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라, 타락하라 - 무뢰파 작품선
카테고리: 국내도서>소설/시/희곡>일본소설>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저자: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다케다 린타로, 오다 사쿠노스케, 다나카 히데미쓰 (지은이), 이제민 (옮긴이)
페이지 수: 256p
출판사: 덤불프레스
출판일: 2026-08-12
가격: 15300원
평점: ★★★★☆ (8.7)
인기 순위: 에세이 주간 1위
ISBN13: 9791197158728
소개
우리에게는 다만 전범국가인 20세기 초 일본의 좌절한 지식인들이 무뢰파 운동을 통해 전쟁 중과 패전 후에 어떤 자아 성찰을 하고 어떤 저항의 의식으로써 반항의 실천을 이어갔는지, 그럼으로써 기성세대가 일본 열도와 동아시아에 전쟁의 상처로 길게 드리워놓은 죄악과 위선의 그림자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려 했는지 그 치열한 몸부림을 목도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다.
목차
서문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다자이 오사무
수치 / 가정의 행복
사카구치 안고
벚나무 숲 만개한 꽃 아래 / 타락론
다케다 린타로
대흉의 제비 / 그대, 죽지 말지어다
오다 사쿠노스케
길 / 흙발 그대로의 문학
다나카 히데미쓰
야호(野狐) / 사요나라
후기
우울과 파멸의 망령들, 혹은 영원한 저항의 사도들
책 소개
‘무뢰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한 일단의 젊은 작가들이 주창하고 일으킨 문학 운동이다. 이들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기성세대와 그들의 위선을 ‘원죄’로 규정하고 패전 후 폐허가 된 일본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선 일본인 스스로 철저히 추락하고 타락하여 밑바닥으로부터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건져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뢰파 작품선 『살아라, 타락하라』는 우리에게는 다만 전범국가인 20세기 초 일본의 좌절한 지식인들이 무뢰파 운동을 통해 전쟁 중과 패전 후에 어떤 자아 성찰을 하고 어떤 저항의 의식으로써 반항의 실천을 이어갔는지, 그럼으로써 기성세대가 일본 열도와 동아시아에 전쟁의 상처로 길게 드리워놓은 죄악과 위선의 그림자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려 했는지 그 치열한 몸부림을 목도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다자이 오사무가 이끈 우울과 파멸의 문학
‘무뢰파(無賴派)’
기성의 권위와 위선을 거부하며 절망의
밑바닥으로부터 건져 올린 진실한 인간의 초상
“나는 자유인입니다. 무뢰파입니다. 모든 속박에 반항합니다.
시류에 영합하여 득의양양한 자들을 비웃습니다.”_다자이 오사무
‘무뢰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한 일단의 젊은 작가들이 주창하고 일으킨 문학 운동이다. 이들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기성세대와 그들의 위선을 ‘원죄’로 규정하고 패전 후 폐허가 된 일본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선 일본인 스스로 철저히 추락하고 타락하여 밑바닥으로부터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건져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뢰파 작품선 『살아라, 타락하라』는 우리에게는 다만 전범국가인 20세기 초 일본의 좌절한 지식인들이 무뢰파 운동을 통해 전쟁 중과 패전 후에 어떤 자아 성찰을 하고 어떤 저항의 의식으로써 반항의 실천을 이어갔는지, 그럼으로써 기성세대가 일본 열도와 동아시아에 전쟁의 상처로 길게 드리워놓은 죄악과 위선의 그림자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려 했는지 그 치열한 몸부림을 목도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다.
무뢰파는 이를 이끌었던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비해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무뢰파’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다. 하지만 무뢰파 문학이 가진 가치와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무뢰파의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이 책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비롯하여 무뢰파를 대표하는 작가들인 사카구치 안고, 다케다 린타로, 오다 사쿠노스케, 다나카 히데미쓰의 작품을 실었다. 각 작가마다 대표작인 단편소설과 함께 그들의 사상을 보다 명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에세이를 한 편씩 함께 수록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그리고 국내에 이미 소개된 바 있으나 무뢰파의 핵심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들을 선정했으며, 한 권의 선집 안에서의 흐름 등을 고려하여 작가와 작품들을 적절한 순서로 배치, 구성하고자 했다.
무뢰파 작가들의 급진적인 주장은 때로 사회의 밑바닥으로 스스로 떨어지는 듯한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모습을 보이는 등 허무와 절망의 자기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심지어 그들은 스스로 거부한 기성세대가 되지 않으려는 양 젊은 나이에 병과 자살로 삶을 마감함으로써, 죽음으로마저 무뢰파의 사상을 증명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뢰파는 기성의 권위가 만든 사회규범과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 및 태도야말로 자신들의 사상과 문학의 실천이었음을 여전히 살아 있는 작품들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그들이 남긴 사상은 오늘날의 한국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성의 권위와 사상에 반기를 든
젊은 저항자들의 문학사조, 무뢰파
“서로 서투른 거짓말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나는 당신의 문장을 서점 매대에서 읽고 몹시 불쾌했습니다. 이 글만 보면 마치 당신 혼자서 수상자를 결정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문장이 아닙니다. 분명 누군가에게 강요받아 쓴 글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그걸 노골적으로 과시하려고 애쓰기까지 하는군요.”
이 인용문은 현대의 어느 문학상 응모자가 심사 결과에 실망하여 불만을 품고 쓴 글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글의 작자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상 공모에 낙선한 그는 당시 특정 심사위원을 향한 이와 같은 노골적인 항의의 글을 《문예통신》이라는 문예지에 공개서한 형식으로 발표했다. 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은 물론 협박에 가까운 과격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조그만 새를 기르고 무용을 구경하는 게 그리도 고상한 삶인가? 확 찔러버릴까 보다.’ 그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천하의 몹쓸 놈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실명을 거론하며 ‘저격’한 인물은 훗날(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당대의 문호이자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는 아쿠타가와상 최종심에 오른 그의 작품을 두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작가의 현재 생활에 불쾌한 구름이 끼어 있는 탓에 재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다”며 사생활을 이유로 낙선시킨 데 대해 다자이 오사무가 울분에 차서 쓴 당돌하기 그지없는 도발적 선언문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를 한없는 자기혐오와 우울의 늪에 빠져들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허무와 파멸의 작가로 알고 있는 오늘날의 독자라면 생경하게 느껴질 만한 일화다. 그러나 그가 이끌었던 문학사조인 ‘무뢰파’의 사상을 이보다 명료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의 젊은 세대가 느낀 열패감과 소외감은 컸다. 무뢰파 문학의 작가 세대는 사실상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위 세대, 즉 당대의 기성세대가 전쟁을 일으켰고, 전선에 내몰려 죽임을 당하거나 국가의 대의 아래 폭력을 강요당한 것은 젊은 세대였음에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일본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과업도 결국 그들의 몫이 되었다. 일본은 망했어도 일본을 망하게 한 장본인들은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러한 전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채 노역에 가까운 국가 재건의 대업을 떠맡은 젊은이들의 암담한 심정은 말로 헤아릴 수 없었으리라. 당시 문단의 젊은 지식인들은 그러한 패배의 그림자 속에서 기성의 가치와 도덕을 부정하며 무뢰파라는, 일단의 문학 운동을 전개한 것이었다.
세상의 가식과 위선에의 거부
철저한 타락을 통한 구원을 부르짖다
무뢰파는 기성세대의 자기기만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보았다. 전쟁도 패전 후의 비극도 바로 그들의 위선과 가식이 불러온 결과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삶을 “부끄러움 많은 생애”라고 고백하는 등 내밀하고 부끄러운 자아를 숨김없이 말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실토하지 못하는 기성 사회의 수치를 비꼬았다. 하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보내는 다자이 오사무의 공개서한에서도 드러나듯이 노골적인 적대감의 발산을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이는 오롯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행동이었다기보다는 기성세대의 도덕적 허영, 즉 진정 비열한 윤리적 타락이라 여긴 그것을 세상에 까발려 그들 스스로 치부를 돌아보게끔 하려는 젊은 세대 나름의 당돌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무뢰파 작가들은 끊임없이 타락하라며 부르짖었다. 그들이 기성 사회의 허위의식을 무엇보다도 혐오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타락이 오늘날에 생각하는 단순한 도덕적, 윤리적 타락이 아님은 명백해진다. 비록 무뢰파 작가가 자신의 실제 인생에서나 작품 속에서 술과 약물에 취해 기행을 일삼고 방탕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이를 통한 개인적 구원을 세상에 설파하려 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들 삶에서의 타락과 그들이 세상에 요청한 타락은 언뜻 모순되어 보일지 모르겠으나, 세상의 기망으로부터 먼저 자유로워지는 것이야말로 추악하고 무너진 세계에서 승리하는 것임을 공통되게 피력하고 있다. 그들의 방탕한 삶이란 그러한 주장의 다소 과장되고 자기 파괴적이기까지 한 ‘퍼포먼스’를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실제 자신의 인생에 적용해 보여준 일종의 실천으로 보아야 할 터다.
허무와 절망의 사도들이 남긴 승리의 묘표들
모든 시대의 젊은 세대를 위한 영원한 경전
이제껏 한국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과 그의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만 예민한 영혼이 거쳐 온 지난한 내면적 고뇌의 종착역이라는 데 그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젊은이들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이 그려낸 우울과 파멸로부터, 오묘한 타락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인생의 통찰과 저항의 의지를 읽는다. 작가의 자살로 귀결되는, 절망의 끝이라는 처절한 영역도 외려 숭고한 저항의 실현으로 여겨지고 있다. 스스로를 기성세대와 그들이 바꾸려 하지 않는 사회구조의 피해자라고 느끼며 출구 없는 불안과 우울의 지하도를 헤매는 세대에게 다자이 오사무가 소구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울과 절망을 교감할 수 있는 귀중한 파멸의 전거가 문학이라는 이름의 경전으로 이미 존재하는 까닭이다.
무뢰파 작가들은 병으로, 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단명했다. 그리하여 기성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은 채 저항하는 젊은 세대의 일원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옛 일본의 작가들이 취한 타락의 태도는 치열한 저항의 기록으로서, 새로이 절망하기 시작한 모든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감정적으로 격한’ 위로를 줄 우울과 파멸의 경전으로 세상에 남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