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림 없이 따라가는 카메라, 스테디캠(Steadicam)

작게 시작해야 크게 돌아간다, 갈의 법칙(Gall’s Law)
서점의 신간 매대나 동영상 앱의 추천 목록을 훑다 보면 “볼 만한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는 “요즘 웹소설은 다 시시하다”거나 “그 장르는 원래 수준이 낮다”고 쉽게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정말 그 장르만의 문제일까요? 이 질문에 재치 있게 답한 말이 바로 ‘스터전의 법칙(Sturgeon’s Law)’입니다.
스터전의 법칙이란 쉽게 말해 ‘어떤 분야든 그 안의 90%는 형편없다’는 경험칙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SF 작가이자 평론가 시어도어 스터전(Theodore Sturgeon)이 SF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에게 맞서며 남긴 말로, 지금은 책과 영화를 넘어 연구, 소프트웨어, 인터넷 글까지 두루 인용됩니다.
본 자료에서는 스터전의 법칙이 생겨난 배경부터 그 말에 담긴 진짜 뜻, 법칙과 닮은 앞선 생각들, 그리고 일상에서 이 법칙을 현명하게 쓰는 방법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90%의 시시함 속에서 10%를 찾는 법
SF를 지키려다 나온 한마디

1950년대 미국에서 SF는 싸구려 잡지에 실리는 오락물로 취급받았습니다. 평론가들은 우주 괴물과 광선총이 나오는 가장 엉성한 작품만 골라 들며 SF 전체를 깎아내렸고, 스터전은 이런 공격에 오랫동안 맞서 왔습니다.
- 강연(Lecture): 스터전은 1951년 또는 1952년 무렵 뉴욕대학교 강연에서 이 생각을 처음 꺼낸 것으로 전해집니다.
- 세계 SF 대회(World Science Fiction Convention): 1953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고, 이 자리에 있던 작가 제임스 건(James Gunn)이 훗날 그 말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 서평란(Book Column): 1957년 9월 잡지 「벤처 SF(Venture Science Fiction)」의 서평에서 처음 글로 적었습니다.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소설을 칭찬하는 글의 머리말이었습니다.
그 핵심은 이렇습니다. SF의 90%가 엉터리라는 말은 맞지만, 사실은 모든 것의 90%가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스터전은 자동차, 책, 치즈, 머리 모양까지 눈 밝은 전문가가 보면 대부분 시시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칙에 담긴 진짜 뜻

스터전의 법칙은 흔히 세상을 비꼬는 냉소로 오해받지만, 원래는 한 분야를 공정하게 평가하자는 주장에 가깝습니다. 스터전은 1958년 3월 같은 잡지에서 이를 ‘스터전의 계시(Sturgeon’s Revelation)’라 부르며 두 가지 덧붙임을 남겼습니다.
(1) 쓰레기가 많은 것은 자연스럽다
SF에 엉성한 작품이 많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다른 어느 분야에 쓰레기가 있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시시한 작품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그 분야가 특별히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2) 최고끼리 비교해야 한다
가장 뛰어난 SF는 다른 어떤 분야의 가장 뛰어난 소설만큼 훌륭하다는 뜻입니다. 한 분야의 바닥과 다른 분야의 꼭대기를 맞대는 비교는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덧붙이자면, 90%라는 숫자 자체는 과장입니다. 90%는 실제로 세어 본 값이 아니라 ‘대부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분야마다 비율은 다를 수 있지만, 좋은 것이 언제나 소수라는 감각만은 많은 사람이 공감합니다.
참고로 스터전은 1957년 7월 서평에서 ‘언제나 절대적으로 그런 것은 없다’는 다른 말을 자기 법칙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90% 이야기가 ‘스터전의 법칙’이라는 이름을 차지했고, 1974년에는 스터전 스스로도 그렇게 불린다고 인정했습니다.
스터전보다 먼저 나온 비슷한 생각

좋은 것은 늘 소수라는 생각은 스터전 이전에도 여러 작가의 글에 등장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한탄
영국의 정치가이자 소설가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1870년 소설 「로테어(Lothair)」에서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지금 있는 책의 10분의 9는 헛소리라고 말했습니다.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도 1891년 첫 장편소설 「The Light That Failed」에서 누구의 작품이든 5분의 4는 형편없기 마련이지만, 나머지는 그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다고 썼습니다.
서평가의 고백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46년 에세이 「어느 서평가의 고백(Confessions of a Book Reviewer)」에서 열에 아홉이 훨씬 넘는 경우, 가장 정직한 평은 ‘이 책은 쓸모없다’일 것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매주 쏟아지는 책을 읽어야 했던 서평가의 솔직한 피로가 묻어나는 말입니다.
일상에서 스터전의 법칙 쓰기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은 2013년 책 「직관 펌프(Intuition Pumps and Other Tools for Thinking)」에서 스터전의 법칙을 생각의 도구로 소개했습니다. 어떤 분야를 비판하고 싶다면 엉터리 사례를 비웃느라 시간을 쓰지 말고, 가장 좋은 것을 겨누라는 조언입니다.
(1) 비판할 때는 최고를 상대한다
어떤 주장이나 분야를 평가할 때는 가장 약한 사례가 아니라 가장 강한 사례와 마주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판이 의미를 갖고, 반대로 그 분야의 진짜 가치도 보입니다.
(2) 고르는 눈을 기른다
글, 영상, 상품이 끝없이 쏟아지는 지금은 좋은 10%를 걸러 내는 일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믿을 만한 추천, 꼼꼼한 비교, 자신만의 기준이 시시한 90%에 시간을 덜 쓰게 도와줍니다.
(3) 내 작업에도 너그럽게 적용한다
글이나 그림을 처음 만들 때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많이 만들고 그중 좋은 것을 남기는 사람이 결국 빛나는 10%에 닿습니다.
스터전의 법칙은 세상 대부분이 시시하다는 냉소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어느 분야도 그 바닥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공정한 요청입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늘 드물기에 더 찾아볼 가치가 있다는 사실도 일깨워 줍니다.
시시한 90%에 실망하기보다 빛나는 10%를 찾아 나서는 일, 그것이 좋은 안목의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