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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줄이면 된다 - 길 잃은 창작자를 위한 한예종 스토리 공식

카테고리: 국내도서>예술/대중문화>영화/드라마>시나리오/시나리오작법

저자: 이은희 (지은이)

페이지 수: 292p

출판사: 부키

출판일: 2025-03-12

가격: 13000원

평점: (9.7)

인기 순위: 예술/대중문화 주간 2위

ISBN13: 9791193528525

소개

글 쓰는 사람들의 로망인 한예종에서는 과연 어떤 수업을 할까? 한예종에 가지 않고도 한예종 스토리 수업을 들을 기회가 여기 있다. 단순히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그 어느 쪽으로도 변모할 수 있는 태초의 이야기를 손에 넣는 법을 알려 준다.

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_4줄보다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1부 4줄 이전 - 이야기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1장 이야기, 모르는 사람도 없고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
2장 쓸모 있는 질문의 필수 조건 5가지
•쓸모 있는 질문 work shop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3장 1줄 쓰기: 목표 지점 입력하기

2부 4줄 쓰기 - 이야기, 4줄이면 된다

4장 이야기는 곧 주인공의 여정이다
• 주인공 찾기 workshop | 영화 〈비상선언〉
5장 첫째 줄 주인공의 내적 자아가 변화하는 순간
6장 둘째 줄 주인공은 결심한 대로 전진한다
7장 셋째 줄 주인공의 상황도 마음도 급변할 때
8장 넷째 줄 주인공의 결심이 이루어진다
• 4줄 쓰기 workshop | 〈극한직업〉 〈더 글로리〉 〈수리남〉 〈서울의 봄〉 〈거인〉 〈안나〉

3부 4줄 이후 - 이야기를 쓰면서 나아갈 시간

9장 서사와 묘사의 차이
10장 마지막이자 첫 단추, 트리트먼트
• 실전 트리트먼트 쓰기 work shop | 창작 시나리오
11장 묘사의 품격

에필로그_계속 쓰면서 나아가겠습니다

책 소개

글 쓰는 사람들의 로망인 한예종에서는 과연 어떤 수업을 할까? 한예종에 가지 않고도 한예종 스토리 수업을 들을 기회가 여기 있다. 단순히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그 어느 쪽으로도 변모할 수 있는 태초의 이야기를 손에 넣는 법을 알려 준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저자는 20년간 쉴 틈 없이 쓰고 또 영화 현장에서 부딪히며 비로소 이야기의 정의, 이야기를 가장 빠르게 만나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 핵심 비법은 ‘4줄’에 있다. 질문을 던지는 법부터 목표 지점인 1줄 쓰기, 이를 주인공의 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4줄 형식에 적용하고, 트리트먼트를 쓰는 것까지 아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알려 준다. 학생들과 수업하며 이 4줄의 힘을 직접 검증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작법서를 읽어 보고, 좋다는 강의도 찾아 들어 봤지만, 막상 내 글에 적용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더없이 반가울 것이다. 저자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면, 팔리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쓰게 된다는 강한 확신과 용기는 물론 실제 눈에 보이는 결과물도 얻을 수 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나만 알고 싶은 수업. 솔직히 이 책이 나오지 않길 바랐다.”
한예종 강의 평가 7점 만점에 6.9점 이상!
★★★〈전지적 독자 시점〉 〈변호인〉 〈도둑들〉 프로듀서 정문구,
〈금혼령, 조선혼인금지령〉 작가 천지혜, 한예종 교수, 영화감독 박종원
〈강남 비-사이드〉 〈아르곤〉 작가 주원규 강력 추천★★★

작가가 되고픈 당신의 헛고생과 삽질을 줄여 줄
한예종 스토리 비법서

글 쓰는 사람들의 로망인 한예종에서는 과연 어떤 수업을 할까? 한예종에 가지 않고도 한예종 스토리 수업을 들을 기회가 여기 있다.
“이런 수업을 찾아 헤맸다” “이제야 스토리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학생들이 입을 모아 극찬하는 수업을 바탕으로 완성된 이 책은 여러 작법서에 흔히 나와 있는 뻔한 공식을 말하지 않는다. 단순히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그 어느 쪽으로도 변모할 수 있는 태초의 이야기를 손에 넣는 법을 알려 준다. 이야기를 쓰는 진짜 작가 되는 법 말이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저자는 20년간 쉴 틈 없이 쓰고 또 영화 현장에서 부딪히며 비로소 이야기의 정의, 이야기를 가장 빠르게 만나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 핵심 비법은 ‘4줄’에 있다. 질문을 던지는 법부터 목표 지점인 1줄 쓰기, 이를 주인공의 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4줄 형식에 적용하고, 트리트먼트를 쓰는 것까지 아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알려 준다. 학생들과 수업하며 이 4줄의 힘을 직접 검증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작법서를 읽어 보고, 좋다는 강의도 찾아 들어 봤지만, 막상 내 글에 적용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더없이 반가울 것이다. 저자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면, 팔리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쓰게 된다는 강한 확신과 용기는 물론 실제 눈에 보이는 결과물도 얻을 수 있다.

“뻔하디뻔한 기승전결은 잊어라”
팔리는 스토리의 핵심, ‘4줄’ 공식

영화 업계에서는 “15분 안에 관객들의 마음을 훔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관객이 극장에 앉은 후 15분 안에 정확히 뭘 즐기면 되는지 알려 주고 신나게 달려가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건’이 뒤로 밀리면 이야기는 늘어지고 사람들은 흥미를 잃는다.
많은 작가가 사건이 중요한 건 안다. 문제는, 사건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모른 채 관습적으로 기승전결 구조에 맞춰 글을 쓴다는 데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건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뜻밖의 일을 뜻하지만, 이야기에서 사건은 주인공의 ‘내적 자아에 일어나는 뜻밖의 일’을 말한다. 살다 보면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거나 이웃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엄청난 사건을 접하지만, 그로 인해 내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이는 나에게 사건이 아닌 것처럼, 외부의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주인공의 내적 자아에 일어나는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영화감독이 시나리오 수업을 하러 학교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갑자기 지하철이 멈추더니 차체가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전대미문의 지하철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싱크홀이 발견되었단다. 선로는 싱크홀 쪽으로 점점 더 기울고 이대로 있다가는 싱크홀을 향해 차체가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주인공인 감독은 고민한다. 이대로 죽음을 받아들여 천국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지, 가족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할지, 고장 난 지하철 문을 어떻게든 부숴서 탈출을 시도할지. 여기서 ‘사건의 발생’에 해당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흔히 아는 정의대로라면 지하철이 쓰러진 게 되겠지만, 이야기에서는 아니다. 기도하든, 전화하든, 탈출하든 주인공이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결심을 하고, 평소 같으면 바라지 않을 것을 바라는 그것이 바로 ‘사건’이다.
창작자들의 산실 한예종에서 학생들에게 극찬받는 시나리오 수업을 이끄는 이 책의 저자는 모든 글에 적용해도 다 통하는 틀에 박힌 기승전결이 아니라, 사건에 관한 새로운 정의를 바탕으로 오직 이야기에 적용될 수 있는 특별 공식 ‘4줄’을 강조한다. 주인공의 내적 자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기록한 이 ‘4줄’은 저자가 20년간 글을 쓰고 영화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 가며 알아낸 이야기의 핵심, 아니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줄의 힘을 직접 경험한 학생들은 이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고 책 출간을 만류했지만, 저자는 이제 시작하는 많은 작가가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이야기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질문이 나빠야 하는 이유

4줄로 가는 첫 단계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하겠다고 하는 것은, 글을 쓴다기보단 질문을 던진다는 것에 가깝다. 그럼, 모든 질문이 다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걸까?
여기서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질문은 ‘나빠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를 좋은 이야기로 데려다주려면 질문은 나쁠수록 좋다. ‘개천에서 태어난 남자가 성공해서 용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개천에서 태어난 남자가 성공해서 아버지보다 큰 용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중 어떤 질문을 품은 이야기가 더 궁금한지 생각해 보자.
당연히 후자다. 전자는 어떤 경제 논리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후자는 ‘아버지’라는 허들이 있다. 친구도, 경쟁자도 아닌 나의 근본이고 은혜인 ‘아버지’라는 허들은 이 질문을 나쁘게 만든다. 거기에 그 아버지가 조폭 일인자거나, 가정 폭력을 일삼는 대기업 총수라면? 이야기는 더욱 궁금해진다.
멋지고, 좋고, 선한 질문은 굳이 이야기로 들을 필요 없이 그냥 내가 하면 된다. 내가 나서기 어려울 만큼 비밀스럽고, 나쁜 질문에 사람들이 모인다. 왜냐고? 욕망이 숨겨져 있으니까. 누구나 꿈꾸고 원하지만, 솔직하게 드러내기 어려운 것, 그래서 누군가 이야기해 준다고만 하면 신나서 듣고 싶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야기를 가능케 하는 질문이다.
인기리에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 피해자가 여전히 잘나가는 가해자들을 상대로 완벽한 복수를 하면 원점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선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나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원점으로 돌아오는 방법에는 용서나 외면도 있을 텐데, ‘완벽한 복수’를 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가해자를 상대로 가장 완벽한 복수를 허락받을 수 있는, ‘복수해도 되는 사람’인 ‘학교 폭력 피해자’다. 물론 ‘억울한 옥살이를 한 무기 징역수’가 될 수도 있고, ‘자식을 잃은 부모’가 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시의성이 작동했다. 학교 폭력 문제가 한창 대두될 시기에 복수해도 되는 사람으로 ‘학교 폭력 피해자’가 적절했을 것이다.
만약 질문 자체에 집중하지 않은 채 그럴듯한 주인공을 ‘만들어’ 내려고만 하면 이야기는 산으로 간다. 주인공은 주변을 둘러보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깊이 보며 만나는 것이다. 내 질문을 대신 풀어 줄 절묘한 주인공은 질문 안에 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질문이 바로 서야, 이야기가 바로 선다.

“4줄이면 된다”
길 잃은 창작자를 위한 이정표

이제 주인공은 작가가 던진 질문을 이고 지고 나아가면서 수많은 방해 요소와 맞서 싸우며 변화한다. 4줄이 곧 주인공의 성장 일지이자 사건 일지인 셈이다.
〈더 글로리〉를 4줄에 적용해 보자면 ‘학교 폭력을 당한 주인공이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복수’한다는 욕망을 품고(첫째 줄-주인공의 내적 변화 발생) 결심한 복수를 해 나가다(둘째 줄-주인공의 결심대로 전진) 가해 무리가 저지르는 방해에 맞닥뜨리고(셋째 줄-주인공의 상황과 마음이 급변하며 심화), 우여곡절 끝에 복수에 성공하지만, 자신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인물로 변화(넷째 줄 –주인공의 결심 해소)하는 과정이다.
언뜻 보기엔 기승전결과 비슷해 보이지만, 여기엔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한다. 기존 기승전결에 초점을 맞춘다면, 겉보기에 강력하지만 주인공의 핵심 욕망에서 비껴난 외형의 사건이나 요소에 휩쓸리기 쉽다. 가해 무리 못지않은 방해 요소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엄마를 떠올려 보자. 만약 작가가 주인공의 아킬레스건인 엄마에게 너무 큰 비중을 할애했다면, 가정 학대로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학교 폭력을 일삼는 무리는 보조적 방해 요소 정도에 그쳤을 것이고, 성인이 된 주인공이 그들과 엮일 일도 전혀 없다.
몇 번의 등장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극했던 것만 봐도, 작가 입장에서 이 엄마는 극적인 전개를 위해 더욱 활용하고 싶은, 욕심 나는 빌런이 분명하다. 이 캐릭터가 벌이는 방해 공작에 더 애정을 쏟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는 순간, 애초에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엄마는 되레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에 가깝다. 그래서 더 아픈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엄마 외에도 예의 바른 가해자 남편, 조력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남자 등 복수를 이어 가야 하는 독한 마음에 주저함을 더하는 방해 요소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4줄’이 있기 때문이다. 방해 요소와 맞서 싸우면서도 계속해서 해결해야 할 질문에 집중하려면 이 4줄을 벗어나선 안 된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상당히 수학적이다. 얼핏 보면 말이 되고 얼핏 보면 설득도 되는 것 같지만, 돈과 시간을 들여서 이야기를 즐기는 수요자들은 아무도 얼핏 보지 않는다. 어느 한구석이 삐끗하면 수요자들은 단번에 눈치를 채고 이야기를 걷어차고 빠져나온다. 정확한 이야기의 안배를 위해서 4줄로 선명히 구분하고, 각 줄에 필요한 요소를 점검하는 것은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다.
만약 글을 쓰다가 길을 잃었다면, 다시 이 4줄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다른 길로 새지 않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바르고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열린 결말과 없는 결말은 다르다”
당신의 이야기가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면

잘 가다가 마무리에서 무너지는 작품이 정말 많다. 끝에 다다라서야 앞서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며 지금까지 주인공을 응원해 오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리거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애매한 마무리로 이 이야기에 쏟은 애정과 시간을 허무하게 만드는 식이다. 답을 드러내거나 숨길 순 있어도, 질문을 던졌다면 반드시 나름의 답을 내야 한다. 그게 바로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니까.
종종 질문을 던져 놓고 ‘열린 결말’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고 수습하지 않는 작가들이 있다. 정말 제대로 열린 결말의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작가에겐 A라는 결말과 B라는 결말이 모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말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이미 작가가 열어 놓은 갈림길 위에 서서 각자의 결말을 향해 걸었을 테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 결말은 열린 결말이 아니라 ‘없는 결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말을 고민할 때 작가가 쉽게 놓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해피 엔딩이라고 할 때의 ‘행복한 주체’는 과연 누구냐 하는 문제도 고민해 봐야 한다. 주인공이 죽거나 불행해지면 새드 엔딩, 살거나 행복해지면 해피 엔딩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맞는 것 같지만, 작가라면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영화 〈부산행〉에서는 관객들이 애정하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죽는다. 심지어 주인공도.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영화가 새드 엔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피 엔딩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이유는 ‘딸을 부산에 무사히 데려다주겠다’라는 주인공의 욕망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살기를 욕망한 적이 없다. ‘죽는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작가는 ‘죽는다’라는 말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작가라면 죽음이라는 물리적 결과가 아니라 주인공의 욕망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주인공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성취에 다가간 것이니 이 결말은 해피 엔딩인 것이다.
이야기가 용두사미가 되는 이유는, 사건을 해소한다면서 주인공의 변화가 아니라 상황을 정리하기에 급급해서 그렇다. 진짜 작가라면, 끝까지 주인공의 변화에서 눈을 떼선 안 된다. 욕망을 품은 주인공이 원하는 상태에 비로소 도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와야, 그때야말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작가는 주인공을 헛고생시키지 않도록, 관객들이 끝까지 주인공의 여정에 함께하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