같은 뉴스 영상을 보고도 한쪽은 ‘언론이 우리를 깎아내린다’고 말하고, 다른 쪽은 ‘언론이 저쪽 편만 든다’고 말합니다. 기사 내용은 하나인데, 양쪽 모두 자기 편이 불리하게 보도되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적대적 미디어 효과란 쉽게 말해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입장이 강한 사람들이, 동일한 뉴스 보도를 자기 편에 불리하게 편향되었다고 인식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1985년 로버트 발론(Robert Vallone), 리 로스(Lee Ross), 마크 레퍼(Mark Lepper)가 스탠퍼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체계적으로 확인한 개념으로,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언론학의 핵심 이론이 되었습니다.
본 자료에서는 적대적 미디어 효과가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왜 같은 뉴스가 다르게 보이는지, 일상과 디지털 환경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이 효과를 의식하며 뉴스를 읽는 방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적대적 미디어 효과의 이해
같은 화면, 서로 다른 편향

이 효과는 1982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사브라·샤틸라 학살에 대한 미국 방송 뉴스를 두고 실험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친이스라엘 성향, 친아랍 성향,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대학생들에게 같은 뉴스 클립을 보여 주었습니다.
(1) 양쪽이 모두 ‘불리하다’고 느낌
친이스라엘 학생들은 보도가 이스라엘에 불리하다고 평가했고, 친아랍 학생들은 같은 보도가 아랍 측에 불리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중립적인 학생들은 비교적 균형 잡혔다고 보았습니다.
(2) 기억도 다르게 남음
각 진영은 자기 편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 더 많았다고 회상했고, 이 보도가 중립적인 시청자를 자기 편에 불리한 쪽으로 흔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3) 많이 알수록 더 강하게 느낌
해당 사안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미디어 편향을 더 강하게 느꼈습니다. 지식이 많을수록 ‘객관적 보도’의 기준이 자기 쪽으로 치우치기 쉽다는 뜻입니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적대적 미디어 현상(Hostile Media Phenomenon)’이라 불렀고, 이후 학계에서는 적대적 미디어 효과라는 이름으로 널리 씁니다.
왜 같은 뉴스가 나를 공격하는가

같은 문장을 읽고도 편향을 다르게 느끼는 까닭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됩니다.
- 선택적 범주화(Selective Categorization): 같은 문장도 자기 편에는 ‘불공정한 공격’, 상대 편에는 ‘당연한 사실’로 분류합니다.
- 서로 다른 기준(Different Standards): 자기 편이 옳다고 믿는 증거는 많고, 상대 편의 주장은 약하다고 보기 때문에, 양측을 비슷하게 다룬 보도를 ‘왜곡’으로 느낍니다.
- 선택적 회상(Selective Recall): 자기 편을 깎아내리는 장면이나 문장이 더 오래, 더 크게 기억에 남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집니다. 보도가 많은 사람에게 닿는 매체로 인식될수록 효과가 커집니다. 같은 글을 신문 기사로 보여 주면 편향을 강하게 느끼고, 학생 에세이로 보여 주면 오히려 자기 편에 유리하게 읽는 경향이 관찰되었습니다.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매체일수록 ‘저 뉴스가 남의 마음을 바꿀까 봐’ 경계가 커지는 것입니다.
일상과 디지털에서 보이는 모습

이 효과는 중동 분쟁뿐 아니라 선거, 이민, 노사 갈등, 유전자 변형 식품, 심지어 스포츠 중계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응원하는 팀이 다른 팬들이 같은 심판 판정을 서로 불리하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상대 적대적 미디어 효과(Relative Hostile Media Effect)도 있습니다. 보도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어도, 양쪽이 그 기울기를 인정하되 자기 편이 더 크게 맞았다고 느끼는 현상입니다. 편향이 상대를 겨냥할 때는 ‘공정한 보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이 효과가 더 날카로워질 수 있습니다. 같은 게시물도 내 입장에 따라 ‘가짜 뉴스’로 보이거나, 댓글과 공유가 제3자에게 미칠 영향을 과하게 걱정하게 됩니다. 그 결과 ‘언론이 나를 공격한다’는 감각이 쌓이면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쉽습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장면
- 응원팀 중계(Sports Broadcast): 같은 파울 장면을 보고도 양쪽 팬이 서로 불리한 판정이라고 느낍니다.
- 정치 토론 요약(Debate Summary): 양측 발언을 비슷하게 실은 기사에도 ‘우리 쪽만 짧게 잘렸다’는 말이 나옵니다.
- SNS 공유(Social Share): 같은 링크를 두고 한쪽은 ‘팩트’, 다른 쪽은 ‘선동’이라고 부릅니다.
효과를 의식하며 뉴스를 읽는 법

적대적 미디어 효과는 언론이 늘 공정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편향을 느낀다’는 감각만으로 기사의 품질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내 입장이 강할수록, 그 주제에 대해 많이 알수록, 그 감각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읽기 전에 점검해 볼 질문
- 사실과 해석 구분하기(Fact vs Interpretation): 내가 화가 난 부분은 숫자·인용인가, 아니면 표현과 순서인가를 분리해 봅니다.
- 상대 시선으로 다시 읽기(Perspective Taking): ‘반대편 독자가 이 문장을 보면 어떻게 느낄까’를 물어 보면 범주화가 조금 느슨해집니다.
- 출처와 도달 범위 확인하기(Source and Reach): 같은 내용이라도 매체의 성격과 영향력에 따라 내 경계가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 여러 매체 교차 확인하기(Cross-Checking): 한 매체의 ‘적대감’에만 기대지 말고, 다른 매체의 같은 사건 보도를 나란히 봅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 효과를 완전히 없애 주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 편향을 느끼고 있다’는 자각 자체는 과한 불신을 줄이는 출발점이 됩니다.
적대적 미디어 효과는 발론·로스·레퍼의 실험에서 출발해, 같은 뉴스가 왜 서로에게 공격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하는 언론학의 기초 개념이 되었습니다.
논쟁적인 뉴스를 볼 때 ‘나한테만 불리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 감각이 어디서 오는지 한 번 더 살펴보는 것, 그것이 더 차분한 미디어 읽기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