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들어온 물건부터, 선입선출(First In, First Out)

관계를 한 장에 그리다, 생태도(Ecological Map)
과학관 중앙 홀에 들어서면 천장에서 길게 늘어뜨린 줄 끝에 무거운 추가 천천히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참 지켜보아도 그저 같은 자리를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몇 시간 뒤에 다시 와 보면 추가 흔들리는 방향이 처음과 달라져 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무엇이 방향을 바꾼 걸까요? 이 수수께끼의 주인공이 바로 ‘푸코의 진자(Foucault Pendulum)’입니다.
푸코의 진자란 쉽게 말해 ‘아주 긴 줄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오랫동안 흔들리게 하면, 흔들리는 면이 땅에 대해 조금씩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여 주는 장치’를 의미합니다. 하늘을 보지 않고 실내에서 지구의 자전을 처음으로 증명한 실험으로 손꼽힙니다.
본 자료에서는 푸코의 진자가 탄생한 배경부터 흔들리는 면이 돌아가는 원리, 위도에 따라 달라지는 회전 속도, 그리고 오늘날 과학관에서 진자를 움직이는 방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지구의 자전을 눈앞에 보여 준 푸코의 진자
1851년, 지구가 도는 모습을 보러 오세요

이 실험을 고안한 사람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레옹 푸코(Léon Foucault)입니다. 푸코는 1851년 2월 파리 천문대의 자오선실에서 처음으로 진자를 공개했고, 몇 주 뒤에는 훨씬 큰 진자를 파리 팡테옹(Panthéon)의 둥근 지붕 아래에 매달았습니다. 당시 초대장에는 ‘지구가 도는 모습을 보러 오십시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팡테옹 진자의 규모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길이 67미터의 강철 줄
줄이 길수록 한 번 오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흔들림이 오래 이어집니다.
(2) 무게 28킬로그램의 추
납으로 만들고 겉을 황동으로 감싼 무거운 추라 공기 저항에 쉽게 흔들림을 잃지 않았습니다.
(3) 바닥의 모래판
추 아래에 달린 뾰족한 침이 지나갈 때마다 모래에 자국을 남겨, 흔들리는 방향이 조금씩 바뀌는 모습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실험이 큰 화제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구가 돈다는 생각은 코페르니쿠스 이후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그 근거는 대부분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관측해 추론한 것이었습니다. 푸코의 진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건물 안에서 땅이 도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었기 때문에 많은 파리 시민이 구경하러 몰려들었습니다.
흔들리는 면은 왜 돌아갈까?

진자는 한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바깥에서 비트는 힘을 받지 않는 한 같은 면을 따라 계속 오가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줄을 매단 곳이 자유롭게 돌 수 있도록 만들어 두면, 건물이 돌아도 진자는 원래의 흔들림 면을 유지하려 합니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곳은 북극입니다. 북극에 진자를 매달면 흔들리는 면은 우주에 대해 그대로 있고, 그 아래에서 땅이 하루에 한 바퀴씩 돕니다. 그래서 땅 위에 선 사람에게는 진자의 흔들림 면이 하루에 한 바퀴 거꾸로 도는 것처럼 보입니다.
- 북반구(Northern Hemisphere): 위에서 내려다보면 흔들림 면이 시계 방향으로 돌아갑니다.
- 남반구(Southern Hemisphere): 반대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진자가 도는 것이 아니라, 진자를 바라보는 우리가 지구와 함께 돌고 있는 셈입니다.
위도에 따라 달라지는 회전 속도

흔들림 면이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진자를 매단 곳의 위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극에서는 지구가 한 번 자전하는 시간인 약 23시간 56분이 걸리고, 적도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느려집니다. 계산식은 ‘한 바퀴 시간 = 23시간 56분 ÷ sin(위도)’입니다.
- 팡테옹(Paris): 위도가 북위 약 48.9도라 한 시간에 약 11.3도씩 돌았고, 한 바퀴에 약 31시간 50분이 걸렸습니다.
- 서울(Seoul): 북위 약 37.6도에서는 한 바퀴에 약 39시간이 걸립니다.
- 적도(Equator): 흔들림 면이 전혀 돌지 않아 진자로는 자전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흔들림 면이 돌아가는 정도는 줄의 길이나 추의 무게와 관계없이 오직 위도로 정해집니다. 줄의 길이는 한 번 오가는 시간을 정할 뿐인데, 팡테옹 진자는 한 번 왕복하는 데 약 16초가 걸렸습니다.
이 회전은 지구 자전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가 옆으로 휘어 보이는 현상인 코리올리 효과(Coriolis Effect)와 같은 뿌리를 가집니다. 다만 그 효과가 매우 작아 변화가 드러나려면 흔들림이 오래 이어져야 하므로, 줄이 길고 추가 무거운 진자를 쓰고 몇 시간씩 지켜봐야 합니다.
오늘날의 푸코 진자

푸코의 진자는 지금도 세계 곳곳의 과학관과 대학, 공공건물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만들어 보면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진자를 오래 흔들리게 하는 방법
- 공기 저항(Air Resistance): 공기와 부딪치며 흔들림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에 추를 무겁고 매끈하게 만듭니다.
- 타원 흔들림(Elliptical Motion): 처음 놓을 때 옆으로 살짝 밀리면 추가 길쭉한 원을 그리며 엉뚱하게 돌아가므로, 예전에는 추를 실로 묶어 두었다가 불로 실을 태워 조용히 출발시켰습니다.
- 전자석 보조(Electromagnetic Drive): 요즘 전시용 진자는 추가 지나갈 때마다 바닥의 전자석이 살짝 힘을 보태 하루 종일 같은 크기로 흔들리게 합니다.
팡테옹에서 쓰던 원래의 추는 파리 공예 박물관(Musée des Arts et Métiers)으로 옮겨 전시되었는데, 2010년 줄이 끊어지며 떨어져 크게 손상되기도 했습니다.
푸코의 진자는 복잡한 망원경이나 계산 없이, 줄 하나와 추 하나만으로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쉬지 않고 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별과 해의 움직임으로만 짐작하던 자전을 누구나 모래 위의 자국으로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느린 흔들림 속에 숨은 거대한 움직임은 오래 지켜보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당연해 보이는 현상을 끈기 있게 관찰하는 일, 그것이 자연의 숨은 질서를 발견하는 과학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