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3 세트 - 전3권
카테고리: 국내도서>역사>아시아사>중앙아시아사
저자: 미할 비란, 김호동 (엮은이), 조원희, 최소영, 김석환 (옮긴이)
페이지 수: 1484p
출판사: 사계절
출판일: 2026-04-30
가격: 108000원
평점: ★★★★★ (9.9)
인기 순위: 역사 주간 1위
ISBN13: 9791169814324
소개
칭기스 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해 동서남북을 연결하고 세계를 하나로 통합했다. 이는 전례 없는 범세계적 문화 접촉을 촉발했고, 종교와 민족 정체성의 재편을 이끌어냈다. 이 책은 이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면밀히 검토한다.
목차
서문_미할 비란·김호동
제1권. 정치사
칭기스 칸의 등장과 통일 제국, 1206~1260년_루스 던넬
대칸의 제국: 대원 울루스, 1260~1368년_크리스토퍼 애트우드
훌레구 울루스, 1260~1335년_스테펀 카몰라·데이비드 모건
금장 호르드, 1260~1502년_마리 파브로·로만 포체카예프
몽골 중앙아시아: 차가다이와 우구데이의 후손들, 1260~1370년_미할 비란
제2권. 주제별 역사
몽골의 제국적 제도_김호동
제국의 이념_토머스 올슨
군사 체제_티모시 메이
경제 교류: 몽골 유라시아의 화폐, 시장, 세금_구로다 아키노부
종교의 교류_요한 엘버스콕
과학의 교류_모리스 로사비·로버트 모리슨
예술의 교류_로잔 프라즈니악
몽골 정복 시기의 기후와 환경_니콜라 디 코스모
몽골 지배하의 여성과 젠더_베틴 버지·앤 브로드브리지
제3권. 지역사·외부 역사
제1부. 지역사: 가장자리에서 바라본 세계
몽골 제국의 몽골 지역: 중심에서 주변부로_모리스 로사비
몽골 제국 속의 고려_데이비드 로빈슨
조지아와 캅카스_로렌초 푸블리치
몽골과 시베리아_토머스 올슨
루스 공국_로런스 랭어
제2부. 외부 역사: 몽골과 정복되지 않은 지역과의 관계
몽골과 유럽_니콜라 디 코스모
몽골과 아랍_중동 레우벤 아미타이
남아시아와_몽골 제국 탄센 센
맺음말. 몽골 제국, 유목 문화, 세계사 _미할 비란·김호동
책 소개
몽골 제국이 촉발한 폭발적 인적 이동은 제국 안팎의 사람들을 연결했고, 과학과 기술 교류의 기회를 창출했다. 그러나 제국 도처에 전해진 ‘통치 도구’의 대부분은 그들의 고유한 양식이 아니라 정주 지역 복속민의 양식을 차용한 형태였다. 칭기스 칸의 제국이 바야흐로 전 세계적 문명 교류의 불을 지핀 것이다.
교류를 촉진한 이들은 각지로 파견된 제국의 대리인들이었고,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제도와 문화는 몽골의 규범과 신념을 다양한 양식으로 재현한 것들이었다. 이때의 몽골은 세계를 통제하는 전능한 ‘빅 브라더’나 자유방임적 교류를 허용하는 방관자가 아니었다. 대신에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제국 운영에 필요한 도구를 발굴하고 그중 가장 효과적인 도구를 선택하는 조정자로서 세력을 확장했다.
이렇게 해서 칭기스 칸과 그의 후예들은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해 동서남북을 연결하고 세계를 하나로 통합했다. 다시 말해, 세계는 이전과 다른 세계가 되었다. 또한 몽골의 시대는 신대륙 발견에 기여했으며, 중세에서 근세로의 시대 대전환을 촉발했다. 그 유산은 몽골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유라시아의 여러 제국에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이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종합하고 면밀히 검토한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몽골 제국의 세계주의와 문화적 활기는 그들의 개방적인 유목 전통에서 기원했다. 몽골의 세계 정복전이 가져온 지역적 제약의 붕괴는 장거리 문화 교류의 전례 없는 번성을 촉발했다._ 김호동 서울대 명예교수
몽골 제국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13~14세기에 칭기스 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해 동서남북의 땅과 바다를 연결하고 세계를 하나로 통합했다. 몽골의 급속한 팽창과 전방위적 통합은 구세계 전역에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 지정학적, 종족적 대변혁을 일으켰다. 이 모든 충격과 그로 인한 변화로 인하여 세계는 중세에서 근세로 빠르게 이행했고, 이른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또 역설적이게도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여러 유목 정치 세력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한편 몽골의 침략을 경험한 일부 지역에서는 이후 지역 및 국제 교역의 증가로 재창조가 파괴만큼이나 빠르고 강력하게 이루어졌다.14세기 중반이 되자 몽골 제국의 네 울루스는 정치적·생태적 위기에 봉착했고, 결국 이란의 훌레구 울루스(1336)와 중국의 카안 울루스(1368)가 붕괴됐다. 초원 지대를 지배하던 금장 호르드와 차가다이 울루스도 후퇴를 피할 수 없었다. 이 가운데에서도 카안 울루스의 종말은 ‘몽골의 시대(1206~1368)’의 끝으로 간주되곤 한다. 칭기스 칸의 후손들이 정주 지역에서 물러나 초원으로 돌아갔고, 몽골의 지배 아래 보편화되었던 경제적·문화적 교류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칭기스 칸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서부 초원 지대, 이슬람 중앙아시아, 그리고 인도에서 18세기와 19세기까지 통치를 이어갔다. ‘몽골의 시대’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과 당대의 정치 문화, 그리고 몽골이 세계 각 지역을 지배하며 수립한 다양한 제도들은 근세에도 유라시아 전역에서 제국 형성과 통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너무나 광범위하여 한눈에 다 보이지 않고, 때로는 여럿으로 분절된 정치체로 보이기도 하는 몽골 제국을 전체론적(holistic) 관점으로 통합하여 다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몽골의 시대의 모든 것에 육박한다!
이 책은 세계사상 ‘몽골의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에 대한 종합 안내서이다. 역사 연구자들에게 필독서로 간주되는 <케임브리지 역사> 시리즈의 한 편으로 2023년 8월 출간된 이 책의 원서에는 도합 40명의 학자가 참여했다. 원서의 제1권은 책임 편집자를 맡은 김호동과 미할 비란을 필두로, 몽골사 연구가 폭발하는 기점이 된 토머스 올슨,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군사·무기 전문가 티모시 메이, 몽골 통사를 교양서로 종합한 데이비드 모건, 당대의 변화를 기후·생태·환경으로 확장시킨 니콜라 디 코스모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의 이론과 연구 성과를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원서의 제2권은 문헌, 고고학, 그리고 시각 자료를 검토하고 몽골 제국사 연구 전체를 종합하는 참고문헌 목록을 제시한다. 몽골의 유산은 실로 다양한 언어와 지역을 포괄하며, 각지에 서로 다른 언어와 형태의 사료가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기에 제국 연구에 가장 중요한 16개 언어권의 사료 및 고고학 자료들을 수록했다.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의 한국어판은 원서의 제1권을 번역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의 제자로서 현재 대학에서 활발하게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는 조원희·최소영·김석환 교수가 각각 정치사·주제별 역사·지역사와 외부 역사를 맡아서 번역했다. 몽골 제국의 범위와 복잡성만큼이나 방대한 분량으로 인하여 한국어판은 원서의 각 부를 구성하는 정치사(제1부)·주제별 역사(제2부)·지역사와 외부 역사(제3부와 제4부)를 세 권으로 나누어 출간한다.
몽골의 시대와 그 영향 개관
‘몽골의 시대’는 칭기스 칸이 등장한 1206년부터 카안 울루스의 대칸이 중국에서 철수한 1368년까지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160년을 다시 두 시기로 구분하는데, 전기는 1260년까지 지속된 ‘통일 몽골 제국’ 시대이다. 이 시기에 몽골은 동과 서로 끊임없이 팽창하며 새로 정복한 영토에 몽골식 제도를 정착시켰다. 후기는 ‘몽골 연방’ 시기로, 이때 칭기스 칸의 후예들이 중국, 이란, 중앙아시아, 볼가 지역에 네 개의 지역 단위 제국(4대 울루스)을 탄생시켰다. 대칸 혹은 카안이 통치하는 카안 울루스는 북중국 지역을 중심에 놓고 대도(大都, 몽골어 Daidu, 현재 베이징)에 수도를 건설했다. 원(元)으로도 알려진 이 울루스는 다른 울루스들에 명목상 우위를 점했지만, 때로는 지역 울루스의 칸들이 대칸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했다.
나머지 세 울루스는 창시자인 칭기스 칸의 아들 주치와 차가다이, 톨루이의 아들인 훌레구의 이름으로 불린다. 일 칸국(1260~1335)이라고도 부르는 훌레구 울루스는 오늘날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 자리했다. 주치 울루스(금장 호르드, 1260~1502)는 볼가강 유역을 중심으로 했고, 차가다이 울루스(1260~1678)는 둔황에서 부하라까지 이어지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세력을 펼쳤다. 이 울루스들은 종종 대립하기도 했으나, 대개 ‘칭기스 칸의 후예’라는 강력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전 지역의 정치·경제·문화 교류를 지원했다. 그 안에서 초원의 유목 문화뿐 아니라 중국 문명, 이슬람 문명, 가톨릭 문화, 정교회 문화, 불교 문화 등이 섞이며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몽골의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를 이루었다.
한편 몽골은 영토가 아니라 인구(그리고 가축의 수)로 부를 측정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 정복한 영토에서 획득한 사람과 그들의 재능을 유형 재화로 여겨 제국 전역으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과 그를 뒤 따르는 상품, 기술, 제도, 문헌, 사상이 결합하고 발전했다. 몽골이 초래한 이 변화를 칭기스의 교환(the Chinggis exchange)이라고 부르며, 그 영향은 제국 내부는 물론 일본, 동남아시아, 인도, 그리고 대부분의 유럽 등 제국 외부 세계에까지 모두 미쳤다.
각 권의 주요 내용
제1권의 주제는 정치사이다. 여기에서는 통일 제국과 4대 울루스의 통치 기술 및 전쟁 능력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몽골 정치체들의 특징을 제시한다.
루스 던넬(「칭기스 칸의 등장과 통일 제국, 1206~1260년」)은 테무진의 성공과 ‘황금 씨족’, ‘몽골 민족’의 형성 과정에 주목한다. 이들은 초원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차츰 정주 지역을 제압 또는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몽골은 대규모 원정을 시도하고 이를 지원하는 기반 시설을 건설하여 유라시아 전역에서 인력과 자원을 모을 수 있었다. 동시에 원정과 통치의 성공을 위해서 각 지역별 상황에 적응하고 그곳의 전문 지식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특징이 토착 지식인 엘리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제국의 세력이 급속히 확장되었다.
크리스토퍼 애트우드(「대칸의 제국: 대원 울루스, 1260~1368년」)는 중국 지역을 통치한 대원 울루스(카안 울루스, 원 제국)의 두 가지 경향과 그 유산을 분석한다. 첫 번째 경향은 대칸이 기거하는 북중국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지형의 재편이고, 두 번째 경향은 그 지역 한인 관료 및 유학자를 등용하는 경향의 증가이다. 한편 대원 울루스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 지역의 후속 국가인 명나라 그 자체였다. 원은 몽골 통치 이전 수 세기 동안 지속된 남북의 분열을 끝내고, 오늘날까지 지속될 ‘통일 중국’의 원형을 이루었다.
스테펀 카몰라와 데이비드 모건(「훌레구 울루스, 1260~1335년」)은 일 칸국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쇠퇴를 추적한다. 1251년 몽골 황실에서 일어난 뭉케의 쿠데타를 기점으로 제국의 서쪽에 성립된 이 나라는 이슬람 및 유럽 세계와 직접 경쟁하고 교류하며 몽골 제국의 세계 제국화를 가속했다. 1260년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맘룩 술탄국에 패배하며 영토 확장은 중단되었으나, 이후 오랫동안 대칸의 권위를 지지하는 핵심 세력이 되었다. 또한 가잔과 울제이투 재위 때 ‘세계 최초의 세계사’인 『집사』를 편찬하는 등 문명과 문화의 수준을 고양했다.
마리 파브로와 로만 포체카예프(「금장 호르드, 1260~1502년」)는 칭기스 칸의 장자인 주치의 후예들을 다룬다. 이들은 1260년대부터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이웃 국가들과 다자 외교를 펼쳤다. 발트 지역, 흑해, 캅카스, 중동, 유럽의 무역·종교·군사 파트너들과 교류했으며, 특히 맘룩, 비잔티움, 베네치아, 제노바와 우호를 유지했다. 이를 통해 자국 자본을 해외에 투자하고 지중해 무역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한편 주치 울루스에서 사치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몽골 제국 내외 각지에서 수공업이 발전하기도 했다.
미할 비란(「몽골 중앙아시아」)은 차가다이와 우구데이의 후손들의 역사를 서술한다. 뭉케의 쿠데타 이후 카안은 톨루이계에게 세습되었다. 정주 기반이 부족한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으로 밀려난 차가다이계와 우구데이계는 주변을 둘러싼 여러 강력한 세력들의 침략에 시달렸다. 결국 우구데이 울루스는 14세기 초에 대원 울루스에 패배하여 소멸했다. 반면 살아남은 차가다이 울루스는 14세기 후반 몽골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근대 초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제국인 티무르 제국(1370~1501)과 인도 무굴 제국(1526~1857)의 바탕이 되었다.
제2권에는 다양한 주제의 역사를 모았다. 여기에서는 통일 제국과 네 울루스의 제도, 군사, 이데올로기, 경제, 종교, 예술, 과학 교류, 환경, 여성과 젠더의 연구 성과를 다룬다.
김호동(「몽골의 제국적 제도」)은 제국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울루스와 오르도의 구조, 몽골의 십진법 군사 조직, 다루가치와 자르구치, 그리고 역참 제도를 설명한다. 이를 통하여 몽골의 역사를 해체와 독립의 과정으로 이해하던 기존의 관점을 통일 제국 시기의 제도를 계승하고 다양성에 적응하고 변주한 과정으로 재설정한다.
토머스 올슨(「제국의 이념」)은 몽골 지배 이데올로기가 정당성을 획득한 방식을 분석한다. 칭기스 칸의 후예들은 ‘하늘(텡그리)이 부여한 힘과 행운’으로 자신들에게 세계를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이념이 내부 권력 집단(칭기스계)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그들이 각지에서 이루려 하는 제국주의적 야망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티모시 메이(「군사 체제」)는 통일 제국과 지역 울루스의 군사 기반인 초원의 기마궁사와 정복지에서 새로 흡수한 정주민 군대의 활용법을 제시한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 및 군사 체제를 경험한 뒤 유용한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폐기하며 더욱 강력한 군대로 발전했다. 그러나 군 지휘관이 세습되기 시작하면서 기능과 능력이 후퇴했다.
구로다 아키노부(「경제 교류」)는 몽골 유라시아 지역의 화폐와 시장, 조세 제도를 다룬다. 몽골의 시대에 유라시아 전역에서 다양한 유형의 통화를 사용하는 다층적 상업 활동이 발달했다. 특히 은이 무역의 기본 단위가 되면서 대륙 전체의 통화 교환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지역 간 무역과 지역 내 상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었다.
요한 엘버스콕·모리스 로사비·로버트 모리슨 세 사람(「종교의 교류」, 「과학의 교류」)은 몽골을 매개로 중국 문명과 이슬람 문명 사이에서 이루어진 종교와 과학의 교류를 보여준다. 두 세계가 한 제국에 포섭되면서 의학, 지도, 지리적 지식, 천문학과 점성학이 모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나아가 몽골인들이 유럽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변화시킨 결과 인류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르네상스)이 태동했다.
로잔 프라즈니악(「예술의 교류」)은 몽골의 시대의 문화적 변화에 주목한다. 유라시아 전역을 지배한 몽골 군주들은 자신의 권력을 시각적 상징으로 형상화하려 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페르시아의 숙련 기술자를 동원하여 몽골 정체성과 위상을 직물에 표현했다. 그리고 이것이 제국 전역과 그 너머로까지 퍼지면서 세계 종교의 예술적 요소들이 통합되었다.
니콜라 디 코스모(「몽골 정복 시기의 기후와 환경」)와 베틴 버지·앤 브로드브리지(「몽골 지배하의 여성과 젠더」)는 환경사와 여성사라는 새로운 분야를 제안한다. 이는 몽골 제국이 초래한 폭발적 인적 이동의 빼놓을 수 없는 결과로서, 정치와 군사 중심의 기존 연구에서 흔히 간과하는 제국의 저변을 밝힌다.
제3권 지역사·외부 역사는 몽골인들이 간접적으로 통치했던 특정 지역들에 초점을 맞춘다. 변방과의 연결 고리를 살펴봄으로써 ‘중심부’와 ‘주변부’의 제도와 정책 변화를 조명한다.
모리스 로사비(「몽골 제국의 몽골 지역」)는 제국의 중심부인 몽골 초원과 북중국 지역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주변부로 바뀌는 현상을 분석한다. 쿠빌라이 사후 대칸의 자리를 놓고 반복된 계승 분쟁이 몽골 지역의 무질서를 야기했고, 잦은 쿠데타와 암살은 정치적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러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다른 칸국들과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제국은 빠르게 쇠락하고 중심의 권위는 극도로 축소되었다.
데이비드 로빈슨(「몽골 제국의 속의 고려」)과 로렌초 푸블리치(「조지아와 캅카스」)는 제국과 동서 경계 지역의 관계를 다룬다. 제국 동쪽 변경에 위치한 고려의 국왕은 칭기스계의 부마로, 고려의 백성들은 황후, 궁인, 환관, 군사 지휘관 등의 형태로 제국의 구성원이 되었다. 제국 서쪽 변경에 위치한 조지아와 캅카스 지역은 유럽과 몽골 제국의 경계이자 연결 통로로 기능하며 오스만이라는 새로운 적이 등장할 때까지 상업과 예술 발전을 구가했다.
토머스 올슨(「몽골과 시베리아」)과 로렌스 랭어(「루스 공국」)는 제국 북쪽의 전이지대를 탐구한다. 남부 지역에 비해 인구가 적고 제도가 덜 발전한 이 지역에서 몽골은 임시변통을 활용해야 했다. 동시에 식민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를 역참과 연결하면서 서서히 이 지역을 동서 무역로와 연결시켰다. 모스크바는 이 시기의 발전을 바탕으로 몽골의 시대가 끝난 뒤 기독교 세계의 중심인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니콜라 디 코스모(「몽골과 유럽」)는 몽골과 유럽의 관계를 다시 강조하며, 특히 몽골과 조우한 뒤 유럽 세계에 남은 충격과 공포가 예언과 전설의 형태로 퍼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 소문을 좇아서 이탈리아 선교사들과 가톨릭 선교사들이 몽골을 향해 동쪽으로 이동했다. 또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인 화약이 이 시기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전파되어,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군사 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레우벤 아미타이(「몽골과 아랍 중동」)는 오늘날 아랍 문명의 중심이 된 곳에 몽골이 미친 영향을 요약한다. 그는 몽골이 1260년 시리아의 아이유브 왕조를 무너트리지 않았다면 맘룩 술탄국은 이집트에서 나와 시리아 지역을 확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몽골의 출현으로 인하여 이슬람 세계가 맘룩을 중심으로 단결했고, 이후 군국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탄센 센(「남아시아와 몽골 제국」)은 몽골이 인도와 연결되는 흥미로운 순간을 재현한다. 두 지역의 관계는 전쟁보다 교류로 구현되었다. 인도 서해안 도시들이 페르시아만의 항구를 통해 일 칸국의 수도 타브리즈와 무역을 개시했다. 이후 이 경로로 중국에서 생산한 청화백자가 서쪽으로 수출됐다. 또한 이 지역에서 기원한 불교와 이 지역으로 전파된 이슬람교가 대원 울루스와 인도의 인적·문화적 교류를 촉진하기도 했다.
