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낼 땐 엄격히, 받을 땐 너그럽게, 포스텔의 법칙(Postel’s Law)
영국 런던과 캐나다 캘거리는 위도가 비슷한데도 겨울 날씨가 꽤 다릅니다. 해양성 기후인 런던의 겨울은 비교적 온화한 편이지만, 대륙 한가운데의 캘거리에서는 영하 20℃ 아래로 떨어지는 날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 뒤에는 바다가 오랜 세월 열을 실어 나르는 거대한 흐름이 숨어 있습니다.
바닷물은 차가워지거나 짤수록 무거워집니다. 이렇게 무거워진 물이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그 빈자리를 다른 물이 채우면서 전 세계 바다를 한 바퀴 도는 흐름이 생깁니다. 이 흐름을 ‘열염 순환(Thermohaline Circulation)’이라고 부르며, 열을 뜻하는 ‘thermo’와 소금기를 뜻하는 ‘haline’을 합친 말입니다.
본 자료에서는 열염 순환이 무엇인지, 바닷물이 어떤 길을 따라 움직이는지, 지구의 기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지금 과학자들이 왜 이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지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열염 순환의 이해
온도와 소금이 움직이는 바다

바다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바람이 수면을 밀어 생기는 표층 해류이고, 다른 하나는 바닷물의 밀도 차이 때문에 생기는 깊은 바다의 흐름입니다. 열염 순환은 바로 이 두 번째 흐름을 가리킵니다.
바닷물의 밀도를 정하는 것은 주로 두 가지입니다.
- 수온(Temperature): 바닷물이 차가워질수록 부피가 줄어 같은 양이라도 더 무거워집니다.
- 염분(Salinity): 물에 녹아 있는 소금이 많을수록 바닷물이 더 무거워집니다.
차갑고 짠 물은 주변보다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고, 따뜻하고 덜 짠 물은 위에 머뭅니다. 이 단순한 원리가 수천 미터 깊이의 바다를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표층 해류가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움직이기도 하는 데 비해 깊은 바다의 흐름은 아주 느리게 움직입니다.

집에서도 이 원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미지근한 물이 담긴 투명한 그릇에 색소를 탄 차가운 소금물을 살며시 부으면, 색깔 있는 물이 섞이지 않고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층을 이룹니다. 바다에서는 이런 일이 대양 전체의 규모로 일어납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바닷물의 길

미국의 해양학자 월리스 브로커(Wallace Broecker)는 1980년대에 이 흐름을 ‘거대한 해양 컨베이어 벨트(Great Ocean Conveyor)’라는 그림으로 설명해 널리 알렸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북대서양에서 가라앉기
멕시코만류와 그 뒤를 잇는 북대서양 해류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온 따뜻한 물은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근처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아 식습니다. 증발로 짜진 데다 차가워진 물은 무거워져 깊이 가라앉고, 북대서양 심층수가 됩니다.
(2) 남극 바다에서 더해지기
남극 주변에서는 바닷물이 얼 때 소금이 얼음 밖으로 빠져나와 주변 물이 더 짜집니다. 이 물은 가장 무거운 남극 저층수가 되어 바다 맨 밑바닥을 따라 퍼집니다.
(3) 다시 떠올라 돌아오기
깊은 물은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퍼지며 천천히 섞이고 데워지다가, 주로 남극해의 강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다시 수면으로 올라옵니다. 이 물이 표층을 따라 대서양으로 돌아오면 순환이 이어지며, 한 바퀴를 도는 데는 대략 1,000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후를 조절하는 바다의 난방 장치

열염 순환은 적도 근처의 열을 극지방 쪽으로 옮기는 거대한 난방 장치 구실을 합니다. 그중 대서양을 남북으로 오가는 부분을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 AMOC)이라고 부르는데, 이 흐름이 실어 나르는 열 덕분에 서유럽은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보다 겨울이 온화합니다.
이 흐름은 열만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 이산화탄소(Carbon Dioxide): 가라앉는 물이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깊은 바다로 끌고 내려가 오랫동안 가두어 둡니다.
- 산소(Oxygen): 수면에서 산소를 머금은 물이 가라앉으면서 깊은 바다의 생물에게 산소를 전해 줍니다.
- 영양분(Nutrient): 깊은 물이 다시 떠오르는 곳에서는 영양분이 올라와 플랑크톤과 물고기가 풍부해집니다.
그래서 이 흐름이 크게 약해지면 영향이 여러 곳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기후 모델들은 북대서양 주변의 겨울이 더 추워지고, 미국 동부 해안의 해수면이 더 오르며, 열대의 비구름 띠가 남쪽으로 옮겨 가 계절마다 내리는 비의 양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느려지는 컨베이어 벨트와 우리의 과제

과거에도 이 흐름이 크게 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약 1만 2,900년 전 시작된 영거 드라이아스기(Younger Dryas)에는 따뜻해지던 북반구가 갑자기 다시 추워졌는데, 녹은 빙하의 민물이 북대서양으로 쏟아져 바닷물이 가라앉는 힘을 약하게 만든 것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오늘날에는 지구 온난화가 같은 걱정을 낳고 있습니다. 바다가 따뜻해지고 그린란드 빙상이 녹아 민물이 늘어나면 북대서양의 물이 덜 무거워져 잘 가라앉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은 2004년부터 북위 26.5도의 대서양을 가로질러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 이 흐름의 세기를 꾸준히 재고 있습니다. 첫해의 관측에서 이 흐름은 1초에 평균 약 1,870만 세제곱미터의 물을 북쪽으로 실어 나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 세계 강물을 모두 합친 양의 열다섯 배가 넘습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이번 세기 동안 AMOC가 약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얼마나 빨리 약해질지, 갑자기 멈출 수 있는지는 아직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문제입니다.
열염 순환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리지만, 지구의 열과 탄소, 생명을 함께 실어 나르는 바다의 큰 길입니다. 먼 바다 밑의 흐름이 우리 겨울 날씨와 식탁의 생선에까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면, 기후 뉴스를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깊은 바다가 천천히 숨 쉬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기후변화를 바르게 읽는 일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